나에게 온 선물 갖던 전시
‘선물'이란 단어의 ‘Present’는
‘현재'를 상징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Present from the Past라는 제목은 중의적 의미로 ‘과거로부터 온 선물'과
‘과거로부터 비롯된 현재'를 뜻하기도 한다.
2010년 초에, 나는 주영 한국문화원에 큐레이터로 이미 3년 차를 지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기획자에서 좌충우돌하고, 어는 정도 맷집이 생겼었던 3년 차.
아직도 겁이 없었나 보다. “2010년은 한국전 발발 60주년인데 할만한 행사가 없을지”라는 질문에 한 페이지 짜리 기획을 냈다. 40명의 작가에게 한국전쟁을 해석하는 작품을 의뢰하고, 이 작품의 엽서와 수익금을 참전용사에게 돌려주자는 시도, 그야말로 과거로부터 온 선물이다.
오랜 파일을 뒤적이다, 원장님께 드렸던, 그래서 그대로 대사님께 보고가 됐던 '간단'한 기획서를 찾았다. 토씨 하나 안 바뀌고 여기 공유하자면,
아주 간단해 보인다. 당시 대사님과 문화원장님은 그때 당시에는 꽤 간단해 보여서 허락을 하고, 일을 추진하게 되셨다고 했다.
하지만, 재영 작가에서 한국 작가로 넓혀졌고, 경매를 꾸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BBC 취재는 당시 상상도 못 했다. 정말 행운 중 행운으로 걸린 BBC 취재 및 인터뷰. 말이 40명이지, 작가들을 만나다 보니, 재영 작가로 40명을 꾸리는 것은 무리였다. 여러 큐레이터와 작가들의 추천과 도움을 받아 40명 작가가 컨택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정한 4가지 주제 중 하나를 택해서 소장품을 의뢰한다는 것은, 사이즈가 작다고 해서 원작의 노력 대비 들이는 노력이 비례적으로 작아지는 것이 아니듯이, 어려운 작업이다. 기본적으로 100불의 사례금이 있었지만, 사실 굉장히 상징인 금액이다. 이 전시는 전체가 선물이면서, 사실 작가들이 그들이 있기 전 한국의 땅을 밟았던 노병들에게 종헌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 한국의 큐레이터는 내게 왜 “굳이 그런 고리타분한 전쟁 이미지를 가져가려고 하세요?” 물었다. 우리가 떨쳐내려던 이미지, 즉 한국전쟁, 분단, 고아 등은 ‘코리아'라고 하면 나오던 수 사어 들이다. 당시는 지금 같은 한류와 한국문화의 유산은 상상도 못 했다. 문화원 개원 시 했던 한국의 이미지에 대한 조사에서 거의 50% 이상 ‘코리아 하면 떠오르는 것은'에 한국전쟁과 북한이라 답했다.
하지만 작품들은 이런 의심들을 다 뒤엎었다. 기발한 작품들이 많았다. 일상의 라면을 먹는 모습부터, DMZ를 상징한 와이어 까지. 작품 앞에서 웃는 노병들 사진에 나도 다시 웃는다
40 작품에 대해 지금 다시 읽어보았다.
해학적인 작품부터, 기념비적인 작업, 자신의 작품의 연장선에서 주제에 맞게 재제작한 작품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면 박제성은 폐허가 된 한국 흑백 사진 위에 디지털 리터치로 색상을 입히는 과정을 치유의 과정이라 정의하고, 예술이라는 창조의 과정을 통해 전쟁의 파괴적 양상을 아이러니하게 표현했다.
