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우선 불안감이 너무 컸다. 오늘은 장사가 잘 되었어도 당장 내일 매출은 어떨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다. 장사에는 변수가 많았다. 추위나 미세 먼지 같은 날씨부터 사회적인 이슈, 신간 라인업에 따라 매출이 들쭉날쭉했다. 매번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면서 언제까지 서점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송은정 작가의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라는 책에 있는 문장이다. 어릴 때는 책방 주인이 되고 싶은 꿈도 있었고 출판 업무에 대하여 관심도 많아서 일인 출판사 운영하는 분들이 펴낸 책에 관심이 많았다. 그중 이 책의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궁금증이 생겼다. 왜 망했을까? 그리고 책방을 닫았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과연 책방을 닫고 앞으로 무얼 해서 먹고살지 계획은 있는 것일까?
사진관, 비디오 대여점, 이발소 등 사라져 가는 많은 것들이 있는데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동네 책방이 사라지는 일은 제일 안타까운 일 중 하나다. 내가 개원해 있는 이 동네만 해도 동남 문고도 닫고 YES 24 서점도 문을 닫고 리브로도 문을 닫았다. 만화책방으로 유명한 북새통과 한양 툰크도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산부인과도 사라져 가는 것 중 하나다. 특히 나처럼 혼자 운영하는 분만 산부인과는 거의 없어지고 남아 있는 곳은 극소수다.
"잘못된 제도이지만 정해 놓은 원칙대로 지켜보고 안되면 편법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망하는 의사도 있어야 한다. 우리와 같은 젊은 의사들은 올바른 처신을 하지 못한 선배를 흉내 내지 말고 망하는 것을 목표로 원칙을 지켜보자는 주장을 합니다. 우스운 말이지만 그래서 저는 망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물론 아직도 못 망하고 있어서 부끄럽지만. 잘못된 제도가 뿌리내리는 동안 망하는 병원도 많이 있었다면 지금 젊은 후배 의사들이 양심을 택할 것이냐 생존을 택할 것이냐 하는 힘든 갈등의 구렁에서 고생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지금 죽어야 산다는 자세로 망하기를 각오하고 소신껏 꿈을 펼쳐 나가는 병원 어디 없습니까?":
내가 오래전에서 쓴 "망하는 것이 목표인 병원 어디 없나요?"라는 글에 있는 내용의 일부다. 그때로부터 20년도 더 넘게 흘렀지만 나는 아직까지 병원문을 닫지는 않았다. 병원문을 닫으면서 책방 문을 닫은 작가처럼 글을 쓰고 책까지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십여 년 전에는 병원 문을 아예 닫은 것은 아니지만 외래 진료만 하고 분만실을 폐쇄하기로 결정하였다. 2009년 한겨레 신문에 실었던 “분만실을 폐쇄하며”라는 글은 지금 읽어보면 별 감흥이 없지만 그 글을 쓸 때는 상당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링 위에 오른 선수처럼 나는 아직 더 싸울 힘이 있는데 코치가 흰 수건을 던져 그만 경기를 포기하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 아마 그럴 것이다.
출산을 돕는 병원은 규모에 따라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3차 병원인 대학병원, 둘째는 종합병원 규모의 분만 전문병원, 셋째는 의사 1명에서 2 명 정도의 소규모 개인의원이다. 대학병원은 분만 때 분만을 직접 담당하는 산부인과 교수 1인 혹은 수련 과정의 있는 전공의 1인과 그 옆에서 돕는 보조의 전공의 혹은 인턴 등 2 명 내지 3명 정도의 의사가 참여하고 1, 2 명의 간호사가 업무를 돕는다. 이런 팀이 병원마다 다르지만 2팀 내지 4 팀 정도 있다. 분만 전문 병원은 산부인과 전문의 1인과 간호사 혹은 간호조무사 2인이 분만을 담당하고 이런 팀이 5개 이상에서 많으면 20개까지도 된다. 개인의원은 산부인과 전문의 1인과 간호조무사 1인 내지 2인이 분만을 담당하는데 이런 팀이 1팀이거나 혹은 2 팀 정도다. 즉 개인의원이 단칸방이라면 분만 전문 병원은 그런 단칸방이 여러 개 모여 있는 고시원 같은 곳이고 대학병원은 방의 개수는 적지만 방 하나가 크기가 큰 단독 주택 같은 식이다. 이 각각의 병원은 안전성, 편의성, 접근성, 가격 등에서 각각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에 주류이던 소규모 개인의원은 많이 사라졌다.
