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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웨딩드레스

by 은예진

서아의 웨딩드레스는 채영의 강력한 추천으로 레바논 출신의 디자이너 모하메드 아시의 아쉬 스튜디오에 맡겼다. 아쉬 스튜디오에서는 시간이 촉박하다며 난감해했지만 채영과 우혁이 해외 인맥을 동원해 성사시켰다


채영이 모하메드 아시를 추천하자 우혁의 눈이 반짝였고 두 사람은 처음으로 의기투합했다. 하이디 클룸, 사라 제시카 파커, 셀렌 디온, 레이디 가가 등에게 사랑받는 디자이너라는 안내 책자를 보고 서아는 도대체 드레스 가격이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우혁과 채영은 드레스 가격 따위 네가 알 필요 없다며 너는 그저 예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본사에 직접 오더를 넣었지만 가봉은 국내 수입 회사에서 할 수 있었다. 채영은 드레스 디자이너와 스타일 등에서 도움을 줬음에도 마지막 순간에는 빠져서 두 사람의 웨딩드레스니 두 사람이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우혁은 그런 채영을 보고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아쉬 스튜디오의 드레스는 아랍 문화권 특유의 느낌이 있어서 드레스 소재가 두툼하고 빳빳한 편이었다. 노출을 최대한 적게 하고 진주를 레이스처럼 단 드레스 디자인을 본 우혁과 서아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선택된 드레스를 오늘 가봉하는 날이다.


드라마 촬영 때문에 바쁘다는 채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시간을 냈다며 두 사람보다 먼저 숍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구 작가가 가봉 장면을 촬영하겠다고 하더니 채영에게 같이해 달라고 어지간히 보챈 모양이었다.


“언니, 보고 싶었어요.”


서아와 채영이 만나자마자 와락 껴안고 폴짝거리자 우혁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저 숙녀분들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니?”


민석이 난처하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나한테 묻지 마. 뭔가 여자에 대해 더 어렵게 느껴지니까.”

“나도 그렇다. 여자가 어려운 건지 채영이가 어려운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쟤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려고 해.”

“그렇지?”


민석의 말에 우혁이 키득거리고 웃었다.


“우리 서아 결혼식 준비하느라 다이어트 좀 한 모양인데.”

“그래 보여 언니? 아닌데. 살 안 빠져서 드레스 가봉하기 겁났는데. 그나저나 언니야말로 요즘 드라마에서 보면 회를 거듭할수록 완전 예뻐지더라. 촬영 감독님이 언니한테만 반사판을 열 개쯤 대주는 것 같아.”

“어머, 정말?”


서아와 채영이 서로 칭찬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결국 우혁이 끼어들어 두 사람을 떼어 놓아야 했다.


“숙녀분들 반가운 마음은 알겠지만 누가 보면 두 사람이 결혼하는 줄 알겠습니다. 바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신 저분들을 위해서라도 이제 떨어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채영과 서아는 머쓱한 얼굴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숍 매니저를 돌아보았다. 숍 매니저는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섰다.


“두 분을 보는 것만으로 눈이 호강입니다. 하지만 가봉 일정이 빠듯하니 어서 입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아, 죄송합니다.”


서아가 머쓱한 표정으로 숍 매니저를 바라보며 머리에 손을 얹었다. 채영은 서아의 그런 태도가 마뜩지 않은지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숍 매니저는 재빨리 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아가 숍 매니저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뗀 순간 갑자기 그녀와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 커튼이 둘러쳐졌다.


화들짝 놀란 서아가 어깨를 움찔하자 숍 매니저가 엄마 같은 미소를 띠며 문을 열었다. 손에 장갑을 낀 직원들이 바디에 입혀놓은 드레스를 조심스럽게 들고 들어왔다.


서아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그녀 앞에 서 있는 꿈같은 드레스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냥 예쁘다는 말 밖에 못하겠어요.”


숍 매니저가 쇼핑백을 들고 다가오며 말했다.


“마음에 드시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저희도 드레스가 기대 이상으로 예뻐서 신부님 안목에 감탄했습니다. 본사에서 신부님께 보여드린 디자인을 저도 봤는데 이 드레스가 가장 아름다웠어요.”

“감사합니다.”


서아는 차마 손을 대기 어려운 보물을 상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드레스 치맛단을 살짝 들추어 보았다. 작은 진주알이 촘촘하게 박힌 치맛단은 독특하면서도 고상하고 화려했다.


“신부님, 드레스 피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속옷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드레스에 맞추어 속옷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 탈의실에서 이 속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주세요. 드레스는 여기서 입으셔야 하니까 속옷만 입고 나오세요.”


속옷만 입고 나오라는 말에 서아는 주저하며 탈의실로 들어갔다. 웨딩드레스는 도움을 받아야 입을 수 있는 옷이니 당연한 일인데도 속옷만 입고 나오라는 말에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흰색의 브래지어와 팬티는 무늬 없이 단순했지만 보정 효과가 좋았다. 브래지어에 맞닿고 팬티를 덮는 웨이스트 니퍼를 착용하자 허리가 굉장히 날씬해 보였다. 처음 입어보는 보정 속옷의 효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위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속치마를 입자 속옷 차림으로 나가는 게 별로 민망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웃음 지었다.


속옷을 입고 나가자 매니저는 그녀에게 다가와 매의 눈으로 스캔하더니 웨이스트 니퍼를 한 단계 더 조였다. 서아는 영화 속에서 흑인 하녀가 고래 뼈로 만든 코르셋을 조여 대던 장면을 떠올리며 자신도 그 시대의 여자들처럼 갈비뼈에 금이 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서아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바디에서 드레스를 벗겨 서아 앞에 내려놓았다. 서아는 치마 속으로 걸어 들어가 서 있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머지는 직원 두 명이 붙어서 드레스를 들어 올려 팔을 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매니저와 직원들은 서아의 의견을 물어가며 몇 군데 핀을 꼽았다. 서아가 보기에는 완벽해 보였지만 매니저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핀 꼽기를 마무리한 매니저가 서아를 의자에 앉히더니 머리를 깔끔하게 포니테일로 묶어 짧은 베일을 씌워 주었다.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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