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소동이 끝난 뒤

싸우는 사라들

by 은예진

그 사이 기생들은 종로 거리 여기저기로 흩어져 시위를 단속하던 경찰들이 경찰서로 돌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들 틈에서 상황을 살피던 본이는 경찰서 밖으로 뛰어나오는 유성준을 보았다. 그녀는 유성준을 향해 나서지 않고 그저 조용히 웃음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양산을 흔들 뿐이었다. 그녀의 양산에는 이름 대신 태극기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또 한 사람이 주머니를 뒤지다가 비어 있음을 알고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일본에서 가져온 계피 과자가 떨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자꾸만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그는 이제 계피 과자를 먹기 위해서라도 일본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유성준은 무사할 것이며 이 나라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힘을 가졌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힘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려웠다. 아이자와 교수는 유성준이 부디 무정부주의자 동방 연맹에서 조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를 빌었다. 유성준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아들을 보듯 그의 제자이자 동지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일순간 종로 바닥의 기생들이 모두 사라졌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다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보았다. 이제 종로에는 좋은 구경거리가 끝났다고 입맛을 다시는 사내들과 종로 경찰서가 불령선인들에게 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출동한 헌병대원들 뿐이었다.


헌병대원들이 행인들을 닥치는 대로 붙들고 구타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미처 자리를 뜨지 못한 사람들은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사이렌이 길게 울려서 혼란스러웠던 종로 거리 시위의 끝을 장식했다.


이제 종로 거리는 텅 비었다. 그저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고무라만 길길이 날뛰며 닥치는 대로 총을 쏘아댈 뿐이다. 하지만 이미 유성준은 달아난 뒤였고 경찰이 세 명이나 죽었다. 의열단원도 총격전 도중 두 명이 죽었으나 잡힌 사람은 없었다.





노인은 좌석에 기대에 졸고 있었다. 아까부터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주 옆으로 기울어졌다. 옆에 앉은 젊은 여자가 귀찮은지 그런 노인의 어깨를 옆으로 밀었다. 노인은 곧 허리를 세우고 미안하다는 말을 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다시 몸을 기울였다. 허름한 바지저고리에 백발의 노인은 얼굴색이 좋지 못했다. 거기다 맡기 거북한 냄새까지 나서 옆자리 처녀는 아주 곤란한 얼굴이었다.


교복을 입고 모자를 단정하게 쓴 안경쟁이 청년 하나가 그들 앞에서 와서 섰다. 기차 좌석 표와 젊은 여자를 번갈아 보더니 씩 웃는다. 젊은 여자는 자신을 보고 웃나 싶어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실례지만 그 자리는 제 자린데요.”


청년이 표를 보여주자 여자는 황급하게 자신의 표를 확인한다. 그러잖아도 냄새나고 불편한 자리였던지라 냉큼 일어선다. 청년이 그 자리에 앉자 노인은 실눈을 뜨고 청년을 바라본다.


“방학인가? 학생이 이 시간에 어째 기차를 탔나?”


“방학은 아닙니다만 만주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뵈러 갑니다.”


“그래 이거 여행 동료가 생겼구먼. 나도 만주로 가는 중인데.”


“그러세요? 긴 여행길에 좋은 동반자가 생겼습니다.”


“동반자는 무슨…… 나같이 냄새나는 늙은이가 좋은 동반자는 아니지. 좀 전에 일어난 그런 젊은 처녀나 돼야 좋은 동반자지.”


“하하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닙니다.”


계속해서 졸기만 하던 노인인 이제 대화에 재미가 들렸는지 계속 이야기를 한다.


“나는 말이야. 더 큰 일을 해야 한다고 해서 만주로 가는 중인데 내키지 않아. 내가 농사짓던 밭도 있고 논도 있는데 이곳을 떠나서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려. 농사짓는 것이 힘이 들어도 이곳에서 하고 싶은데 말이야. 내가 뿌린 씨는 내가 거두어야 하는데.”


“그러세요? 저랑 똑같은 마음이시네요?”


“뭐? 청년도?”


“네, 저도 마찬가지예요. 부모님은 만주에서도 공부할 수 있다고 하시지만 제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내 민족이 있는 내 나라에서 하는 공부가 최고지요.”


“진짜야?”

“네?”

“진짜면 우리 내려버릴까?”

“그, 그게 하지만 부모님 하고 약속한 것도 있어서.”

“그렇지. 아하하하. 내가 그냥 해본 소리야. 청년은 신경 쓸 것 없어. 미안하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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