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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Apr 11. 2020

목이 마른 사막에도 꽃은 핀다. (上)

자신이 불행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지원이 한숨을 쉬며 모니터에 뜬 검은 바탕에 흰 글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턱 하니 발을 걸친 테이블에는 이미 너저분한 이면지와 태블릿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머리가 조금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왼쪽 머리를 벅벅 긁었다.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고 나온 손에 이름 모를 찝찝함이 묻어 나왔다. 머리를 언제 감았더라? 근데 나 오늘 밥은 먹었나? 


하루를 돌아보니 씻지도 먹지도 않았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지원은 머리도 식힐 겸 중앙통제실에서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엉겨 붙은 머리카락만큼 늘어진 발걸음이 텅 빈 통제실에 퉁퉁 울려 퍼졌다.


식당에 도착한 지원은 식료품 서랍으로 다가가 밀봉 팩을 뒤적거렸다. 생식바 17개, 단호박죽 5개, 라면 7봉지, 된장국 13봉지, 씻고 마실 수 있는 공용 물 90L. 지원이 가진 식료품 전부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생식바 하나를 꺼냈다. 생식바만 그득히 남아있는 모습을 보며 편식했던 지난날들이 후회됐다.


지원은 밀봉 팩을 뜯어 생식바 끄트머리를 베어 먹었다. 퍽퍽한 식감에 입안의 수분이 전부 메말라가는 기분이었다. 한 끼 식량으로 하루를 버틴 지 58일째.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니 피부가 푸석해지고 여기저기 갈라져 하얗게 일어났지만, 지원은 제 피부 각질층에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다.


생식바를 들고 다시 중앙통제실로 돌아왔다. 원래 음식은 모두 식당에서만 먹어야 하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원은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헤매는 동안 이미 다들 죽었겠지. 적어도 지금은 통제실 내에서는 다른 누구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이미 아무도 없으니까.


지원은 생식바 절반 정도를 한 번에 씹어먹었다.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는대도, 설령 이미 모두 죽었다 해도 저는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맛이 있든 없든 뇌는 칼같이 지원이 음식물을 섭취하는 중임을 인지했다. 만 하루 만에 공급되는 영양분에 어느새 생존본능이 조금씩 살아났다. 


지원은 침과 적절히 섞인 생식바 맛에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입은 생식바를 씹으면서도 눈은 한 곳에 고정되어있었다. 모니터에는 ERROR라는 빨간 글씨가 깜박이고 있었다. 글자를 보면 볼수록 인생 자체에 에러가 난 기분이었다.


지원은 아무도 없을 걸 알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의 온기란 찾아볼 수 없었다.

2038년 8월 22일


그가 혼자 우주를 떠돌게 된 지 58일째 되는 날 오후였다.








약 2개월 전, 혼자가 될 줄 몰랐던 그 날. 여느 날과 똑같이 대형 모니터에 우주선 전면이 입체모형으로 떠 있었고, 우주선 외부 CCTV 화면들이 일정한 속도로 번갈아 가며 모니터를 채우길 반복했다. 


화성탐사선 K-38은 모두가 자는 와중에도 제 할 일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우주선과 깨끗한 궤도까지 모든 게 평소와 같았다. 화성 탐사를 마친 연구진은 이제 2주 뒤면 그리운 가족에게 돌아가리란 사실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날 오후 단 한 가지 다른 게 있었다면, 중앙 통제실에 작은 경고음이 울렸다는 점이었다. 그날 당직을 서던 한수가 울리는 경고음에 졸린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켰다. 키보드를 몇 번 두들겨보니 오른쪽 엔진 출력값에 오류가 있었다. 양쪽 엔진 출력값이 다르면 우주선의 궤도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얼른 엔진 제어실로 가서 고쳐주어야 했다.


한수가 한 번 더 하품하며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은 통제실을 나설 준비를 착착 진행했고, 머릿속은 조금의 갈등이 있었다. 중앙 통제실은 항상 한 명 이상의 파일럿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화장실 다녀오는 정도의 짧은 시간은 어느 정도 허용했지만, 지금 한수가 가야 하는 곳은 엔진 제어실이었다. 제어실은 자잘한 수리나 수정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인지라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매우 컸다. 분명 엔진 시스템 수정을 한 뒤에 다른 오류는 없는지 제어실 전체를 돌아봐야 할 게 뻔했다. 


한수가 남은 파일럿 셋 중 누구를 깨워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저 멀리서 중앙 통제실로 들어오는 지원이 보였다. 한수는 반가운 마음이 앞선 동시에 굉장히 의아했다. 저 늦잠꾸러기가 웬일로 새벽 기상을 했지. 아직 기상 시간이 좀 남았는데.


"지원아. 좋은 아침. 아니 좋은 새벽. 벌써 일어났어?"

"어. 개꿈을 꿔서 잠이 다 깼지 뭐야. 통제실 두고 어디가?"

"통제실 당직 바통터치 좀 해줘."

"넌 어디 가고? 그리고 나 그제 당직이었거든?"

"뻔한 당직끼리 왜 이래. 파일럿이 고작 넷뿐인데 의리 없이. 나 엔진 제어실 가. 오류 떴어."

"그럼 그렇다고 진작 말을 하지. 다녀와. 무전하고!"

"어!"


사정을 들은 지원은 통제실 한가운데 의자를 골라 털썩 앉았다. 전체 화면에 떠 있는 입체 모양 우주선과 광활한 우주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제어실 쪽에 작은 불이 빨갛게 깜박이고 있는 것조차 별같이 아름다워 보일 정도였다. 그때까지는 둘 다 그저 평소와 같은 단순한 오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십 분 뒤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지원이 제어실에서 돌아오는 한수와 같이 먹을 아침 메뉴에 대해 고민하던 찰나에, 곧 돌아올 줄 알았던 한수에게서 무전이 왔다.


