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 <월간회고>의 이번달 첫 번째 주제로 '루틴'이 나왔다. 크게 생각하지 않아도 회고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어서 시작한 글쓰기 모임을 통해서 나의 루틴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약 1년 동안 내가 남긴 회고글을 보면, 사실 민망할 정도로 매 달 나의 회고 글이 비슷하다. 항상 회고글을 쓰고 지난 달 회고글을 돌아보면 거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근 1년 동안의 나의 일상은 (일부 의도하긴 했으나)변주가 크지 않고, 루티너리 한 편이었다. 어쩌면 오피스 출근이 루틴에 큰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지만, 원래 성격 상 엄청 p처럼 랜덤한 것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랜덤 하게 일어나는 이벤트가 좋을 때도 있지만, 항상 정신없고 부산스럽다고 느꼈다. 어느 정도 고정적으로 일정을 정하거나, 미리 일정을 정해 놓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루틴'에 적응한 이후에, 스스로 루틴을 못 지켜서 스트레스받고, 자괴감을 느껴도, '루틴' 자체에 싫증 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루틴'을 사전에 검색하면, 명사로써의 의미는 아래와 같았다. 나에게는 못마땅한 지겨운 일상보다는 의레 하는 일련의 과정, 순서의 의미에 가깝게 느껴졌던 것 같다.
1.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
2. 못마땅함 (지루한 일상의) 틀, (판에 박힌) 일상
3. 루틴(공연의 일부로 정해져 있는 일련의 동작농담 등)
4. 루틴(일반적으로 빈번히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또는 그 일부)
출처 : 네이버 영어사전 검색 일부
'루틴'이 싫증 나지 않는다고 해서, 새로운 '루틴'을 만들고 적응하는 게 즐겁다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지금은 전보다 훨씬 여유 있게, 유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전에는 '루틴'을 내가 정했다고 해도, 스스로 놓치고, 빼먹거나 못 지켰을 때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스스로 약속을 못 지켰다는 것에 자괴감이 상당했고 스트레스도 꽤나 받았다. 아무도 나에게 요구하거나, 강요한 것이 아닌데, '루틴'이랍시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이렇게 스트레스받고 힘든 게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걸 하는 것은 아니었다. 책 좀 보고, 운동 좀 하는 정도로, 무리가 아닌 것들인데도 많이 버거웠었다. 그럼 그만해도 될 텐데 그렇다고 나를 내려놓고 다 내치고 멈추는 용기(?)는 없었다. 계속 꾸역꾸역 지리멸렬하게 끝까지 가는 나의 성향이 작동하여 오히려 내가 스스로 정한 '루틴'으로 내 시간과 일상을 지배하기보다, '루틴'에 내 시간과 일상을 잠식당하는 것 같다고 많이 느꼈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나는 뭔가 랜덤 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정기적인 패턴을 유지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루틴'을 좀 못 지킨다고 해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을까?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기에는 나는 인스타도 안 하고, 누구에게 인증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나 이런 거 한다고 알리는 것도 딱히 아니다. 어쩌면 나는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에 가까웠던 것 같다. 타인이 아니라 나 스스로한테 부끄럽지 않고, 부지런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라서, 나 스스로 그걸 저버리는 게 싫었던 것 같다. 거기에 중간에 멈추지 못하는 성향까지 더해지다 보니 너무 스스로 힘든 시간이 많았다는 게 안타깝다. 그렇게 괴롭고 스트레스받을 일 들은 아니었는데 돌어보면, 아쉽고 아까운 시간이 너무 많다. 물론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지금은 전보다 책 보는 게, 운동하는 게 확실히 덜 힘들고 일상이 되었지만, 한편 정말 이걸 내가 원했던 걸까, '루틴'이 목적이 아니라, 이걸로 무얼 원했던 거였을까, 미련하게 끝까지 가는 방식이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효율적이고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앞으로 나는 어떤 방취하고 싶은 걸까. 하는 질문도 떠오르는데, 지금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 걸 보니, 나에게는 '루틴'으로 지향하는 바, 방향성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요즘 나의 평일 루틴은 오전 7시 크로스핏, 오전 8시 13분 전후로 나와서 9시 8분 안으로 출근, 오후 6시 이후로 상황 봐서 퇴근 또는 야근하고 쉬거나, 책보거나 할 일을 좀 하고 있다. 주말 루틴은 거의 교대역에 하루 종일 있고, 저녁에 상황 봐서 약속을 잡기도 하는 정도로 꽤나 단조로운 편이다. 적고 나니 정말 그래 보인다.
여기서 아주 가끔 일탈도 있고, 쉼도 있고, 변주도 있지만, 큰 틀을 바꿔볼 생각은 안 해보았고, 멈추는 용기를 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남들이 '나'를 좋게 생각해도, 마음 한편으로 내 '루틴'이 그런 말을 들을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계속 부정했었다.
나는 '루틴'에 나를 맡기고 '나'를 살짝 놓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잠시 멈춰서 나는 '루틴'을 왜 이렇게 세팅했는지, '루틴'을 따라서 일상을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중심으로 '루틴'을 이끌어 가고 있는지 나에게 다시 물어야겠다. 솔직하게 마음을 들여다보고 답을 하면서, 'YES'라는 답이 나오는 '루틴'으로 수정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