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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키드 Jun 20. 2024

처음 보는 아파트 이웃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上)

아파트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내가, 바로 이 집의 주인이니까

2016년 겨울, 결혼을 준비하면서 아파트 매수를 고민하다 내 무지한 판단으로 매수를 포기했다.

그렇게 한번 놓친 기회는 그 뒤로 1년 반 동안 잡을 수 없었다.


역대급 상승장.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가 신고가를 갱신하는 상황에서, 감당할 수 없는 후회와 괴로움을 겪었다.

마침내 아파트를 사자는 결심이 서고, 매도자의 변심에 의한 거래 중단, 대출 이슈 등 뉴스와 인터넷 카페에 나오는 대부분의 경우를 나도 겪은 뒤에야, 긴 시간 고생끝에 결혼한지 1년 반만에 내집을 마련 하게 되었다.


골리앗을 쓰러트리기 위한

나의 작디 작은 조약돌, 구축 아파트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내 이름으로 등기를 치게 된 구축 아파트 매수기는 아래 시리즈 참고


https://brunch.co.kr/@alexkidd/55


그렇게 인연이 시작된 나의 아파트,

맞벌이와 육아의 사정으로 내가 들어갈 수 없었고

좋은 분들이 임차인으로 오셔서 잘 살아주시다 이사를 가게 되셨고, 나는 다시 이 집을 임대를 놓게 되었다.


계약갱신청구권이 생길만큼 전세가가 큰 파도를 친 적도 있었지만, 내가 새롭게 임대를 낸 시점에는 다시 전세가도 많이 하락했고 전세 이동에 대한 수요도 많이 줄어있었다.


어찌보면 매물 자체보다, 전세 이동 수요가 적었다.

몇년간 공급도 적지는 않았고, 계약갱신청구권 덕분에 보금자리를 4년을 보장 받을 수 있으니까.

(나도 전세를 사는 입장에서, 분명히 혜택을 봤고 다른 임차인들의 입장을 100% 공감한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정은 아파트의 대대적인 보수였다

구축 아파트 임대를 위한 보수 공사를 고민하시는 분들은, 아래 2개의 시리즈에 소상히 항목별로 작성해둔 것이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https://brunch.co.kr/@alexkidd/119


그렇게 시작된 아파트 수리와 이에 걸친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한번의 아파트 셀프 수리를 경험해본터라 공정별 스케줄 정리 같은 부분은 완벽했으나,

내가 놓친 한가지, 그리고 크게 배운 한가지가 있었다.


이해 관계자들과의 “공감과 배려, 규칙“이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사전에 나누지 못하면, 결국 현장에서 머리를 숙이는 건 커뮤니케이션 미스를 만든 내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결국,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공사, 관리, 안내와 배려, 쓴소리와 이해도 모두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아파트에서 사람과 공감하는 것은 불과 현관문 하나 사이다.


#1. 오래 된 아파트의 골칫덩이, 샤시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정남향의 햇빛이 따스한 집. 날이 좋으면 저 멀리 롯데 타워와 가까운 한강이 보이는 곳. 뒤로는 언덕을 따라 공원이 펼쳐지고, 앞뒤로 가장 높은 층이라 늘 쾌적한 그런 집.


다만, 오래된 집이라 생각보다 세월의 무게로 인해 여러모로 손 봐야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구축 아파트에 살고 계시거나, 임대를 주신 분들은 공감할 터.


여름에 비가 많이 올 때는 누수 걱정, 겨울에 너무 추울 때는 외풍 걱정,
그리고 봄이 되어가는 시기에는 결로 걱정으로 가을 빼곤 늘 느슨한 긴장이 연속됐다.

이 괴로움은 정말이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내가 임차인인 시절에도 뼈저리게 겪었다.
비가 새서 벽지가 다 곰팡이로 물들었는데 집주인이 어찌나 야속하던지.
10대 시절의 기억인데도 아직 눈을 감으면 선하다, 그 관리 안되던 집의 처참함.


내가 겪은 그런 불쾌함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고 싶지 않았다.

난 어른이고, 책임을 지고 싶은 사람이니까.


그래. 낡은 샤시를 교체하자.


내게 이 집이 오기까지, 어떤 주인도 샤시를 교체하지 않았다.

결국 근 30년을 버텨온 이 샤시가 더 이상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봄이 되기 전에 공사를 마치자."

큰 마음 먹고 샤시를 교체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상담과 실측까지 완료한 상황에서, 단 한가지 마음에 쓰이는 일은 바로 한달 간 엘리베이터 공사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다행히 업체 담당자분으로부터 공사 자체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고, 공사 날짜를 확정했다.


그렇게 바로 오늘, 공사의 날이 밝았다.

