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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과 사랑

4화. 이 자리에 이대로 있어줘.

by 윤혜림


9년이었다. 지원은 말뚝 같은 민성과의 관계가 사랑이라고 믿었다. 민성도 그랬다. 민성과 9년 동안 하나씩 하나씩 돌바닥 위에 박아온 말뚝들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민성도 역시 그랬다. 들쑥날쑥한 말뚝들이 꼭짓점이 되어 만드는 구각형의 공간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두 사람 모두가 그랬다. 아무튼 말뚝은 사랑이라고 믿었다. 지원과 민성이 한 집에 같이 산지는 여섯 해째이다. 지원의 건강이 과로로 인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민성이 지원을 간호하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지원과 민성이 각각 월세를 따로 지출할 바에는 한 집에 사는 게 낫지 않겠냐는 너무 뻔한 동거의 레퍼토리였다.


지원은 밤 열 시에 퇴근을 했고 그가 운영하는 공간은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라 아주 빠르게 귀가할 수 있다. 민성은 여섯 시에 업무를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일곱 시가 약간 넘는다. 허기를 참을 수 없는 민성은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거나 냉동볶음밥 따위를 데워먹는다. 지원이 퇴근하고 나면 분명 또다시 저녁식사 2차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먹는 행위'에 유독 예민한 지원은 절대 혼자서는 무언가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민성은 지원을 절대 혼자서 무언가를 먹도록 두지 않는다.



- 오빠. 나는 혼자 먹는 게 너무 싫어. 추해.


- 왜 그렇게 생각해. 혼자라도 뭔가 잘 챙겨 먹어야지.


- 고등학생 때 윤 씨가 밥 먹는 뒷모습을 봤어. 그렇게 짐승 같을 수가 없었단 말이야. 나는 그러기 싫어. 나한테 식사란 그냥 누군가와 같이 대화 나누고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야.



지원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면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다. 포두부쌈에 푹 빠져있는 지원의 저녁 식사를 마련해 놓는 것이 민성의 사랑 방법이다. 그는 그런 식으로 말뚝의 나뭇결을 매끈하게 다듬는다. 서툴다 못해 거의 조각에 가까운 칼질로 오이와 피망을 썰고 단무지를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게맛살과 무순을 가지런히 정리해 담는다. 스리라차 소스와 블랙페퍼는 절대 모자라지 않도록 매일 체크했다. 지원이 포두부쌈을 양볼 터지도록 먹는 동안 민성은 그 맞은편에 앉아 지원이 퇴근하자마자 뚝딱 끓여준 된장찌개를 밥에 넣고 쓱쓱 비빈다. 민성은 모든 것이 이 자리에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원의 등에 조그맣게 난 날개를 가끔씩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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