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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Dec 04. 2018

바이킹은 룬 문자를 사용했다

1. 고대 북유럽 언어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문화의 깊이를 가늠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언어이다. 언어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집단적 가치체계를 전하고 집단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느끼고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도구로서 작용을 한다. 언어는 그렇기 때문에 문화를 전달하거나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매개체이자 필수 불가결한 도구이다. 북유럽과 바이킹을 이해하는데 이들이 사용한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특히 바이킹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을 알기 원한다면 당시에 이들이 사용한 언어와 문자를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북유럽인들(Norsemen)은 8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고대 북유럽(Old Norse)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을 말한다. 이 언어는 인도-유럽 언어의 북 게르만어 지류에 속하며 현대의 북유럽 언어의 초기 형태이다. 또한 이 언어는 바이킹 시대라 불리는 9세기와 13세기 사이에 이들 지역에서 주요 의사 전달 수단으로 사용했다.    

 

고대 북유럽 어는 3개 방언으로 나뉜다. 하나는, 고대 서부 북유럽어(Old West Norse)와 고대 동부 북유럽어(Old East Norse), 그리고 고대 구트니쉬(Old Gutnish) 어의 3개 방언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고대 서부 방언(Old West)과 동부 방언(East Norse)은 언어적 연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언어의 사용 지역의 지형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고대 서부 지역 방언과 동부 지역 방언이 스웨덴 서부 지역에서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노르웨이 동부 지역에서도 제법 그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부지역 방언을 덴마크와 스웨덴 지역에서 모두 사용한 흔적 역시 발견되기도 한다. 고대 구트니쉬어의 경우에는 그 경계가 더욱 모호한데 주로 스웨덴 남쪽 섬지역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동부 지역 방언으로, 때로는 서부 지역 방언과 지역적으로 겹쳐져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현재의 언어 사용지역으로 볼 때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 그리고 스코틀랜드 북쪽에 위치한 오크니 제도와 셔틀랜드 제도가 예전 고대 북유럽 언어를 현재에도 제한적이나마 그대로 사용하는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지역은 노르웨이가 지배를 하던 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가장 노르웨이 고대 방언과 흡사한 형태의 언어를 사용한다. 특히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의 경우 덴마크 식민지로 오랫동안 언어적 영향권에 있었기 때문에 언어의 변형이 있을 거라는 가정과는 달리 여전히 노르웨이 고대 방언을 사용하는 행태를 보여준다.   


10세기경 고대 북유럽어 사용 지형도 

그 예로, 오늘날에도 “Þ”라는 글자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단어는 오래전 노르웨이 사람들이 사용했는데 오늘날 아이슬란드와 페로제도를 제외하면 거의 다른 나라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늘날 “þ”는 영어 단어 "theatre"에서 처럼 발음되기 때문에 “Th”로 대체되었다. 예를 들어 "팅“(Þing)이라는 단어는 바이킹 시대부터 설치한 의회제도인데 오늘날에는 "팅(Thing)"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스웨덴 출신 바랑기안 바이킹이 루스(Rus) 제국을 건설한 오늘날의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인근 러시아 지역은 고대 북유럽 동부지역 방언과 서부지역 방언이 혼합된 형태의 언어적 특성을 보여준다. 특히 핀란드와 인근 에스토니아 등의 언어적 특성도 고대 북유럽 언어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슬라브 지역의 방언이 오히려 게르만 언어에 영향을 미쳐 북유럽과 독일 지역의 게르만어에 흡수되어 사용 중인 단어들도 적지 않다. 그 예로, 육지(land), 만나다(meet), 맥주(beer), 쥐(mouse), 야산(berg)과 산(mountain) 등이 있다.      


언어는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 상호 영향을 미치고 교류하는 가장 기본적인 매개체이다. 따라서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는가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언어가 전달되고 의미를 공유하는가를 이해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비록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언어적 표현이나 단어들이라도 예전에는 언어 수단으로서 충분히 그 기능을 가지고 있었고, 의미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수단으로서 많은 역할을 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룬 문자를 들 수 있다.



2. 바이킹 문자 룬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언어생활은 중요하다. 더구나 오늘날의 북유럽 문화 정립에 당시 바이킹들이 사용한 룬 문자는 분명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점에서도 그렇다. 따라서 고대 북유럽 바이킹들이 사용하던 룬 문자를 통해 고대 북유럽 언어의 변형과 발전 등을 추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룬 문자는 바이킹들이 사용한 문자이다. 지금은 거의 사용을 하지 않지만 고대 북유럽인들은 중세 이전부터 자신들만의 문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스웨덴 우프랜드 뫼예브로(Uppland Möjebro) 근처에서 발견, 약 3~400년 경 제작

룬 문자는 각각의 글자마다 고유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룬 문자는 다른 문자와 달리 하나의 의미로만 한정 짓기보다 때에 따라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면, 룬 문자들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알파베트처럼 각각의 문자들에 고유하고 단일한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일 수 있다. 룬 문자는 각각의 글자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여러 이름(의미)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보면 크게 들리지 않는다.        

