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용원 Jan 06. 2024

아버지의 낡은 구두 - 2024.1.

- 아버지의 구두를 신다

아버지의 낡은 구두

- 아버지의 구두를 신다



1.


아버지의 구두를 신었다.


내 아버지는 배관노동자였다.

어머니의 전언에 의하면, 작은 회사를 몇 군데 다니셨고 1970년대 산업발전 시기에 열사의 땅 중동의 예맨도 몇 번 다녀오셨다는데 유아기의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취학 전 어렴풋이 한참 안 보이던 아빠가 어느날 집에 선물들을 들고 와서 외아들인 내 손을 잡고 마징가를 사러 길건너로 나갔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내가 아빠를 보자마자 졸랐으리라.


건설현장을 다니시던 아버지가 평생 그 일을 떠나고 싶어했다는 걸 내가 알게 된 건 아버지가 노년에 다단계에 빠지고 난 후였다. 원래 아버지는 현장으로 출근할 때도 정장 비슷한 바지와 와이셔츠에 꼭 구두를 신으셨는데, 출퇴근 복장이 곧 아버지의 그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철이 든 후로는 늘 아버지의 구두를 물려 신었다. 아버지와 내 발 크기가 265mm로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버지의 구두는 오래 신었어도 늘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 사무직 노동자가 된 내가 구두를 '전투화'로 신으면서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구두는 출퇴근 및 외출용이었기 때문에 상태가 늘 좋았다는 걸.


아무튼 나는 스무살 전부터 청바지나 블랙진에 아버지 구두를 버릴 때까지 신었다. 아버지가 입던 검은색 낡은 '가죽 잠바'와 다리가 길어보인다는 '블랙진', 그리고 아버지의 '검정 구두'가 이십대 나의 일관된 패션이었다.



2.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또 다시 신는다.


지금은 회사 복장규정이 캐주얼이 되었지만, 수년 전까지는 구두를 매일 신었던 사무직 노동자가 된 후로는 아버지의 구두를 대놓고 물려 신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아버지의 낡았지만 깨끗한 구두를 가끔 신었다. 그리고 매주 주말에 내 구두와 아버지 구두를 광나게 닦았다.

어려서부터 본 아버지의 모습처럼.


( 왼쪽 아버지, 오른쪽 내 구두~ ^^* )


직장의 인사이동이 있어 경기도 오산으로 발령받아 떠나게 되었던 2021년 말은 내 아버지가 폐암 말기를 선고받은 후 한달이 되던 때였다. 보직을 맡아 자취하러 서울 도봉구의 집을 떠나게 된 나는 늙고 병든 아버지께 큰 절을 하고는 내 구두를 신고 집을 떠났다.


내가 집을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폐암 말기로 바깥 출입을 하기 어려워진 아버지는 더 이상 당신의 낡은 구두를 신을 수 없었다.

회사의 복장규정상 굳이 구두를 신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버지를 닮아 구두를 좋아하는 나는, 매주 월요일 새벽 아버지의 마지막이 될 그 낡은 구두를 신고 오산으로 출근하곤 했다.


아버지는 절대 그러지 않았겠지만 나는 아버지의 그 낡은 구두를 신고 오산 세마대 야간등산을 하기도 했다. 구두는 더 닳겠지만 내가 오산에서 제일 좋아했던 매주 월요일 퇴근 후 야간산행에 내 아버지와 몇 번 함께 가고 싶었다.



3.


아버지가 낡은 구두를 남기고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2022년 10월 말은 아버지가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정확히 1년 만이었고, 거동이 불가하여 요양병원 들어가신 후 혼수상태가 되어 누우신지 3일 만이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93


나는 그 후로도 1년을 더 넘게 오산에서 자취생활을 했는데 한참 동안 아버지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면 아버지가 받을 것 같았다. 오산에서 1년 동안 내가 아버지께 걸었던 안부전화는 아버지와 내가 함께했던 지난 50년 동안 했던 통화보다 많았다.


그러던 중 2023년 말, 뜻하지 않게 2년간의 오산 자취생활을 마치게 되었다.


첫 팀장으로서 부족한 나를 잡아주고 이끌어준 수원-오산 지역의 '경기남부인' 동료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차피 평생 볼 것 아니라면 지금 좋은 기억 남을 때 인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정들었던 자취방도 왠지 아쉬워, 마지막 금요일 저녁에는 서울 도봉구 집에도 가지 않았다. 얼마되지도 않는 2년간의 짐도 싸고 어수선했던 종이접기도 정리하면서 오산에서의 마지막 독서와 서평도 썼다.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 일찍, 매주 월요일 퇴근 후 2시간 야간산행으로 정들었던 독산성산 세마대와 보적사에 오르기 전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집에 놓고 온 게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2년 전 밤에 홀로 엄청 헤매이던 세마대 산길, 이젠 눈감고도 오르게 된 그 길과 풍광들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막 찍어대다가 말았다.



