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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신부를 위해

by 은예진

서아는 거울에 비친 낯선 자신의 모습을 보며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몰라 난감한 눈빛으로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제가 아닌 것만 같아요.”

“글쎄요. 우리가 보기에는 신부님의 내면에 천사를 최대한 끌어낸 디자인 같은데요. 자 이제 커튼 밖에서 지루하게 기다리고 계신 분들에게 보여드릴 차례입니다.”


서아가 손을 뻗어 매니저의 팔을 잡았다.


“결혼식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긴장되지요?”

“원래 다 그렇습니다. 심호흡 한 번 하고 일어서세요.”


매니저는 그녀를 이끌어 한 계단 위에 있는 중앙에 세웠다. 직원들이 스위치를 올리자 서아의 머리 위에서 환한 조명이 비쳤다. 커튼이 쳐질 때와 다르게 한껏 기대감을 고조시키며 천천히 걷혔다. 서아의 모습이 모두 드러나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대박! 은서아, 짱이다.”


채영이 어쩔 줄 모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달콤한 너의 맛 제작진들도 술렁이며 드레스와 신부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고 소곤거렸다. 정작 우혁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서 서아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다소곳이 시선을 떨구고 있던 서아가 고개를 들어 우혁을 바라보았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서아를 보자마자 영혼이 빠져나간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우혁이 마침내 서아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아의 입매가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나 어때요?’


서아의 눈이 묻고 있었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예쁜 신부는 세상에서 처음 본다고 너보다 너 아름다운 여자는 본 적이 없다고 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이 촬영 중인 것도, 제작진을 비롯해 숍의 직원들과 동행한 민석, 채영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서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우혁이 한 발짝 걸어 나가 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아가 조심스럽게 우혁의 손을 잡았다. 순간 우혁은 성큼 대들어 서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 마감이 다 되지 않은 드레스를 입혀놓은 숍의 직원들이 놀라서 허둥지둥 달려들었다. 반면 그림 같은 장면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가 바짝 대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신부가 내 여자라니 믿어지지 않아.”


우혁이 서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서아는 우혁의 목을 끌어안고 환한 햇살 같은 웃음을 뿌렸다. 서아의 웃음은 반짝이는 금가루처럼 허공을 가로지르고 흩날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를 들고 두 사람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혁은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서아를 그의 품에서 내려놓는 순간 모든 마법이 풀려버릴 것만 같아 겁이 났다.


“내려놓기 싫은데 어쩌지.”


우혁이 서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자 서아가 그의 뺨에 입술을 댔다.


“나도 이 상태가 나쁘지는 않은데 숍의 직원들이 사색이 됐네.”

“이거 실망인데. 나는 서아 너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넌 그런 것까지 보인단 말이야?”


서아가 우혁의 뺨에 다시 한번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드레스는 오빠가 입은 게 아니고 내가 입은 거라서.”


우혁이 서아를 내려놓자 직원들은 황급하게 드레스를 벗어달라고 요청했다. 우혁은 협찬받은 옷도 아니고 내 돈 주고 사는 옷인데 뭘 그렇게 유난인가 싶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숍 매니저는 그런 우혁에게 아쉬 스튜디오가 얼마나 완벽함을 추구하는 가에 대해 지루하게 긴 설명을 했다.


바디에 걸어놓은 드레스 앞에선 채영이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언니 덕분에 너무 예쁜 드레스를 입게 돼서 고마워요.”

“나도 실물이 이렇게까지 예쁠 줄은 몰랐어. 목부터 손목까지 꽁꽁 싸맨 드레스가 이 정도로 세련돼 보이고 예쁠 수 있다니 이걸 보니까 나도 막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언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서아가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부끄러운 듯 웃자 채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네가 아니었어도 우혁 오빠한테 나는 아니었어. 내가 괜히 너한테 분풀이한 거지.”


서아가 신기하다는 듯 채영을 바라보았다.


“오빠 마음 알면서도 그 소동을 피웠어요?”


채영이 허리에 손을 얹고 턱을 치켜들더니 싱긋 웃는다.


“오빠 마음 따위 중요하지 않거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뭘 해도 끝까지 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아.”

“언니, 대단해요.”


그때 우혁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툴툴댔다.


“서아야, 너랑 결혼할 사람은 윤채영이 아니고 나야, 나! 강우혁!”


채영이 재빨리 서아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우혁을 노려보았다.


“우혁 오빠, 서아 울리거나 하면 내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알지? 내가 서아 신부 들러리인 거. 신부 들러리로서 경고하는 거야. 잘해!”

“눼, 눼. 걱정 붙들어 놓으세요. 이 한 몸 서아를 위해서 헌신하겠습니다.”


가봉이 끝나고 네 명이 같이 저녁을 먹었다. 채영의 단골 레스토랑에서는 오늘 서아가 웨딩드레스를 가봉하는 날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특별한 와인을 내왔다.


머리가 희끗한 소믈리에는 신부인 서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와인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웨딩드레스를 연상시키는 순백의 보틀로 디자인된 안나 드 코로드뉴(Anna de Codorniu)입니다. 오늘 같은 날 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만한 와인이지요.”


가자미 구이와 와인 홍합찜에 오늘 서아가 입었던 웨딩드레스처럼 화사한 흰색병에 든 스파클링 와인은 분위기를 들뜨게 만들었다. 와인 잔을 든 우혁이 서아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부를 위해!”


그때 갑자기 테이블 위에 커다란 꽃다발이 툭 떨어졌다. 당황한 네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꽃다발로 쏠렸다.

민석의 잔을 뺏어 든 꽃다발의 주인이 큰소리로 따라 했다.


“신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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