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람에게는 '알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2~3살 무렵의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질문을 쏟아낸다. "하늘은 왜 파래요?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요? 불은 왜 뜨거워요? 밤이 되면 왜 캄캄해져요? 엄마는 왜 커피를 좋아해요? 나는 왜 스마트폰을 하면 안 돼요?" 질문은 간단한데 답하기는 쉽지 않다. 어른들에게 '하늘은 원래 파란 것'이고 '엄마는 그냥 커피를 좋아할'뿐이니까. 하지만 '원래 그런 것'이나 '그냥 그런 것'은 없다. 단지 알지 못할 뿐이고,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지식과 지혜의 출발은 '질문'이다.
쉼 없는 질문을 쏟아내지 않는다면 사람은 성장하거나 발전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질문이 있어야 답도 있기 때문이다. 질문이 없으면 답도 없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끝없는 질문을 통해서 무지를 자각케 하고, 새로운 사상과 지혜를 낳게 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랬다.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끊어야 합니까? 헛된 생각이 들 때 어떻게 그 생각을 눌러야 합니까?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제자들의 끝없는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며 그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에 대해서 훤히 꿰고 있다. 생일은 말할 것도 없고, 신발 사이즈가 몇인지, 커피 취향은 어떤지, 아침으로 뭘 즐겨 먹는지... 시시콜콜 알고 있다. 연인이나 베프를 사귈 때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음식과 노래, 영화 또 꿈과 고민거리,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묻고 답하면서 관계가 깊어진다. 어느 부부 전문가는 이런 주장을 했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그들이 몇 년 안에 이혼할지 알 수 있다고. 그럴 것도 같다. 질문을 멈춘다는 것은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뜻이고 사랑하기를 멈췄다는 뜻이니까.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는 뭘 좋아해?" 이 간단한 질문에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커피나 맥주를 좋아하지만, 없으면 안 될 정도는 아니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특별히 애정을 쏟는 배우나 감독, 작품은 없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열 일 마다하고 달려갈 정도는 아니다. '내가 이렇게 뜨뜻미지근하고 맹맹한 사람이었나' 싶어서 살짝 서글프고 씁쓸했지만,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잊고 있거나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찾아보기로 했다. 매일 나 자신과의 짧은 인터뷰를 통해서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뭘 고민하는지, 또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화엄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운흥이백문 병사이천답(雲興二百問 甁瀉二千答) 구름이 일어나듯 2백 가지로 질문하니 항아리로 물을 쏟아붓듯 2천 가지로 답하다.' 2천 가지로 답하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구름이 일어나듯이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매일 하나씩 질문하고, 검색 대신 짧은 사유를 통해 답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질문과 답이 쌓여가면 내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그 실체와 방향이 보다 선명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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