어차피, 지금의 눈으로, 그 마음으로, 담아야 할 시간이었다.

천천히 성벽의 돌들과 세마대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 동안 진심으로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불쑥불쑥 아버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신고 올랐다면 어땠을까.



경기도 오산의 독산성산 세마대 정상에 있는 보적사 대웅전 앞에서는 2년전 폐암 말기였던 아버지가 조금 덜 아프시길,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1년 동안 매주 빌었다. 그 후로는 늙은 어머니와 처자식의 건강을 빌었지만, 마지막인 2023년 12월 첫주 토요일 오전에는 오산에서 함께 한 내 첫 팀원들의 행복만을 기원드리고 내려왔다.


그러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아, 고요한 토요일 오전의 정든 자취방에서 낮잠도 잠시 한 숨 때리고 서울 집으로 올라오면서 올해든 내년이었든 어차피 헤어질 거, 빨리 가는 것도 한편으로 그리 나쁘진 않겠다고 계속 생각했다.



나의 인생 첫 자취생활이었던 경기도 오산의 기억은 늙고 병들었던 내 아버지의 기억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렇게 다시 돌아갈 길 없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 낡은 구두가 남았다.



4.



아버지의 낡은 구두는 내게 무엇이었을까.


안데르센의 초기작 [빨간 구두]에서 주인공 카렌이 신은 '빨간 구두'는 세속적 욕망의 메타포였다. 성인이 된 내가 '동화'란 것이 이상적인 꿈의 이야기가 아니라 잔혹한 '사실주의'라고 느끼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안데르센은 '빨간 구두'를 신은 카렌을 끊임없이 춤추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그녀의 발모가지를 자른 후 항상 그러하듯 '하느님 아버지'의 은총으로 천상에 오르게 한다. 독실한 기독교 정신으로 세속적 '욕망'의 광적인 질주를 끝까지 밀어붙이고는 그 처절하고 잔혹한 끝을 보인 후 '구원'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있다.


"오르간 연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성가대의 어린 아이들 목소리가 어찌나 황홀할 만치 달콤하면서도 구슬프게 어울리던지! 밝은 태양빛이 창문으로 스며들어와 카렌이 앉아 있는 자리를 따스하게 비춰주었다. 온몸으로 햇빛을 받은 카렌의 영혼이 햇살을 타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날아올랐다. 그곳에는 책망의 눈초리도, '빨간 구두'에 대한 말 한마디도 없었다."

- [빨간 구두](1837), 한스 안데르센, 정정호 외 옮김, <생각의나무>, 2007.


https://brunch.co.kr/@beatrice1007/204


한편으로 내 아버지가 남긴 낡은 구두를 나는 왜 그토록 신고 다녔을까.


생전 처음 가족을 떠나 혼자 살게 되면서 자유롭기는 했으되 연로하신 부모님과 애처로운 처자식이 늘 옆구리 어딘가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런 스산한 심정을 달래기 위함이었을까.


중동 근무로 어린 시절 늘 '부재(不在)'했고 청소년기부터 결혼 전까지 항상 '억압'으로 존재했던, 어느새 나도 가장이 되어 이제서야 조금 이해할까 했더니 그새 늙고 병들어져 버린 '아버지'의 자리였을까.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착한 척, 좋은 사람인 척 하고 싶은 내가, 그 동안 하지 못한 '효도'를 늦게나마 하는 척 하고 싶었던, 개인 윤리덕목을 채우고 싶었던 '검정 구두'의 '욕망'이었을까.




5.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벗는다.


2년 만에 집에 돌아오니, 한참 전에 이미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셨고 그 맑았던 정신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늙은 어머니가 언제나 그렇듯 그 자리에 계신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도 부모는 내게 삶을 준 것 만큼 죽음까지도 생생하게 내 곁의 일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내 곁의 필수 항목임을 새삼 일깨워주었다면, 어머니는 사람이 '죽음'을 향해 서서히 걸어가는 일상의 과정을 큰 이벤트 없이도 아주 천천히 내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밑창도 다 닳아 더 이상 비오는 날 신을 수도 없게 되었지만, 나는 오산 자취생활과 함께했던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벗어 신발장 안에 고이 모신다.


주말에 당장 아버지의 낡은 그 구두를 꺼내 광나게 닦아보리라.


그리고 어머니의 오래되고 날이 닳아버린 낡은 화투장을 꺼내 어머니와 고스톱이나 한 판 쳐야겠다.



고스톱은 여전한 치매 예방 민간요법 아니던가.


(2024년 1월)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beatrice1007&logNo=223314040227&navType=by




이전 11화 [파격의 고전](2016) - 이진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