  

룬 문자는 북유럽에서 바이킹 시대가 시작하기 훨씬 전인 1세기경부터 사용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바이킹 시대가 끝난 후인 14세기 정도까지 사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북유럽에서 기독교화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룬 문자가 바이킹 시대를 지나며 라틴어로 대체되어 지배적인 글쓰기 수단으로서 룬 문자가 위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룬 문자라는 이름을 지닌 계기는 "Rune"이라는 단어가 조각을 하거나 잘라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룬 문자는 어떤 대상에 대한 주술이나 주문을 표시하고 축복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문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많은 글을 써야 할 경우 그 내용을 적기에는 다소 부적당하다고 볼 수 있다. 룬 문자 자체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하나의 사실만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논리적 문장에 적당하지 않다는 말이다. 또한 룬 문자는 대개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나무나 돌, 그리고 뼛조각에 글을 쓰기에 이상적이었다.   

  

한편, 룬 문자들은 크게 3가지 부류의 문자 군으로 나눈다. 하나는 프레이 부류(Frey's asett), 둘째는 하갈스 부류(Hagal’s asett), 셋째는 티르스 부류(Tyr‘s asett)이다. 이 세 부류는 각각의 글자가 모두 같은 뿌리를 근거로 파생된 문자라고 할 수 있다. 이중 특히 첫 번째 부류인 프레이 부류에 속한 문자들이 룬 문자의 첫 번째부터 6번째까지의 문자이기 때문에 이 문자들을 룬 문자들의 이름처럼 사용한다.      

    

마치 그리스 문자의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알파와 베타이기 때문에 알파베트라고 부르듯이, 룬 문자도 첫 번째 글자부터 6번째까지의 글자들을 하나의 단어처럼 붙여서 ’퓨타르크‘(futhark)라고 부른다. 따라서 “룬 문자의 퓨타르크는 모두 16글자”라는 식으로 말한다. 한편, 초창기 루네 문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는데 바이킹 시대가 시작되면서 점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썼다.       

 

초기(바이킹 시대 이전) 룬 문자(24자)와 바이킹 시대의 룬 문자(16자)


룬 문자를 새겨 넣은 기념비 룬 스톤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푸넨(Funen)에 있는 글라벤드럽(Glavendrup) 기념비는 누군가 돌을 훼손하거나 움직이려는 사람에게 경고를 하거나 저주를 퍼붓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에 "룬"(rune)이라는 단어는 "비밀스러움"을 지닌 문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따라서 사용자가 룬 글자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단일한 의미만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고 사용한다면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일은 특히 신화나 전설을 기록한 사가(Saga)의 내용을 해석할 때 빈번히 발생한다. 따라서 룬 문자를 사용할 때는 이중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룬 문자는 북해와 발트해 주변에 거주하는 모든 게르만 부족들이 1세기 때부터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룬 문자는 처음에 24개의 문자를 사용했는데,  7, 8세기에 이르게 되면 바이킹들이 서서히 바이킹 시대를 준비하면서 처음에 24글자로 만들었던 룬 문자를 16글자로 정리한다. 그 후 본격적으로 바이킹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바이킹 발자취가 닿은 곳에는 거의 대부분 룬 문자로 기록한 이정표와 기념비들을 설치한다. 다행히 이 룬 스톤들이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 당시에 세운 기념비들을 예전 북유럽 바이킹 거주지역에서 찾아내고 있어 그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이 룬 스톤은 대부분 룬 문자를 사용해 기록 했는데, 바이킹들은 고집스럽게도 로마가 보급한 알파베트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 문자, 퓨타르크(룬 문자)를 사용했다. 따라서 이 룬 문자로 기록한 내용들을 이해하면 당시 바이킹이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여하튼, 바이킹 시대가 끝날 무렵 당시 룬 문자를 아는 사람들은 더 많은 룬 문자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새로운 글자들을 포함시킨다. 룬 문자에 대한 지식은 일반 사람들이 일상적인 메시지를 기록하거나 "바이킹 그래피티(viking graffitti)"를 하기 위해 나무나 뼈를 가지고 기록을 했기 때문에 다행히 널리 퍼질 수 있었다.          


