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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01. 2022

8월 1일 고민수의 하루

8월의 더위

정말 사람이 미쳐버릴 만큼 덥다. 오늘 같은 날은 휴가라도 내서 집에서 쉬고 싶다. 아니 그것이 어렵다면 재택근무라도 하고 싶다. 지난 2년 간 재택근무만 하면서 더위를 잊고 살았다. 지금은 그 시절이 그립다. 차라리 집에만 있는 것이 더 괜찮은 것 같다.


겨울에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더위에 유달리 약했다. 여름이 되면 이런저런 병에 걸렸다. 탈진해서 쓰러지거나 쓰러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름 방학이 되면 나도 또래 친구들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이유 때문에 방학을 반겼다. 내가 여름 방학이 좋아했던 유일한 이유는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서였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싫었다. 친구들과 놀러 나가는 것도 싫었고 가족들과 어딘가로 여행을 가는 것도 싫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항상 겨울이기를 바랐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없어지기를 기도한 적도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름은 여전히 싫었다. 어릴 때나 대학교 때는 그나마 방학이라는 보호막이 있었지만 직장인이 되고 난 이후에는 여름에도 더위를 참으며 출근해야 했다. 나는 땀도 많아서 아주 잠깐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땀의 비가 내렸다. 

얼마 전 우리 회사는 이사를 갔는데 하필이면 역에서 걸어서 10분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버스가 있기는 했지만 버스 정류장에서도 적어도 5분 정도는 걸어야 나오는 것이라 그리 쓸모가 있지는 않았다. 원래 회사가 있던 곳은 역에서 아주 가까웠다. 출구에서 30초 안에 회사 건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여름에 땀을 흘리는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최고의 회사였다. 그래서 이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도 있었는데 갑자기 이사를 간 것이었다. 물론 건물은 더욱 좋아지고 여러모로 장점이 많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역에서 얼마나 가까우냐가 더 중요했다. 

오늘도 출근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지하철의 냉방 장치가 고장이 났는지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안내 방송에서는 에어컨을 최대로 가동하고 있다고 했지만 너무 사람이 많은 탓인지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나는 휴대용 선풍기로 더위를 조금이라도 더위를 날려 보내려고 했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다시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이제는 휴대용 선풍기로도 역부족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났다. 햇살은 어찌나 뜨거운지 태양이 내 몸속 살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지금 하늘 위로 보이는 태양은 맹렬한 속도로 지구에 오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 나서 이렇게 더울 리가 없다. 

그렇게 3분 정도 걸으니 마치 집에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걸어온 사람이라 해도 믿을 만큼의 땀이 났다. 선풍기를 최대한으로 가동해보지만 그저 이 바람은 더울 뿐이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중간에 카페에 들렀다.

카페 문을 지나자마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를 반겼다. 나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샀다. 이대로 카페에서 일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커피를 들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 에어컨 바람 덕분에 그나마 힘이 났다. 하지만 이제 난코스가 남았다. 

카페에서 1분 정도 걷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언덕길이 보인다. 이곳이 내가 회사로 갈 때 꼭 지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대로변을 놔두고 어째서 이런 곳까지 회사가 오게 되었는지…. 회사가 원망스러워지는 시간이었다. 언덕이 가파른 것은 아니지만 지금 같은 더위 앞에서는 그런 것도 의미 없다. 그저 힘든 코스일 뿐이다. 

이렇게 출근을 하다 보면 나처럼 힘들어하는 직장 동료를 한 두 명쯤 만나게 된다. 하지만 오늘은 동료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 혼자 힘들게 이 언덕을 넘어가야 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땀은 다시 비 오듯이 쏟아졌고 한 손에는 여전히 선풍기를 들고 있어야 했기에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커피는 이제 거추장스러워졌다. 진짜 더워서 미칠 것 같았다. 이대로 회사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서 ‘오늘부터 다시 재택입니다’라고 말해도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집에 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일을 한다면 행복할 것 같다. 

겨우 겨우 회사에 도착했다.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아쉽게도 회사 건물 로비는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손으로 부채질을 하거나 휴대용 선풍기로 더위를 식혔다. 엘리베이터는 또 한대라서 굉장히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동료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별다른 대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안부보다는 지금의 더위가 더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지나치게 느려서 올라갔다 내려오는데도 한참 걸렸다. 

마침내 엘리베이터를 탔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에어컨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더위를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일하는 층에 도착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출근하느라 고생한 나를 위로해줬다. 자리에 앉아도 휴대용 선풍기를 끄지 않았다. 에어컨은 시원하지만 내 더위를 날리기에는 약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 더위에 출근을 하니 모든 기력을 다 쓰게 된 것 같다. 따지면 이것도 인력 낭비나 다름없다. 괜히 출퇴근을 시켜서 사람만 지치게 만들고 이러면 바로 업무를 볼 수 없고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회사도 학교처럼 방학이라는 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럴 리가 없지. 여름에 쉬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하나는 회사를 때려치우던가, 잘리던가, 재택을 하던가. 도망갈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하필 이 더위에 재택도 안 하고 역에서 먼 언덕에 있는 건물로 이사 온 회사를 원망하며 나는 조용히 오늘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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