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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 실없는 웃음의 효용

우리를 지탱하는 안심 에너지

by 달리

나와 아내는 둘 다 장난기가 많다. 아내와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이 심심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주거니 받거니 장난칠 때 호흡이 유난히 잘 맞기 때문이다. 우리는 농담으로 서로를 놀리는 데에 유난히 공을 들인다. 일단 기발하지 않으면 별로 재미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머리를 굴려야 한다. 성공한 장난이라도 여러 번 반복하지 않는다. 식상해지면 안 하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너무 어렵지 않냐고? 뭐 억지로 하면 그럴 수도 있겠는데 그게 일상이 되고 습관이 되면 하나도 어렵지가 않다. 재밌으면 웃고, 뭐 재미없어도 웃으면 그만인 게 장난 아닌가.


다 큰 어른들끼리도 유치한 장난이 필요하다. 실없는 웃음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드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지 못하면, 나도 웃기 어렵다.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 그런데 간혹 별일 없이도 잘 웃는 사람이 있다. 좋게 말하면 호인, 좀 나쁘게 말하면 실없는 사람.


근데 실없는 사람도 두 부류가 있다. 맥락 없이 실실 쪼개서 사람 열 받게 하는 부류가 있고, 별 말 안 해도 편안한 웃음을 지어 보일 줄 아는 부류가 있다. 당연히 나는 둘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아직 남들 앞에선 좀 어렵다. 그러니 밖에선 점잔 떨다가 집에 와서 아내한테 온갖 장난을 쏟아붓는 푼수, 촉새가 되는 거다. 아내는 나에게 '이렇게 웃긴 걸 다른 사람들한테도 좀 해보라'고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그것도 다 사람 이미지 따라가는 거라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그러면 큰일 난다. 사회에서 '이상한 사람'이란 딱지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에게만 붙는 게 아니다. 조금 이상한 사람, 적당히 이상한 사람, 한 분야에서만 이상한 사람, 심지어 꽤 괜찮은 사람도 얼마든지 단 한 번의 실수로 '괴짜'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뭐든지 천천히, 느긋하게, 하나씩, 티 안 나게 바꾸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도 안 바뀌면 할 수 없고.


어쨌거나 실없이 편안한 사람들의 특징을 대강 생각해봤더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상대를 안심시키는 것. 적어도 이 사람과 대화할 때는 안심해도 된다는 느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안정감을 줄 수 있을까. 물론이다. 내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나도 그런 사람이다. 아내와 둘이 있을 때 그렇게 틈만 나면 서로 놀려대는 것도 결국 함께 웃자고 하는 일이 아니던가.


다행히 아내는 장난기 만렙이라 내 수준에서 어떤 장난을 쳐도 화내거나 삐치지 않는다. 오히려 두어 시간쯤 장난치지 않고 있으면 뭔 일이 있나 싶어 내 낯빛을 살피는 올곧은 성품을 지녔다. 덕분에 나는 단 한 사람을 상대로 끊임없이 장난치는 법을 배웠고, 그로부터 오는 둘만의 강력한 쉴드 같은 안정감을 갖게 되었다. 이제 나는 TV를 보는 아내의 시야 정면에서 춤(이라기보다 몸부림)을 춰서 빡치게 하는 요령을 익혔고, 뜬금없는 흥얼거림과 되도 않는 성악 발성으로 아내를 약 올리는 스킬을 장착했으며, 만화책이나 스마트폰에 빠진 아내를 손가락으로 집요하게 건드려 집중력을 흩뜨리는 비기를 연마했고, 내 약점을 노리는 아내의 짓궂은 일격에 당황하지 않고 맞받아치는 언어적 기민함을 습득하였다. 예전에는 아내가 나더러 '놀리기 딱 좋은 스타일'이라고 했지만 글쎄, 최근에 들어 전세는 뒤집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덕분에 아내도 나도 집에 있는 동안은 마음껏 편안하다. 하루치 긴장에서 해방된 퇴근 후 저녁과 모든 휴일에, 우리는 유치한 장난으로 매일을 지탱하는 안심 에너지를 채운다. 실없는 웃음 조각들이 이렇게나 뚜렷한 효용을 지녔다니. 놀랍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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