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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e 세인 Jan 09. 2024

겨울 생일

옥상시선 2


어젯밤 달을 보러 옥상에 올라갔다가

하늘을 뒤덮은 구름이

바다 위를 세차게 가르고 가는 배가 거느린

넓고 긴 파문처럼 퍼져

온 하늘을 흘러가는 것을 봤다

십일월이 다 가는 마당에

진작 왔다는 겨울에 이제야 자리를 내주는 듯이

가을배가 떠나는 모양이었다


오늘 아침 구름을 마저 보러 올랐을 때는

돌연 눈앞에 무엇인가

작은 것들이 드문드문 흩날리기 시작했고

시린 손끝이 곧

눈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공중에 떠 있던 수증기마저

영하의 온도를 어쩌지는 못하겠다는 듯이

희게 얼어 부둥켜안은 모양이었다


다 늦어 눈을 보러 다시 올라갔다가

무거운 배를 안고

나를 낳으러 집을 나서 걷다가 뛰는 밤에도

바람이 문득 사납진 않았을까 하고

어린 엄마를 그려 봤다

몇십 년의 사나웠던 날들이

태어나 버린 것을 막을 생각은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 떼며 비켜서는 모양이었다



Seine






십일월에서 십이월로 가는 길목, 생일을 앞둔 어느 날에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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