이제 계절마다 두려워할 일이 적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내가 살고 있는 집(회사가 멀어 임차를 주고, 나는 다른 집에 전세를 살고 있다)에서 차를 타고 아침 일찍 달려가는 길, 전화가 한 통 왔다.


시공 소장님이시다.


공사날 아침에 갑자기? 라는 생각에 일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침착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고 다급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2. 소장님으로부터의 전화 한 통에, 운전대를 잡은 손 외에 모든 것이 흔들렸다.

발신 연락처를 확인하고, 별안간 쌔 한 기운이 다가왔다.


주차 문제일까?

구축 아파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나 "주차" 이슈다. 이중 주차는 당연히 기본, 오죽하면 주변 공영 주차장에 돈 내고 주차를 한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 말 다한 것 아닌가. 그런 문제로 주말보단 평일로(적어도 출근길에 차를 가지고 이동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날짜를 잡았는데.


"안녕하세요. 고객님, 지금 현장에 도착했는데
차를 도저히 댈 수가 없어요."
 

"정말요? 제가 어제라도 가서 미리 자리를 확보해둘 걸 그랬어요."


"아니 지금 그것보다, 관리사무실에서 오늘 샤시 공사하는 걸 전혀 모르고 계세요. 경비원 분도 들은 것이 없다고 어떻게 도와주냐고 말씀하시는데 확인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아. 운전을 하는 눈앞이 잠시 캄캄해졌다.

분명 통화했는데. 그날 공사할건데 경비원분께 따로 말씀드려야할 사항 없냐라고.


#3. 아파트마다 '그라운드 룰'이 다르다. 하지만 '상식'으로 불리는 기준은 동일하다.


대부분의 경우, 아래의 2개 정도 룰이 있다.


 1. 공사에 대해 주민들에게 사전 공지할 것

엘리베이터 내 시공 사전 공지(양해요청서) :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1층 로비에 '게시판'이 있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샤시의 공법과 견적, 일정, 임차인 분 등 이런 관계들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정작 가장 중요한 현장 관리의 주체인 관리사무소와의 소통에 대한 이슈를 놓친 것이다!

 

2. 주변 세대 시공 동의 접수

이건 아파트마다 다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전혀 이런 이슈가 없고,

대부분 1번으로 갈음되는데(양해요청서 등), 이 아파트는 시공 동의서를 접수 받는 것이었다!

 

결국 난 2가지 모두 안 한 것이다.

안 했다기보단, 놓쳤다. 샤시 공사 일정을 관리사무소와 이야기하면서 '공사일이 이러 저러 하니,

외벽 크랙을 확인해달라'는 맥락으로 진행이 되다보니, 정작 '공사에 필요한 것들'을 놓친 것이다.


관리사무소에서 내가 문의할 때

재차 확인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분들의 귀책을 잡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얼마나 바쁘시겠는가? 내가 당연히 '혹시 공사 관련 필요한 것 있을까요?'라고 물었어야 하는게 맞다. 이건 규칙을 넘어선 상식이니까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최악의 사태.

공사가 늦고 빠르고를 떠나 시작도 못하고 있다니.


가장 어려운 상황일수록, 침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가며 체득한 가장 큰 원칙. 애써 침착하자. 침착하자.


#4. 모든 것이 얽혀버렸다. 원인은? 바로 나였다.

소장님과의 통화 이후,

올림픽대로의 꽉 막힌 차량의 늪에서 최대한 깊고 느린 숨을 쉬면서,

나는 요동치는 마음의 핸들을 억지로 꾹 눌러 잡았다.


'내가 놓친 뭔가가 수십명(아파트 세대원들, 관리사무소, 시공팀, 경비 선생님 등)의

불편으로 직결된다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중압감이 엄청났다.


상황은 매우 불리했고, 이대로 나는 패닉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모든 상황에 대해 결국 무지하고 안일했던 내 선택에 대한 '자책감'으로 이어졌다.

관리사무소는 프로세스를 지키지 않은 공사를 허용해 줄 리 없었다.(민원 직결)

시공팀은 분명 내가 전화를 했다고 했는데 이렇게 협조가 안되니 답답한 상황(그 와중에도 계속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전화하고 계셨다)

경비 선생님도 들은 바 없이 갑자기 시공 업체에서 문의하니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그 와중에도 '스카이 차량(고층용 사다리)'를 빌린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런 장비는 시간이 바로 돈이다. 쓰지 않아도 빌린 돈이 나갈 수 밖에 없는. 심지어 추가금을 내고 말고를 떠나, 다음 스케줄이 있으면 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 올림픽대로 앞뒤로 차는 꽉 막혀있고, 하늘에선 비가 내린다.

네비게이션? 출발 당시보다 40분이 늘어난 10시 30분 도착을 알리고 있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요동치는 마음을 붙잡고,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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