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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졔이 Sep 06. 2023

잡스처럼 살고 싶다

작별 11. 옷방에서 발견한 쓰레기들

누군가 내게 의식주를 중요도 순으로 배열하여 읽으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주식의'로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먹는 문제와 복식의 문제 사이에는 건너기 어려운 깊은 강이 존재한다고도 생각한다.


생활에 알맞게 쾌적하고 안락한 공간에서 나만 혼자 엉망인 상태로 너부러지는 것은 인최고의 행복이다. 그래서 이사를 가면 하다못해 전등 스위치라도 값비싼 것을 구해 교체하는 편이다. 스위치는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설치되 데다 자주 손대는 물건이기도 해서, 품질이 좋고 취향에 맞는 것으로 바꾸어 놓으면 조명을 켜고 끌 때마다 행복해질 수 있다.


먹는 문제는 애매하다. 경험 차원의 문제라면 최고로 맛있고 비싼 식당에 값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이것을 매일의 식단에 관한 문제로 생각한다면, 어차피 나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 데다 편의점 족발도 맛있고 장충동왕족발집의 앞다리살도 맛있어서 그냥 족발이기만 하면 된다. 요컨대 굶지 않는 매일이면 충분 입맛에 맞는 메뉴를 고를 수 있는 환경이기까지 하다면 훌륭하다. 사소한 차이를 분간해 낼 취미까지는 내게 없는 것 같다.


의복 다. 한국의 오천만 패션피플에게는 정말 송구한 이야기지만, 사람이 빨개 벗지 않았으면 그뿐 아닌가. 옷을 경험으로 여기는 일의 즐거움을 잘 모르겠다. 많은 경우 내가 옷으로부터 얻는 감각은 춥거나 따뜻하거나, 덥거나 시원하다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우면 시원한 옷을 입고 추우면 따뜻한 옷을 입는다. 따뜻하게 입었는데도 추우면 외투를 입는다. 외투를 입어도 추우면 목도리나 장갑 같은 선택지가 있는데 간수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추운 쪽을 택한다. 짐이 많으면 큰 가방, 적으면 주머니. 신발은 요새 신는 그거. 밑창이 떨어지면 새로운 신발. 다소 우스꽝스러워질 수야 있겠으나 구태여 신경 쓸 바는 아니라는 생각.


격식이나 조의를 갖추어야 할 때는 검은색 정장을 입는다. 결혼식과 같이 축하해야 하는 자리에 참석할 때는, 이거야말로 난관이다. 밝은 색의 옷을 입되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들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데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무슨 마법인데. 어떡해야 하는 건데.




옷방 정리가 창고 정리보다는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 옷방이 생긴 이유는 단지 고양이 옷을 격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설치식 행거 하나와 5단 서랍장 하나에 두 명 분의 계절옷이 전부 수납되니 규모로 치자면 작은 축에 속하다. 


하지만 방문을 열자마자 깨달음이 왔다. 무엇을 기준으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말인가. 옷에 관한 한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데.


또 하나 문제인 것이, 지금 다니는 회사는 '옆자리 동료가 출근만 하면 됐지 옷까지 예쁘게 입고 와야 하냐'라는 조직 문화를 탑재한 곳이기 때문에 그냥 같은 옷을 여러 벌 사서 돌려 입어도 됐다. 그런데 나는 곧 퇴사를 한다. 직장이 되었든 외주가 되었든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일터를 찾아야 하고 그곳의 문화에 맞추어야 한다. 지금처럼 잡스식 옷차림을 고수하는 일은 곤란할 수 있다. 그러면 안 입는 옷이라고 막 버려서 될 게 아니라 앞으로를 위해 필요할 법한 것은 남겨두는 편이 좋다.


사무실을… 경기도로 이전하면 안 되냐고 건의라도 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을 한번 해봤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많은 분들이 옷에 관한 자기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었는데, 우리 집과는 살림의 규모부터가 천양지차인 경우가 대다수라 구경하는 내내 별세계를 다니는 듯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옷 정리에 관해 말하는 모든 이가 안 입는 옷은 제발 버리라는 이야기를 적어두었다는 점이다.


오… 그렇군요.


기술적인 부분에서 가장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래의 글이다. 각선생님의 글에 따르면, 내게 필요한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1) 김장봉투 2) 같은 종류로 통일된 옷걸이.


정리를 하기에 앞서 튼튼한 김장봉투를 준비한 뒤, 버릴 것부터 처분한다.  … 옷의 양을 정확히 알아야 자리 정하기가 쉽다. 이때 주의사항은 한꺼번에 다 꺼내지 말고 그만하고 싶을 때 10분 내로 멈출 수 있는 범위만큼만 일을 벌인다. … 옷걸이 종류가 다 달라 높낮이가 들쑥날쑥일 경우, 옷의 입출입을 방해받는 건 물론 많은 양을 걸 수 없다.

옷장 정리: 순서대로 따라 하면 쉬운 단계별 옷 정리 하는 법 by. 각선생 (Aug 10, 2023)


원리적인 측면에서는 경계성미니멀님의 글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1) 안 입는 것은 버린다 2) 필요하면 마음에 드는 것으로 두 벌 산다.


좀 불편해도 예쁜, 혹은 예전에는 잘 입었지만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옷은 과감하게 비운다. … 내게 딱 맞는 바지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동시에 그런 바지를 찾기 위한 에너지는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 후로는 마음에 쏙 드는 바지를 발견하면 두 가지 색으로 두 벌 산다.

같은 옷을 두 벌 사고 계절별 옷장 정리는 하지 않습니다 by. 경계성미니멀 (Sep 01, 2023)


옷을 고르는 일에 관심이 없고, 거기에 쓸 에너지가 부족해도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을 때 두 벌씩 사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내게도 잘 맞는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처럼 매일매일 같은 옷을 입을 수 없게 돼도, 두 벌씩 장만한 옷을 징검징검 입으면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도 피곤하지도 않을 것 같고?



옷방에서 발견한 쓰레기들

방치됐던 옷들은 모두 처분하려 한다. 그 밖에도 이러저러한 자질구레들이 옷방에 보관되어 있다. 보다 적절한 위치를 찾아 다시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지난 주말을 잠으로 날린 것이 뼈 아프게 후회된다… 다음 주에는 내내 출장이 예정되어 있어 시름이 깊다. 현생은 언제나 덕질에 방해가 된다.



회사의 결정권자님께

오늘은 지각을 하지 않아 당당히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한 가지 고견을 여쭙고자 합니다. 사직서까지 제출해 놓고 질척거려서 송구합니다만 혹시 사무실을 경기도로 이전할 계획은 없으실까요. 가능하면 북부 말고 남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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