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들의 오늘과 내일
다른 집은 문방사우(文房四友), 우리 집은 청소사우(淸掃四友)
93세는 언제 일어났는지 엎드려 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다. 이 새벽에 무슨 청소냐고 하면 잠이 안 와서 그런다고 한다. 책상 옆에 와서 의자를 툭툭 치고, 컴퓨터 본체를 건드려 선이 빠지기도 한다. 제발 여기는 건드리지 말라고 하지만 소용없다.
청소하는 93세 주변엔 몽당빗자루와 쓰레받기, 걸레, 돌돌이 또는 스티커가 있다. 이들은 93세의 친구다. 빗자루 몇 개를 새로 사주었지만, 손에 익지 않는다며 늘 낡은 것만 고집한다. 걸레는 부엌에 쓰던 행주가 낡으면 걸레가 된다. 이것 때문에 69세와 75세는 자주 헷갈린다. 행주와 걸레의 구분이 어렵다. 바닥에 있으면 걸레, 싱크대 위에 있으면 행주다. 쓰레받기 또한 한쪽이 떨어져 나갔지만, 다른 것은 맘에 안 드는지 오래된 것만 사용하고 있다.
쓰레질의 마지막 작업은 넓은 테이프를 이용해 작은 먼지, 머리카락을 붙여서 버린다. 어느 날은 부엌 벽에 온통 스티커가 붙어있다. 물건을 사 오면 거기에 있는 가격표, 물건을 묶은 테이프, 끈기가 있는 것은 다 붙어있다.
청소할 때마다 떼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슈퍼를 다녀온 날은 부엌 벽이 화려하다. 그것을 본 내 친구는 어디서 났는지 상품에 붙이다 남은 스티커를 잔뜩 얻어다 93세에게 주었다.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은 아이가 장난감 선물을 받은 것 같다.
93세의 청소하는 모습을 본 옆집 92세 친구가 돌돌이를 소개했다. 좋은 친구를 만난 듯 신기방기했다. 서부의 무법자에게 쌍권총이 있다면 93세의 양손엔 몽당 빗자루와 돌돌이가 있다. 오른손은 큰 것을 쓸어 모으고 왼손은 돌돌이로 작은 먼지를 처리한다. 청소의 달인이 있어 우리 집은 먼지 하나 머리카락 하나를 찾기 어렵다.
내 주변에 또 한 분의 달인이 계신다. 93세의 남자 동생이다. 일찍이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할머니 손에 자란 남매의 애정은 각별하다. 그 시대가 그랬듯이 여자인 93세는 공부 기회가 없었고 90세 남자 동생은 공부를 했다.
공직에 계셨던 90세 동생은 성실함과 청빈함으로 명에로운 은퇴를 하셨다. 취미로 서예를 시작하시고 서예 대전에도 나가 수상을 하시곤 했다. 그분 곁에는 종이, 붓, 먹, 벼루가 항상 있다. 붓을 잡아 보지 못한 93세는 동생이 연습한 습자지를 고이 접어 쌓아 놓고, 기름 묻은 프라이팬 닦는 용으로 쓰고, 69세는 그의 글을 큰 접시에 새겨 음식을 담아 식탁에 올린다.
장사를 하는 외사촌은 가끔 90세에게 적당한 내용의 글을 주문한다. 소일거리와 용돈을 드리기 위해서다. 이번 겨울 끝에는 ‘입춘대길’을 주문했다. 손님들이 사 간다고 하며 장 당 3000원씩을 드린다. 며칠을 열심히 쓰시고 용돈을 벌었다고 자랑한다.
93세의 오랜 외국 생활로 서로 그리워하던 남매가 이제 가까이 와서 살지만, 귀가 들리지 않아 의사소통이 어렵다. 두 사람의 통화를 들으면 상대방의 말을 예상하며 대화를 하는 것 같다. 소리가 겹치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고 듣는 척한다.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하면서 서로 안 받는다고 불평한다. 번갈아 입원하고, 서로 운동하라고 격려하며, 유튜브로 본 내용을 전한다. 좋은 정보가 있어서 전하지만 서로 듣지 못하니 전해지지 않는다.
‘잘 있어’라고 말하며 전화를 끓는다. 두 분은 잘 있으라는 말을 못 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멀지 않은 것도 안다. 목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전화를 받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잘 있는지 궁금해서 내일 아침 다시 전화한다.
각자 친구로 삼은 물건들은 다르지만 93세, 90세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 90세는 매일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며, 93세는 구부리고 스티커로 먼지와 머리카락을 찍어내며 각자의 예술을 하고 있다. 두 분은 서로 상대방의 일상을 알고 있다. 이 시간엔 걷고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을 먹을 것이며, 어느 때 힘들어한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안다.
먼 훗날에도 지금처럼 살 수 있다. 서로 보지 못하지만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고, 목소리는 오늘처럼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두 분의 전화기는 계속 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