“망하는 것이 목표인 병원 어디 없나요?”라는 글에 쓴 것처럼 원칙을 지키거나 양심을 지킨다고 해서 꼭 병원이 적자를 봐서 문을 닫고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엄청나게 줄어든 출산율과 혼자 운영하는 병원의 한계로 인하여 경쟁력이 떨어져서 사라지는 것이 더 클 것이다. 혼자 운영하는 분만 산부인과는 실질적인 안전성과 관계없이 산모들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점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대형병원의 큰 규모와 흰가운을 입고 다니는 많은 의사를 보면 그 의사들이 다 나의 분만에 참여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24시간 365일 병원을 지켜야 하므로 의사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노동 강도도 소규모 개인의원이 사라지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책방을 닫았습니다." "병원을 닫았습니다." 또는 "오늘 아이가 죽었습니다."라는 말은 살면서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좋을 말들이다. 그러나 반 백 년 이상을 살아보니 인간이 살면서 알 수 있는 것들도 상당히 많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미래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다. 책방이든 병원이든 작든 크든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모르는 그 둘을 매일매일 새로 만나야 한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사실 그런 것이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기는 하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숨이 붙어 있는 한 마주 해야 하는 엄중한 운명이다.
나는 몇 곳 남지 않은 서점이지만 여기서 가까운 영풍 문고나 신촌의 알라딘 중고 서점, 아니면 동네의 숨은 책방 같은 중고 서점을 종종 간다. 갈 때마다 이번 방문이 마지막 방문이 되지 않기를, 계속 든든하게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있어 주기를 바라면서 간다. 대형 문고에 가야 할 일도 있고 예술서적만 파는 전문 서점에 가야 할 때도 있지만 서점 주인과 대화도 나눌 수 있고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가까운 동네 책방도 있었으면 좋겠다. 바둑에서는 돌이 살기 위해서는 두 집 이상을 지어야 한다. 두 집 이상인 돌을 완생이라고 하고 한집 이하의 집을 짓고 있는 돌은 미생이라고 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진오비 산부인과는 아직 미생이다. 얼마간일지 모르지만 아마 상당한 기간의 미래 동안에도 미생일 것이다. 그렇게 불투명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삶이지만 나는 아직 책을 사러 나갈 수 있는 건강이 있고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책을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이 있다. 그래서 옆에 수시로 깨는 탓에 잠이 모자라지만 아기를 누이고 책을 보는 산모가 행복하듯이 책을 살 수 있는 나도 행복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아직 불행하지는 않다. 물론 거기에 더해서 대형 서점과 동네 서점을 골라가면서 나들이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무언가를 내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한 가지밖에 고를 수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에게 즐거움이 아니다.
내가 대형 서점이든 동네 책방이든 책방에 가면 항상 들리는 곳은 미술 코너와 글쓰기 코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나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저 어중간하게 상위권 언저리에 있는 범생이일 뿐이었다. 상도 개근상 외에는 별로 받지 못했다. 다만 기억나는 상은 혼식 장려에 관한 글쓰기로 상을 받은 것과 미술 사생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이 전부다. 글과 그림은 어릴 때부터 내게는 친숙한 대상이고 거의 없는 친구의 역할을 대신하는 소중한 친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 시리즈 글에 문장과 그림이 함께 들어간 것도 내 인생행로를 생각하면 아주 뜬금없는 일은 아니다.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는 만종을 그린 밀레와 함께 바르비종 파의 화가로 들판이나 산 등 풍경을 많이 그렸다. 말년에는 인물화에 관심을 가졌다고 하는데 책을 읽는 여성의 모습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물론 코로 이외에도 책 읽는 사람 특히 책 읽는 모습의 여성을 그린 화가는 많다.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여성", 르누아르의 "책 읽는 여자", 피노 데니의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책" 등. 아마도 책을 읽는 여성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이유이지 않을까 추측한다.
그러나 사실 비평가들의 말에 의하면 코로는 책을 그다지 많이 읽지는 않았으며 그저 책을 사는 것을 좋아해서 센강변의 서점에서 책을 자주 샀다고 한다. 사실 책을 사놓고 읽지 않은 나와 비슷하여 더 동질감을 느낀다. 어떤 작가가 책은 읽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며 산 책 중에서 읽는 것이라고 했는 데 정말 맞는 말이다.
-여기 실은 그림-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책 읽는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