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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Aug 16. 2021

아빠가 맨날 내가 하는 일에 반대했던 이유

 20살에 북경으로 무술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26살에 취업 대신 돌연 사업자를 내서 여성의류도 아닌, 생활잡화도 아닌, 무술용품을 팔아보겠다고 했다. 27살에 남들은 대기업 중소기업 입사 시험을 준비하는데 혼자 서울에 올라와 신림동의 작은 부동산에 월급 100만 원씩 받으며 취업이랍시고 했다. 서른이 넘어도 딸년이 시집은 안 가고, 이제 아예 작정하고 시골로 내려와서 개 다섯 마리를 키우며 사업하는 재미에 완전 맛 들렸다.

 아빠가 맨날 내가 하는 일에 반대했던 이유다. 지금은 마음을 놓아버린 건지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긴 건지, 그나마 크게 내 생활에 터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잔소리는 내가 아빠에게 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퇴직을 하고 알음알음 여기저기에서 기술직으로 일을 받아서 한다. 우리 가족들은 일복이 넘쳐 평생 어딜 가나 할 일이 있나 보다. 아빠가 일을 놓지 않고 한다는 건 좋았으나 일요일도 없이 주 7일 나가는 날도 있고, 저녁이 되면 티비를 보다가 졸음에 못 이겨 안방으로 들어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 쉬엄쉬엄 하시라, 일을 잠시 좀 쉬시라 여러 번 권했으나 일이라는 게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냐며, 그 일이 끊길세라 퇴직 후 몇 년간 참 쉴 새 없이 아빠는 또 달렸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전화를 건 아빠가, "장애인 활동 보조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정식 명칭도 제대로 모르고, 관할하는 기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에게 "장애인에게 운전해줄 수 있는 교육"을, 다짜고짜 인터넷으로 찾아 달라고 한 것이다. 참 밑도 끝도 없는 요청이라 인터넷 서칭을 곧잘 잘하는 나조차도 헤맸다. 관련 기관도 많고 정확한 정보도 찾기 어려웠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후에서야 인터넷으로 교육 신청을 하는 절차를 알게 되었고, 접수 시간에 맞추어 선착순 등록을 해야 하는 일이라 과연 아빠 혼자서 하는 것은 무리였다.

 신청에 앞서 나는 내 아빠의 성향과 장단점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손님들 상대하는 일은 스트레스받아했는데. 조금만 장거리 운전하면 피곤해했는데. 때때로 욱하는 우리 아빠가 과연 장애인 활동보조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그리고 먼저 아빠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혹여나 교통사고가 나면 어떡할 거냐 / 장애인 아이를 가진 부모들의 입장을 아빠가 맞춰줄 수 있겠냐 / 쉽게 운전 몇 시간하고 용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일 수 있다 / 내 주변에 장애인 체육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보통 일이 아니라더라 괜히 스트레스만 엄청 받을 것이다..."

 그러니 아빠가, 예전에 내가 아빠에게 내 앞길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해명하듯, 나에게 왜 아빠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이었다.

 "돈을 벌기보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만 65세가 지나면 이 자격증도 발급받을 수 없으니 미리 자격증을 따 두고 싶다."

 더 이상 아빠를 말릴 생각도, 이유도 없었다. 아빠 생각이 내 생각과 같지 않을 것임을, 아빠의 일은 아빠가 알아서 핸들링할 것이기 때문이다. 괜히 내가 좀 안다고 나설 일이 아니었다. 아빠도 예전에 무수한 일들을 이렇게 내 의견에 양보했을까?


 하긴 우리 아빠가 집에서는 종종 욱할 때가 있어도 밖에 나가선 참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했지.. 그런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이 아는 내 모습과 밖에서의 내 모습은 확실히 다르니까. 가족들이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 만큼 큰 착각도 없다. 밖에서의 내 모습은 완벽히 다른 탈을 쓸 수 있으니까.

 화상강의로 진행되고, 졸아도 안되고, 자리를 떠도 실격처리가 된다는데 아빠가 하루 8시간씩 집중해서 교육을 잘 이수할 수 있을까? 모쪼록 아빠가 자격증을 무사히 따길. 그래서 아빠도, 아빠가 일하며 만나는 사람들도 다 무사 평탄하게 시간을 보내길. 딸로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묵묵히 지지해주고 속으로 잘되길 바라는 일이 아닐까. 우리를 키우며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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