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름은 태어나
영영 불리지 않아요.
이름의 주인은 한때
자신의 이름이 사랑받을 줄 알고
이름이 쓰여 있는 작은 종이를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모든 곳에 두었어요.
아무도 부르지 않았고 기다려도
아무도 부르지 않아서 심지어
이름을 지어준 사람조차
이름을 부르지 않아서 그럼에도
부끄러워서 혼자서도 부르지 못하고
이름을 써둔 모든 종이를 소각하고
손바닥에 자그맣게 적어두고 언젠가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찾아와
이름의 행방을 물으면 보여주려고
지워지면 덧쓰고 지워지면 덧쓰며
그래도 이 정도면 이름을 선물해 준 사람에게
정성을 다했다고 여기며 눈물을 (닦아요)
이름의 크리에이터는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서
비둘기가 찾지 못한 지도 위에서
편지가 닿을 수 없는 주소 안에서
사실 짐작만 이렇지 저는 몰라요
신이 은신처에 숨겨주고 계신지
부재중 전화는 쌓여만 가고
(현기증)
여기가 병원은 아닐까 가만히 잠들어 있고
생명 유지 장치의 모든 가능성을 내려놓은 채
잔존한 기억의 이미지만 조각난 채 헤엄치고
병실 입구와 침대의 이름표에
나는 누구라고 쓰여있나요.
제가 사라지면 이름도 지워지나요.
처음 지어준 사람이 가져가나요.
불리지 않은 이름은 생명이 없어요.
처음부터 저는 살아있지 않았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자꾸 덧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