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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서울

3화. 중얼거릴 단 하나의 주문은.

by 윤혜림


- 민아.


- 응, 언니. 무슨 일이야.


- 집에서 무김치를 보내왔는데 너무 많아서...


- 별 일 있는 건 아니지? 나 지금은 밖에 나와 있어.


- 별 일은 무슨. 그럼 소분해서 너희 집 문고리에 걸어 놓을게.


- 알겠어, 언니. 고마워! 늦었다. 얼른 자고.


- 응, 끊어.



지원의 전화를 받는 민의 방식은 늘 이렇다. 지원의 목소리가 어떻든 늘 '무슨 일이야'라고 응답한다. 민이 보아온 지원의 서울 생활은 하루하루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아기 사슴의 여정이었다. 명문 서울에 유학온 자의 여정.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죽고 싶다는 마음을 이긴 또 하루.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은 하고 싶다는 마음을 너무나 쉽게 짓누르고 그만두고 싶은 것의 종류는 먹는 일과 자는 일과 더 나아가 사는 것 전체로 확장되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지원의 머리채를 질질 끌고 삶의 비탈길을 걸어 올라온 것은 '잘' 하고 싶다는 어떤 마음이다.


먹는 걸 잘하고 싶진 않았지만 숙제는 잘하고 싶었고 자는 걸 잘하고 싶진 않았지만 기대는 잘 충족하고 싶었으므로 어쩌면 숙제와 기대로 범벅된 피곤한 삶이 역설적으로 지원을 죽음에 대항하도록 한 동기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저보다 삶을 사랑하고 저보다 세상을 즐기고 저보다 생그러운 이들이 예고되지 않은 풍파에 힘없이 사그라지는 모습을 보며 생사를 점지하는 신의 안목에 큰 하자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으나, 그러므로 그 이름 모르는 눈물들에게 빚지는 마음으로, 살고 싶지만 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죄짓는 마음으로, 또 '잘' 하고 싶은 것에 기대어 연재하는 생이었겠다.


지원의 아침은 매일같이 쿨럭이며 찾아온다. 연명으로의 도전은 곧 다시 평탄한 일생에 숙제와 기대를 쏟아부을 것이므로 이제부터 또 그가 중얼거릴 하나의 주문은 그저 잘 살아 보자, 이것이 유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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