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두렵습니다.
맴돈다. 뱉어내려 했던 문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기찻길 건널목 앞 머뭇거린다. 기차가 다가와서 마음은 급한데, 단어 하나가 혓바닥에 들러붙어, 오도 가도 못한다. 그 한마디는 자음과 모음들로 갈라서더니, 머릿속에서 서로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앞자리 니은은 찾았는데, 다른 녀석들은 도통 잡지 못하겠다.
못 찾겠다 꾀꼬리!
“저…그… 노랑 통닭 가입하고 싶은데..”
대출 창구 뒤 앳된 얼굴은 이 느닷없는 단어에 실소를 터뜨리지 않고, 차분히 대꾸한다.
“고객님, 노란 우산 공제 말씀이시죠?”
오십이라는 반환점을 돌자, 나날이 되풀이되는 순간이다.
예술의 전당이 전설의 고향이 되고, 채식주의자는 식물인간으로 둔갑한다. 장안의 부킹을 독식하던 추억 속 나이트 돈텔마마는 맘마미아로 간판을 바꾼 지 오래다.
말이 이럴 진데, 글을 써야지 하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아닐까?
날 숨 한숨에 우주를 한 바퀴 돌아올 기세였던 생각의 거리는 이제 몇 미터도 못 가 갈 곳을 잃는다. 생각은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뚝하고 끊기고는, 찾지 못할 곳으로 숨어버린다.
고스톱이라도 매일 쳐야 하나? 초록창에 치매 예방법을 입력.
정신 차려보면, 손가락은 손흥민 기사를 스크롤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책 한 권을 완독 한 지도 몇 년 되었다.
이게 그 빌어먹을 숏 폼 중독? 핸드폰이 손에서 떠나면 초조해지고, 잠자기 전 잠깐 보겠다던 다짐은 새벽 어스름에 희미하게 바래진다. 메멘토 영화 속 주인공 가이 피어스처럼, 매일을 기록해 볼까?
아니야! 단어들의 나열 말고, A4 한 페이지를 문장으로 채워 보마 다짐해 본다.
점심시간 후, 나른함이 회의실을 채운다.
희끗희끗한 머리의 무리들이 원탁에 둘러앉는다.
“더 이상 고객에게 늑대소년이 될 수 없습니다. 이달 말까지 프로젝트 반드시 완료하여야 합니다.”
내 또래 김팀장이 의연하게 내뱉자, 모두 고개를 끄덕거린다.
야, 너두?
나는 참지 못하고 내뱉는다.
“그렇죠. 우리가 송중기가 될 수는 없죠.”
양치기소년 피터는 어느새 송중기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