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인가요, 자동인가요?
69세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난다. 조용한 환경에서 글을 쓰고 싶어서이다.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일찍 일어 나지만 그 시간도 오롯이 혼자 있기 힘들다. 93세의 부지런함 때문이다.
93세는 어제 우리 방 침구를 몽땅 가져다 빨더니 오늘은 본인 방에서 빨랫감을 가져다 이 새벽에 세탁기를 돌리고 있다. 93세는 귀가 어두우니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세탁실의 문을 열어 놓고 있다. 69세는 그 소리에 정신이 흐트러지고 화가 난다. 나 글 써야 한다고, 집중해야 한다고 외치고 싶다. 소리는 못 지르고 책상에서 일어나 세탁실의 문을 ‘꽝’하고 닫는다. 93세는 그 ‘꽝’ 소리도 듣지 못한다.
이 시간 69세와 93세 사이의 갈등을 지켜보는 또 다른 식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통돌이 세탁기이다. 생년월일은 정확히 모르지만 태어난 지 20년 정도 되었다. 사람 나이로 생각하면 93세 정도 될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일을 하지 않았고 일을 해도 힘이 들지 않았는데 이제는 힘이 든다. 이유는 나이가 든 탓도 있겠지만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주인은 나를 있는 대로 받아 주지 않는다. 자동 설계되어 일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으며 물 높이와 빨래 양, 종류에 따라 시간을 조절해서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내 친구 93세는 나를 사용하는 방법이 특별하다. 빨래와 비누를 넣고 물을 받아 오랫동안 불려 놓는다. 돌리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정해진 기준 없이 멈추는 바람에 나는 종종 혼란스럽다. 93세가 깜빡하고 멈추는 시간을 놓쳐 비눗물이 다 빠져버리면 나는 다시 일을 해야 한다. 이때 93세는 자신의 정신없음을 탓하며 한참을 속상해한다. 옆에서 듣기 힘들다. 내 탓이 아닌데 내가 잘못한 것 같다.
이 과정이 지나면 나는 다시 한번 원래 코스대로 돌아간다. 비누 없이 처음부터 세탁기를 돌리고 20분 정도 남으면 섬유 유연제를 넣는다. 이 과정도 시간을 놓쳐 물이 빠져 버리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지치고 노쇠해질 수밖에 없다.
옛날 강원도에 사는 내 친구 이야기이다. 동네 할머니가 통돌이 내 친구에게 감자를 넣고 껍질을 벗겼다고 한다. 통돌이의 주기능인 통이 돌며 서로를 비벼 감자 껍질은 잘 벗겨졌지만 내 친구는 오래 견디지 못했다. 그애기를 듣고 나니 이 집의 93세는 점잖은 편이라고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위로한다.
어떤 날은 힘이 들어 멈추어 선다. 화가 난 93세는 망가졌다며 75세에게 투정을 한다. 75세가 이것저것을 살피며 나를 위로한다. 75세는 ‘힘들면 멈추어 쉬도록 해, 괜찮아’라고 조용히 말한다. 가끔 75세는 나를 쉬게 하기 위해 이틀 정도 쓰지 말라고 93세에게 부탁한다. 75세의 이런 말은 아들의 위로처럼 마음이 따뜻해 진다. 그런 날은 진정한 쉼의 시간이다. 이 맛에 내가 이 집에 살고 있다. 내가 일을 하면 이제 얼마나 일을 할 수 있을까?
요즘 나오는 멋진 디자인과 기능을 가진 신세대들을 보면 아주 흐뭇하다. 무뚝뚝하다는 독일 사람들까지 그 기능과 디자인을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역할인 빨래를 깨끗하게 하는 힘은 통돌이가 최고다. 93세는 신세대 세탁기를 쓰지 못할 것이다. 인공지능 어쩌고 하는 새로운 세탁기는 93세가 멋대로 누르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바로 망가질 것이다.
통돌이로 오래 살았고 힘들지만 잘 버티고 있다. 93세가 나를 힘들게 하지만 가장 친한 내 친구이기도 하다. 옷 부스러기가 끼면 거름망을 깨끗이 빨아 말리고 틈새 먼지를 제거해 준다. 93세는 나를 깨끗이 닦아주며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이 집 69세는 뭘 하는지 모르겠다. 나한테 관심도 없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깨끗해진 옷을 입으면서 감사할 줄도 모른다. 내가 일하는 소리가 시끄럽다며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한다.
긴 세월을 살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 내 일을 열심히 성실하게 했다. 93세가 빨래를 깨끗이 하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옷을 세탁하는 것의 본질은 깨끗함이니 나도 93세도 최선을 다해 각자의 일을 한 것이다. 그 과정 중에 내가 힘들었던 것, 93세가 내게 갖는 불만은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나에게 일을 시키고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93세의 뒷모습을 보면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69세는 글쓰기를 마친 것 같지만, 나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내 일을 드르륵드르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