"지원아. 캡틴이랑 전 대원 비상 소집해. 오른쪽 엔진 연료가 샜어."


그 한 마디에 몸이 기계처럼 반응했다. 지원은 바로 비상 호출 버튼을 눌러 모든 대원을 깨웠다. 선내에 큰 비상 경고음이 가득 울렸다. 하지만 재빨리 움직였음에도 지원에게 제일 먼저 도착한 건 불행이었다. 비상 호출을 한 지 채 1분이 되기도 전, 오른쪽 엔진 쪽의 폭발음과 동시에 중앙 통제실과 복도가 전면 폐쇄되었다. 


개인 방에서 단잠을 자던 대원들은 비상 탈출 시스템 작동으로 각 방 도킹 연결이 풀려 우주 밖으로 배출되었다. 곧이어 화성 탐사 자료가 있던 중앙 통제실과 그와 붙어있는 의료실, 식당이 통째로 비상 엔진과 같이 우주로 튕겨 나갔다.


비상 엔진 발진으로 심하게 흔들리던 선내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지원은 곧바로 사태 파악에 나섰다. 다행히 대원들 개인 방 18개가 모두 정상이었지만, 엔진 제어실과 그 밖의 우주선 본체는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이제 조각난 우주선은 정처 없이 우주를 떠돌게 될 터였고, 다시는 한수와 같이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지원은 순식간에 한수를 잃은 슬픔에 정신이 아득했다. 하지만 아직 남은 대원들의 목숨이 제 손에 달려있음을 인지하자, 지원은 마냥 슬픔에 잠겨있을 수만은 없었다.


엔진 폭발로 인해 각 방과 통제실의 모든 궤도가 틀어졌다. 지원이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살아남은 대원들과 연락해 흩어진 방을 차례대로 도킹하는 것. 중앙통제실에만 비상 엔진이 달려 있기 때문에, 지원이 얼마나 빠르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질 예정이었다. 이제는 조용해진 통제실에 지원이 덩그러니 서서 주먹을 꽉 쥐었다. 생사를 모르는 대원들의 목숨이, 귀가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우리를 목 빠져라 기다리는 가족이 고스란히 지원의 어깨에 얹어졌다.








그로부터 58일이 지났지만 엔진 폭발 때문에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는지 통신장비 자체가 말을 듣지 않았다. 우선 각 방에 연락을 취하기 위해 시스템 설정을 만져봤지만, 통신장비는 여전히 먹통이었다. 창을 통해 바깥을 둘러봐도 광활한 우주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뭐부터 해야 할까? 그나마 다행인 게 딱 하나 있다면, 지원이 우주선 장비를 수리, 유지, 관리하는 파일럿이란 사실뿐이었다.


애초에 화성 표본 채취와 화성의 희박한 수분을 응집하는 기계를 놓고 오는 게 K-38 팀 목적이었다. 고로 굉장히 간단한 한 달짜리 탐사를 예상한 상태로 우주선에 올랐고, 이미 지구 근처까지 온 터라 남아있는 식량 자체도 많지 않았다. 식당으로 달려가 대충 계산해보니 혼자 3끼를 모두 먹는다면 27일 치 식량이 남아있었다. 이제부터 하루에 한 끼씩으로 제한한다면 약 80일 정도 여유가 있었다. 각자 흩어진 방에도 비상시 15일 치 식량이 있으니 통신장비만 해결하면 모두가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지원은 다시 통제실로 돌아와 어느 부분이 손상되었는지 정확히 파악한 후, 문제에 대한 해결 예상 기간을 약 2주 정도로 예상했다. 우선 뭐든지 움직여야 했다.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맨 처음 찾아온 불행을 방출시키고 실낱같은 희망에 숨을 불어넣었다.


허나 우주는 녹록지 않은 공간이었다. 서로 연락이 끊긴 채 우주를 떠돈 지 58일째. 이미 손상된 선실은 모두 임시방편으로 고친 상태였지만, 통신장비가 폭발의 영향을 직접 받은 게 문제였다. 이미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해보았다. 다른 임시 부품을 떼어 연결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비상 시스템도 여러 번 돌려봤지만, 개미 목소리 하나 연결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지원은 선실 창밖을 바라보다 잠이 드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 혹여 다른 대원들의 떠도는 방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폭발 잔해라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희망에 부풀었다가도 바로 바닥에 내동댕이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이론적으로 다른 대원들은 이미 대부분 유명을 달리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고작 15일 치 식량으로 그들은 얼마나 더 희망 고문을 잡고 생명 연장을 했을까. 서서히 죄책감이 지원을 잠식했다.


슬픔을 제대로 느낄 여유도 없는 지원은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절전 된 모니터 앞에 앉았었다. 켜진 모니터에는 여전히 빨간색 ERROR 표시만이 그를 반겼다. 이제 그는 제가 뭘 하고 있는지조차 가늠이 되질 않았다. 쓸데없는 희망 고문은 제가 제일 미련하게 붙잡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죄책감에서 겨우 조금 빠져나온 지원이 다시 생식바를 베어 물었다. 손가락은 무의식을 떠돌면서 의미가 없을지 모르는 키보드를 계속 두드렸다. 다시 통신장비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지원은 급격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제대로 먹지 못하니 몸이 성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살아남았으니 대원들이 남기고 간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우선 의료실에 가서 두통약 하나를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한 지원이 끈적한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다섯 걸음을 떼던 시점에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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