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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일의 썸머 Jul 20. 2020

'퇴사'를 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들

일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항저우 여행 중에




당신의 인생은 어디쯤에 있나요?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을 한편도 빼놓지않고 아주 열심히 봤었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짧은 시간동안 지식에 대한 욕구가 충족될만큼 출연 게스트들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종료가 되고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내 자신을 돌아볼 때 문득 떠오르는, 유시민의 이야기가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 


거울을 봤을 때, 
자기의 얼굴이 마음에 들면 그대로 살면 되고,
자기의 얼굴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면 뭔가를 고칠 생각을 해봐라
만약 자기의 얼굴이 다 안 좋다면 직장을 바꿔라


유시민이 왜 정치를 그만두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했던 말이다. 유독 이 이야기가 여전히 잊혀지지않고, 지금도 내 자신의 상태를 점검할 때 꺼내어보게 되는데, 이 말에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퇴사'를 감행함으로써 말이다. 


퇴사를 할 즈음에 내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돈버는 수단 이상으로, 어떤 개인의 성과도 내고 싶어서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 나머지 시간을 회사일에 투입한 적도 있었고, 그래서 거기에 대한 댓가는 남보다 넉넉한 월급고지서였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그 힘든 시간들을 응당 감당해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매년 반복이 되고, 앞으로 계속 해야 할 회사생활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뿐더러, 더 나아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신을 차려서 본 나의 위치는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 없이 어느새 인생의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시점에 당도했다는 생각에 미치자 헤어나올 수 없는 우울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거울에 비춰진 '나'라는 사람은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퇴사를 감행해야 할 이유가 되었다. 행복한 마음의 크기를 100이라고 정의한다면 단 1의 행복도 남지않았다. 한톨의 행복도 남지 않았는데, 회사 책상에 앉아서 원가를 계산해서 이익을 조금이라도 남겨보겠다고 고민하거나, 다음 시즌을 위한 개발때문에 수도없는 회의를 해야하는 시간들은 지옥같았다. 100안에 1의 행복만 남겨졌어도 난 아마 퇴사를 할 엄두를 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은 99가 힘들고 피곤함으로 점철되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회사생활 12년동안 퇴사를 하고 싶은 고비가 왜 몇번이고 없었겠냐만, 그때는 그래도 마음속에 1이상의 행복지수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퇴사를 감행할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동기들과 소주 한 잔 마시며, 토해내 듯 마음속의 이야기를 하고나면 다시 회사생활을 할 기운을 얻을 정도는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직업을 갖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나의 행복을 위함인데, 거울을 통해서 보는 나의 얼굴이 회복되지 못할 정도로 어두워졌다는 것을 느낀 후에는 직업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겠냐며 매일 반문했다.


막상 퇴사를 하겠다고 회사에 사표를 냈을 때, 다른 부서의 부장님들과도 면담을 해야했다. 그래도 나름 오랫동안 독하다는 얘기들으면서 회사생활을 했으니, 나의 퇴사는 조금의 이슈가 된 모양이였다. 회사 임원분도 퇴사하지 말고 몇달만 쉬어보라는 좋은 조건과 함께 결정을 번복해보는게 어떻겠냐고 하셨지만, 어학연수 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고, 퇴사를 하기로 결정한 이상, 호의만 고맙게 받겠다고 말씀드렸다. 물리적인 나이를 떠나서, 나는 인생의 어디쯤 와 있는지 퇴사를 통해서 점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시금 성장통의 시기를 겪게 된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다


도대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의 정의가 무엇인지 알지못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 등에 대해 인터넷에 무수히 찾아보고, 그와 관련된 많은 책들을 읽으며 풀지못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애썼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였다. 해답지가 따로 있는 문제가 아니였으니 말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낯선 이국땅에서 보냈던 일년의 시간은, 중국으로 떠나기 위해 생각했던 목적의 취지가 어느정도 달성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사람이 누군인지 좀 더 살펴보고 싶었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긴 시간을 두고 알아보고 싶었고, 그래서 나라는 사람과 좀 더 친해지고 싶었다. 결국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던 것인데, 그런 여러 희망사항들이 어학연수 일년의 시간을 통해서 제법 이루워진 것 같다. 