한편, 이스탄불의 소피아 성당 남쪽 갤러리의 대리석 난간 위에는 1000년 전에 이미 바이킹이 룬 문자를 가지고 낙서를 한 흔적을 볼 수 있다. 그 내용은, "할프단(Halvdan)이 여기에 있었다"라는 내용인데 바이킹들이 9세기에 남긴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증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문화적 행위인가를 알게 해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이스탄불 소피아 성당(모스크) 벽면에 바이킹이 루네문자로 "할프단이 이곳을 다녀간다."라고 낙서를 했다.



3. 신화와 역사를 돌에 새기다     


룬 문자를 사용해 만든 ‘룬 스톤’(Rune stone)이라는 기념물은 바이킹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도구이자 수단이다. 룬 스톤에는 적지 않은 바이킹에 대한 정보들을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현재 스웨덴에서 약 2,500개의 룬 스톤이 발견되었는데, 북유럽 전체에서 발견된 룬 스톤은 모두 30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스웨덴 남쪽 스톡홀름을 포함하는 우플란드(Uppland) 지방에서 청동기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문이 새겨진 룬 스톤이 발견되었다. 스웨덴에서 발견된 룬 스톤들은 주로 바이킹 시대 이전부터 바이킹 시대가 끝나는 11 세기말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룬 스톤 대부분이 뱀이나 다른 생물들의 머리를 가지고 특정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고, 이와 함께 16개의 문자를 가지고 특정의 의미를 나타내었다. 심지어 룬 스톤에는 이 돌을 제작한 사람의 이름과 관련 사항 등 여러 가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당시 생활상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인정을 받고 있다. 룬 스톤은 주로 사망 한 친척이나 친구,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룬 스톤을 처음부터 무덤을 가리키기 위한 표식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룬 스톤이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길가에 세워진 경우가 많아서 마치 이정표처럼 역할을 하기도 했다.     

 

뢱 룬스톤(Røk Runestone), 스웨덴어로 뢱스테넨(Rökstenen)은 스웨덴에서 발견된 룬 스톤 중 가장 유명한 룬 문자 기념비이다. 이 루네스톤은 스웨덴 웨스터요트랜드(Östergötland)에 있는 뢱(Røk) 교회에서 발견되었다. 이 돌은 룬 스톤 중 보물 1호일 뿐 아니라 스웨덴 문학사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작품으로 간주될 정도로 문학적 가치 또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기념비에는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잠시 이탈리아 왕이 된 데오더데릭 대왕( Theododerik the Great: 454-526)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는데, 돌에 새겨진 시는 상징적 암시와 시적 은유로 가득하다. 이 시에는 특정한 문화적 배경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의미심장하고 난해한 시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기념비에 기록된 텍스트와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논쟁 대상으로 남아 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북유럽 신화의 주인공인 여러 신들의 관계와 행위에 대한 기록들이 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다소 내용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 등장하는 신과 그들의 행위에 대한 해석이 구체적으로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을 제기하고 있다.


뢱 루네스톤(Rökstenen)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룬 스톤 기념비는 유명세를 떨칠 만큼 가치가 있다. 이 룬 스톤은 그동안 발견된 룬 스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지만, 모두 760자로 기록한 내용들이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룬 스톤은 바린(Varin)이라는 사람이 새긴 것으로 밝혀졌다. 이 돌은 19세기에 발견되었는데 12세기에 세워진 교회의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룬 스톤의 문자를 해독한 결과 룬 스톤 자체가 교회가 새워지기 훨씬 전인 9세기 초반에 이미 제작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스웨덴에서 발견된 또 다른 유명한 룬 스톤이 있다. 1669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스파르뢰사(Sparlösa)라는 곳에서 이상한 그림문자가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발견된다. 이 돌은 발견된 장소 이름을 따라서 스파르뢰사 룬 스톤이라고 부른다. 여전히 중세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당시에 이 돌은 사람들에게 경이로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마치 우주에서 날아온 그런 느낌을 주는 듯한 글자와 그림이 잔뜩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돌 역시 발견될 당시 교회의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스파르뢰사(Sparlösa) 루네스톤
스웨덴 유레스타(Juresta)의 코프브론(Korpbron)과 레드버그(Ledberg), 쇠더텔예(Södertälje)에서 발견된 룬 스톤. 모두 죽은 바이킹 가족들을 기렸다.

