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평생 운동 찾기: 걷기 예찬
"걷는 경험은 자아를 중심으로부터 외곽으로 분산시켜 세계를 복원시키며 인간을 그의 한계 속에 놓고 인식하게 만든다. 그 한계야말로 인간에게 자신의 연약함과 동시에 그가 지닌 힘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걷기 예찬, 다비드 르 브로통>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집중하면 4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러다 뒷목이 아파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과하면 좋지 않다고 했던가. 목을 움직일 수 없어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목디스크라며 이대로 계속 가면 큰일 난다고 경고했다. 자세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등 근육이 없어서 그런 거라며 운동을 권했다. 허리도 안 좋은데 목까지 처참하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서니 1시간 지났을까, 다시 뒷목이 아프다. 울고 싶다. 의사는 매일 30분 정도 고개를 들고 걸으라는 처방을 내렸다. 이대로는 글이고 뭐고 생활이 힘들다는 판단에 무작정 운동화를 신고 근처 공원을 향했다. 살기 위해 걷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의 걷기 예찬이 시작되었다.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각하지 못하고, 어린 시절에는 예뻐지고 싶어서 다이어트로 운동을 했다.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싶었고, 젊음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건강을 위한 운동보다는 외적 미를 건강미보다는 외적미를 추구하며 살았다.
그때는 외적미였다면 지금은 건강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체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느끼고 삶에 전반적인 부분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른다섯이 넘으면 몸이 힘들다는 언니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체력이 없으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살기 위해 밥을 먹고, 숨을 쉰다. 사람이 숨을 쉬지 못하고, 공기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죽게 된다. 운동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위급한 것은 아니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남에게 의지하는 삶이 아닌 나 스스로 원하는 대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다. 아니면 지팡이를 짚고 다니거나 아니면 타인의 힘을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자유롭지 못하다.
생각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날에도 걷기를 한다. 정처 없이 걷다 보면 복잡했던 일들이 간단해지고, 어려운 일들도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외에도 새로운 생각이나 아이디어도 떠오른다. 공원을 걸으면 자연이 주는 영감과 편안함은 생각을 맑게 하고, 걷기를 통한 신체의 움직임은 몸의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에 이르게 만들어 준다. 걷기를 통해 몸의 건강뿐 아니라 정신도 건강해졌다.
버스를 타고 멀리 나가는 날에는 신체가 허락한다면 돌아오는 길은 몇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걷기를 시작한다. 그러면 버스를 탔을 때 보지 못하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걷게 되면 모든 것이 천천히 보이니 풍경이 새롭게 다가와 느껴보지 못한 감각들도 살아난다.
산책은 여유 있는 자들의 어떤 고귀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행위로 두 다리가 튼튼하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걸을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문제가 없다. 그 마음을 먹기가 두 다리가 튼튼한 것도 힘들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혼자 있는 시간은 자신을 성찰하고 인생의 깊이를 더하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라고 말했다. 산책으로 걷는 시간은 그의 말처럼 혼자만의 시간이며 자신을 생각하고 깊어지는 시간이다. 또한 걷기는 가끔 길이 아닌 길을 가게 하기도, 아니면 새로운 길을 만나게 해주기도 한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마흔에 운동은 생존이다. 남은 40년 그 이상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려면 필수이며 어느 운동이라도 좋으니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무리하지 않고 하기를 바란다. 나를 포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