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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쵸 Jun 20. 2023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10

멜버른은 내 정착지가 될 자격이 있는가? 멜버른 여행 2일 차

 <멜버른 여행 2일 차:사우스 야라/Bite of life/야라 리버/보타닉 가든/도서관(State Library Victoria)/한국식 피자 가게>



  <언제나 내 선택은 옳음을, 사우스 야라/Bite of life>

  어제는 캄캄해서 몰랐는데 동네가 참 예뻤다. 게다가 2분 거리에 별 다섯 개짜리 카페가 있었다. 날씨는 흐렸지만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멜버른에서 하루에 4계절을 모두 겪을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카페에 가는 2분 동안 그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됐다. 갑자기 비가 왔기 때문이다.

  점원도 친절하고 카페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연어 샌드위치와 라테를 시켰는데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멜버른에서 두 번 간 식당이 딱 두 군데인데 그중 한 곳이다.


  <야라 리버/보타닉 가든>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는 보타닉가든이었다. 나는 보타닉 가든을 가기 위해 전철역으로 향했다. 시드니에서는 어플에 플랫폼 위치가 뜨고, 역사 전광판도 직관적이어서 전철을 타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에 반해 멜버른은 시스템이 후져서 어플에 플랫폼 위치가 뜨지 않았다. 그래서 전광판에 뜬 목적지와 경유지 일부를 여러 번 대조해서 플랫폼을 유추해내야 했다. 문도 열리는 칸과 안 열리는 칸이 있어서 안 열리는 칸에 탔다면 문에 달린 버튼을 눌러야만 했다. (처음에는 몰라서 다급히 옆 칸으로 옮겨서 내렸다.)

  역에서 내려 보타닉 가든까지 걸어가는 길에 강이 있길래 걸으면서 좀 둘러봤다. 알고 보니 야경으로 유명한 야라 리버였다. 스웨터 사이로 바람이 숭숭 들어왔지만 멋에 살고 멋에 죽기에 패딩을 입지 않고 버텼다.

나.. 멍청새랑 좀 닮았네?

  야라 리버 근처가 보타닉 가든이라 생각보다 빨리 입장할 수 있었다. 사실 보타닉 가든은 시드니에도 있는데 시드니가 정석에 가까운 정원이라면 멜버른은 쥐라기 공원 같았다. 대충 뭐 풀 대잔치라는 얘기다. 걸어도 걸어도 나오는 건 풀뿐... 자연에서 그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도시파에게는 큰 의미 없는 장소였다.


  <도서관(State Library Victoria)>

  도서관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런데 탑승 위치가 헷갈리게 돼 있어서 신호등도 없는 곳에서 반대편으로 건너가 확인하고 다시 건너오기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메롱 시티 주민 꼴 날까 봐 건널 때마다 버스 시간도 계속 확인했다. 20분 이상 기다려서 탄 버스는 안내 방송도 나오지 않아서 두 정거장이나 빨리 내렸다. 이래서 다들 트램 타는 거구나...^^

우산 한국에서 하나 들고와서 못 버림..ㅠ

  그래도 고층 건물로 가득한 도시 분위기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멜버른이 유럽 느낌이라고 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뉴욕 분위기가 많이 났다. 4년 전 꼴랑 2주 갔던 뉴욕을 추억하며 걷는데 비바람 때문에 우산이 뒤집어졌다. 처음에는 마냥 웃음이 나왔지만 우산이 계속 뒤집어지니까 갖다 버리고 싶었다. 왜 여긴 이렇게 대머리가 많은 걸까? 내내 궁금했던 의문의 답을 멜버른 이틀차에 찾았다. 그들은 애진작에 빡쳐서 우산을 갖다 버렸기 때문이다.

어서옵쇼

  내가 갔던 도서관 중 가장 예뻤던 곳은 보스턴 공공 도서관이다. 멜버른 도서관은 2등 정도. 그래도 자동으로 열리는 문이 해리포터 마법 문 같아서 재밌었다. 나는 내게 멜버른을 추천했던 스코티시에게 도서관 사진을 보냈다. 그러자 자기도 전에 같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 순간 양자역학이 떠올랐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시간은 흐르지 않고 동시에 존재할 뿐이다. 쉽게 말해 식빵조각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라고 이름 붙인 순간들이 공존하는 것이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현재를 지났기에 미래가 오는 게 아니라는 아리송한 그 개념은 내가 힘들 때마다 위안이 되어주었다. 병렬된 어느 순간의 나는 지금과 달리 행복할 거고, 또 다른 순간의 나는 지금을 떠올리며 웃어넘길 테니까. 그래서 힘들 때면 주문처럼 되뇌었다. '이건 식빵 조각에 불과해. 지금이 전부가 아니야.'

  그렇게 늘 나를 위로했던 양자역학이 이제 나와 스코티시가 이 도서관에서 만났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었다. 3달 전의 스코티시와 방금 전의 나는 이곳에 동시에 존재했으니까. 아무리 나와 잘 맞는 사람일지라도 양자역학 얘기만큼은 감당하지 못했기에 말하고 싶어도 웬만하면 참지만 왠지 참기가 싫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이미 한 번 만난 적 있노라고 이야기했다. 어떤 답이 돌아왔는지는 굳이 적지 않겠다....^^..

읽었냐고요? 그럴 리가요..

  도서관에 내가 읽을만한 유아용 책이 없었기에 공책에 글감들을 끼적대며 시간을 보냈다. 마감 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나올 때까지 있었는데 알아서 나가라는 건지 몰라도 마감이 가까워질수록 외풍이 심하게 들었다. 게다가 자리마다 콘센트가 있었지만 장식용인 듯했다. 어느 자리는 각도에 따라 전기가 공급 됐다가 끊기기를 반복했고 어느 자리는 아예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한국식 피자 가게>

  도서관에서 나오니 웬만한 카페는 이미 닫은 뒤였다. 하루에 커피 두 잔 마시기는 아쉽지만 포기하고 저녁을 먹으러 한국식 피자 가게로 갔다. 인테리어와 메뉴 모두 한국식이었지만 가격만큼은 현지 평균가보다 훨씬 비쌌다. 현금으로 결제하면 5%를 할인해 준다기에 바로 '음~ 탈세 스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의 나라 탈세 알게 뭔가 싶어서 현금으로 결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버른에서 먹은 것 중 두 번째로 비쌌다.

  마요 갈릭 어쩌고 피자를 시켰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가격이 너무 싸가지가 없어서 별로였다. 그런데 중간에 계란 껍데기 같은 이물질이 씹혀서 가뜩이나 낮은 만족도가 땅에 처박혔다. 그 뒤로 어느 식당을 가도 이 피자보다 비싼 메뉴가 없어서 기가 찼던 기억이 난다.

  가게를 나왔을 때 급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멜버른 일교차가 심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숙소에 돌아왔을 때는 몸살 기운 때문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아직 6일이나 더 여행을 해야 했기에 내일 아침까지는 나아야 했다. 나는 약 두 알을 삼키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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