   

룬 스톤은 당시에 아직 사람들에게 그 가치나 의미 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교회가 '파간'(pagan)을 토속신앙이라는 종교로 보지를 않고 미신 같은 이교도로 취급하면서 커다란 돌, 즉 룬 스톤은 그저 집을 지을 때 써먹을 수 있는 좋은 주춧돌이거나 벽을 채우는 돌 정도로만 생각을 하고 사용을 한 경향이 있다.(* 스웨덴에서 발견된 룬 스톤 대부분을 박물관이나 원래 세워진 현장에서 보다 교회의 벽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이 룬 스톤 역시 교회를 지으면서 한쪽 벽면을 채우는 용도로 밖에 사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1684년 교회가 불이 나자 재건축을 하면서 다행히 룬 스톤을 벽에서 분리해 보관을 하게 되었고 룬 스톤의 다른 한 조각도 1937년에 벽에서 완전히 분리해 두 개의 룬 스톤을 원래 하나로 제작된 룬 스톤 본모습으로 재결합해 하나의 룬 스톤으로 보관을 하고 있다. 이 돌은 높이가 1.77m로 룬 문자를 사용해 서기 800년 경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감라웁살라 교회
감라웁살라 교회 벽면을 장식한 룬 스톤들


감라웁살라에서 발견된 룬 스톤 역시 바이킹 전투에 대한 내용과 유명한 바이킹 수장들, 그리고 웁살라에 살고 있는 북유럽 신화의 주인공들에 대한 내용들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이 룬 스톤에는 웁살라(Uppsala)라는 장소를 지칭하고 있고, 전설적인 바이킹 수장인 에릭(Eric)과 알리크(Alrik)라는 인물을 거론하며 칭송하고 있다. 이 돌에 새겨진 내용들은 당시에 주요한 인물, 즉 또 다른 전설적인 바이킹 베오울프에서 언급된 내용과 거의 흡사한 내용들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이 룬 스톤 역시 스웨덴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서 대접을 받고 있다.            


        

4. 하랄드 블루투스의 옐링 스톤     


하랄드 블루투스(Harald Bluetooth)가 그의 아버지 고름 왕(Gorm the Old)과 그의 어머니 티라(Thyra)를 위해 서기 970년 경에 그가 태어난 옐링에 기념비(Jelling Stone)를 세운다. 그 후 바이킹 시대에 약 250여 개의 룬 스톤을 덴마크에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덴마크에서 제작된 대부분의 룬 스톤은 바이킹 시대가 한창인 서기 975년에서 1025년 사이에 주로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하랄드 블루투스는 주민들의 종교인 파간(토속종교)을 기독교로 개종하는 데 성공할 수 있도록 스스로 기원하는 내용을 담은 기념석을 세운다. 블루투스 왕은 덴마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리베(Ribe)에 그의 염원을 담은 옐링 스톤을 설치한다. 그리고 이 돌에 앞으로 덴마크에 기독교가 확산되기를 희망하는 염원을 새겨 넣는다. 하랄드 블루투스 왕은 자신이 기독교(가톨릭) 신자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기독교 개종을 완수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비문에는, "하랄 왕은 아버지 ‘Gorm’과 어머니 ‘Thyra’를 기념하여 이 비를 만들었고, 하랄은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지배하고 있고, 또한 데인인(덴마크인)들을 기독교(가톨릭)인으로 만들었다 “라고 적었다.        


커다란 룬 스톤은 연한 회색의 화강암으로 자연스러운 붉은 무늬를 띠고 있다. 이 비석은 원래 3면으로 되어 있는데, 한 면은 텍스트를 기록하였고 다른 두면은 그림으로 채웠다. 룬 문자는 바이킹들이 사용하던 문자이지만 그림들은 다소 생소한 형태의 것들로 채워져 있다. 


옐링 스톤(하랄드 블루투스 왕의 고향을 기리는 의미에서 옐링 스톤이라 한다. 한면은 문자로, 두면은 그림으로 기록했다.)
덴마크 리베에 있는 옐링 스톤 모사품

 

비문의 문자들은 가로줄로 되어 있고 그림이 있는 두 면은 원고지에 그린 사람 형상의 그림들을 연상시킨다. 사람 형상의 모습은 그동안 하랄드 왕의 초상화로 해석되었는데 자세히 보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으로서 덴마크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의 나무(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세계수를 묘사한 듯한)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블루투스 왕의 룬 스톤은 시간이 흘러 후세에 전해지는데 16세기 후반인 1586년에 콜딩 후스의 가신 카스파 마크다너(Caspar Markdanner)가 "교회의 공동묘지에서 비석을 파 내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룬 스톤의 진가를 알게 된다. 마크다너는 그동안 룬 스톤 주변에 토사가 쌓이자 이를 제거하기 위해 하랄드 왕이 세운 룬 스톤을 파내려 했던 것이다. 룬 스톤을 제대로 복원한 것은 1981년인데, 이때 하랄드 왕의 룬 스톤을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설치를 한다.             


* 스웨덴 룬 스톤 대부분은  <Swedish National Heritage Board>가 소장한 것이며, 일부는 스톡홀름 박물관 등에서 소장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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