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내가 언제까지 살아있을 줄 알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훌쩍 지나, 지원은 반찬통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울산에서 스티로폼 박스 가득 무채를 보내왔는데 그 양만 해도 지원이 사는 다세대주택 이웃들에게 다 돌리고도 남을 정도다. 지난달 구정 때 저녁상에 올라온 무채가 맛있다고 한마디 했는데 그게 화근이 된 거다. 고기를 먹지 않는 지원을 위해서 외할머니는 늘 무를 무친다거나 조린다거나 볶아서 밥상에 내놓고는 하는데 그걸 또 유독 좋아하는 지원이다. 이번에는 무채가 마음에 들었고 서울로 돌아와 외할머니와의 통화에서 '그' 무채 얘기를 꺼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온 집 앞에 놓인 스티로폼 박스를 들어 식탁에 올려놓고 아직 뜯지도 않았건만, 지원은 집에 있는 빈 반찬통이란 반찬통은 다 꺼냈다. 그래봤자 무채를 나눠 담을 통은 택도 없이 모자랄 거라고 생각하면서.
생은 언제든 예기치 않은 곳으로 저 혼자 즐겁다는 듯 통통거리며 튀어가 버리고, 나는 또 허겁지겁 그 뒤를 쫓고, 시간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숨 가쁘게 나를 옥죄이고, 그럼 또 나는 그것들의 바람대로 제법 재미있는 놀잇거리가 되어주고, 그렇게 또 한 해라는 별거 아닌 단어가 지난해라는 그리움 절절한 별것으로 탈바꿈하고, 그러다 보면 난 또 한 해를 살아낸 대단한 인간이 되어 지난 어려움은 잊고, 희망이라는 게 실재하는 것인 양, 그 어려운 것 찾아 해피뉴이어 신생아로 환생하곤 하는데. 아무튼 간 인생은 튜비컨티뉴 또 투비컨티뉴 내년 봄까지 먹어도 넘칠 무채를 절여 보내는 할머니의 마음 같은 것 아니겠나. 나는 내년봄까지 살아있을지 아무도 모를 것인데!
- 민아.
- 응, 언니. 무슨 일이야.
- 집에서 무김치를 보내왔는데 너무 많아서...
- 별 일 있는 건 아니지? 나 지금은 밖에 나와 있어.
- 별 일은 무슨. 그럼 소분해서 너희 집 문고리에 걸어 놓을게.
- 알겠어, 언니. 고마워! 늦었다. 얼른 자고.
- 응, 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