그에 비해 백승우는 북한이 선전용으로 지어놓은 건물을 왜곡시켜 그 과장된 선을 비꼬고 있었다. 붉은 하늘에 대조되는 잿빛 빌딩이, 아 만약 내가 저 휴전선 위쪽에 태어났었다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자신의 내면적 고민을 담아내는 사진 작업을 하는 배찬효는 이번에는 사진 속에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되었다. ‘여성이 다른 여성이 되는 작업’하면 신디 셔먼이 떠오른다. 그런데 성별이 바뀐 오마주/분장은 배찬효를 처음 봤었다. 영국의 전통적 귀부인의 복장을 하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흥미롭게도 군 복무 시절의 인식 표(군번) 출이다. 이것은 영국 사회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함몰되어가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작가 자신의 작은 저항이라 할 수 있었다.
(알파벳 순서로 맨 위 왼쪽부터 옆에 3 작품을 설명해봤다)
이렇게 작품 하나하나도 소중한 배움이었는데.
우리 전시에게 큰 행운이 찾아온다.
전시가 오픈 한 날 전화를 받는다. 당시 기자단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관련 기자들을 검색하고 보도자료를 보내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BBC World News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때 전화를 받은 권민영 인턴의 영어가 유창했기에 다행이지, 놓칠 수도 있는 전화였었다.
미샬 후사인이라는 앵커 겸 프로듀서가 취재를 오겠다고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녀에게 하나하나 작품을 설명해주고, 나는 끝난 주 알았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아침에 전화가 왔다.
혹시 스튜디오로 와줄 수 있겠어?
나는 그날 반 정장 차림으로 문화원에 와있었고, 차마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 바로 스튜디오로 향했다. 마이크를 등에 차고 스튜디오 조명을 대각선으로 바라본다.
그 당시 인터뷰를 보면 난생처음 생방송에 얼떨떨한 나를, 미샬 후사인이 탁월하게 리드하는 모습과 그녀의 말을 탁탁 자르는 나의 미숙함이 대조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z_wYYnxAMJo 당시 인터뷰를 올려놓은 주영 한국문화원 유튜브
BBC World 라이브 인터뷰를 맞히고 나오며 핸드폰을 켜자, "나 지금 싱가포르에서 휴가 중인데 네가 BBC에 나오고 있어, "라고 하는 친구 문자가 와있었다.
인터뷰를 다시 돌려보면서 미샬 후사인의 수려한 진행에 또다시 놀라고
그때 당시 진지했던 20대 큐레이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또 창피하다.
40명의 작가 분들께 너무 고맙고, 이 글로서라도 정성껏 만든 작품을 기부한 작가분들의 의도와 정성을 한번 이를 상기하고 싶다.
Mishal: ‘What was it that you were trying to do?’
무슨 의도로 이런 전시를 했는지요?
Me: Thank you Miishal for nice compliment. 좋은 칭찬 너무 감사합니다.
With this exhibition, we wanted to, we hope to bring an awareness about the Korean War, and also it is a heartfelt thank you from all the Korean people to British Korean War Veterans.
본 전시는, 저희 한국인들이 한국전쟁에 대한 의식 전환의 기회로 삼을 뿐 아니라,
그 동시에 재영 한인 참전용사에게 마음을 다해 한국인들로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Mishal: 왜냐면 영국이 한국전에 참전한 많은 나라 중 하나였기 때문이죠?
Me: 맞습니다. 영국은 (한국에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병력을 투입한 나라였습니다.
약 5만 8천 명의 영국이 한국에 왔습니다.
미샬: 이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그런 내용들을 반영하는 것 같네요. 이 작품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나요?
사실 이 작품들은 페인팅이라기보다 천이죠.
승민: 네 이 작품들은 말씀하신 대로 천으로 시작하는데요, 그 캔버스 천위에 사실 이 한국과 영국의 국기가 그려졌고요, 긴 줄 모양으로 잘렸습니다. 그리고 양국의 국기 조각들이 하나로 이렇게 함께 짜였습니다. 천을 자르는 것은 한국전쟁의 상처를 의미하고요, 함께 짜이는 것은 한국과 영국이 하나로 묶인 가까운 관계임을 증명하면서 상처의 치유를 의미합니다.
김승민 큐레이터 (슬리퍼스 써밋 & 이스카이아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