적지않은 나이에 다시 학생이 되어, 중국에서의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지만, 나이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 큰 장애가 되지않음을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을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일년의 중국생활에서 거리낌없이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중에는 20살도 있었으니, 나이에 대한 편견을 깨는 확실한 경험이였다는 생각도 들고, '나'라는 사람이 세대에 관계없이 친화력이 있는, 뭐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에서는 그렇게 까질한 이과장으로 통했는데 말이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자신감을 얻고, 나아가서는 자존감도 키울 수 있었다. '나' 자신을 긍정하기 시작했고, 스스로의 자기평가가 긍정적이니 자존감이 튼튼해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비록 혼자있는 시간들을 가질때면 외롭기도 했지만, 하지만 더이상 두려운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원하기만 한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좋은 시간들을 만들 능력이 된다는 것을 중국에 있는 일년의 시간동안 더 굳건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가? 내가 꿈꾸는 모습 너머의 진정한 '나'의 모습을 알고 내가 원하는 행복의 시간들을 위해 애쓰는 것, 그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초콜렛이 먹고 싶으면, 편의점이 멀리 있다고 해도 집밖으로 나와 초콜렛을 사러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발걸음'을 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진정한 '나'의 모습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노력의 중간에는 '퇴사'를 해보는 경험도 있었고,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하기 위해 떠나보기도 했었다. 


자기 정신에 대한 신뢰와 자신이 행복을 누릴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존감의 본질이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확신에는 단순한 판단이나 감정을 넘어서는 힘이 있다. 이 확신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우리를 행동으로 이끈다.

-너새니얼 브랜든의 '자존감의 여섯기둥' 중에서-


노트에 오랫동안 고이 보관한 문장이다. 퇴사를 하고 중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누군가는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었고, 걱정과 염려는 되었지만 그것들을 표현하지 않으신 부모님도 계셨고, 또 누군가는 남들은 잘하지 않은 선택을 했다며 대단하다 치켜세워 주기도 했다.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 새로운 전환점의 돌파구를 만들고, 낯선 환경에 나를 놓아보는 경험해보는 선택을 함으로써 나에 대한 확신을 굳혀갔다. 결국 이러한 결정의 궁극적인 배경에는 '나를 사랑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나를 사랑하는 경험을 자발적 선택을 통하여 해봄으로써, 앞으로 또 다시 걱정과 두려움이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가면 되는지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언제나 함께 해야할 동반자가 바로 '나'여서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돈주고도 얻지못할 긍정적 자기평가의 힘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이를 경험한 시간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다시 시작점에 서보기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퇴사' 후의 삶을 경험해보기 위해서, 나에게는 '우울'이라는 감정과 '한톨도 남지 않은 행복'이라는 감정이 필요했다.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한 그 두 가지의 조건들은 퇴사를 하기 위한 그리 유쾌한 시작점은 되지못했다. 


퇴사 후, 내 사업을 해보겠다 등의 멋지고 거창한 계획이 퇴사의 이유가 되어주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던 내 삶의 전반을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전환점이 되어준 것에는 틀림없으니 제법 의미있고 소중한 시간이였다고 자평해본다. 


그렇게 의미있고 소중한 시간이였다고 자평을 한다고 해도, 책상앞의 망부석이 되어 중국어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중국에서 돌아와 다시 마주해야 할 '현실'이였다. 퇴사는 했지만, 그래서 어학연수를 다녀왔지만, 그 후의 문제는 또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 맞닥뜨린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영원한 숙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사는데 별문제가 되지않은 소수의 특권을 가지지 않은 이상, 삶의 대명제는 피할 수 없음으로, 나 역시 예외는 아니였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래서 오지도 않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쉽지 않은 선택들을 통해서 여기까지 온 만큼, 이 기회들을 잘 사용해서 남은 날들을 인생의 가장 멋진 시기로 만들고 싶다.


시들어가는 젊음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거나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거나 혹은 자신이 진심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확신이 없어서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것을 뒤로 미루는 사람들과는 달리, 치열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시각을 바꾸고 예전보다 한층 길어진 새로운 성장기로 용감하게 뛰어드는 사람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인생에서 가장 길고 가장 멋진 시기가 만들고 있다.

-윌리엄 새들러의 '서드 에이지, 마흔이후 30년' 중에서-


나 역시 인생에 대해 계속 치열하게 생각하고 그래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서 활력있는 멋진 삶을 만들어보고 싶다. 쉽지 않은 선택들을 통해서 지금까지 잘해내 온, '나'라는 사람의 새로운 발견이 있었으니, 앞으로 걸어갈 길이 외롭지만은 않을 것 같다. 


나는 또 다시 시작점에 와 있다.




[매거진의 다른 글]

1화. 어느새 서른후반, 전환점이 필요했다

2화. 늦은 시작이란 있는 것인가?

3화. 12년 회사생활, 나는 과장이였다

4화. 퇴사를 위한 단 한가지의 마음가짐

5화. 퇴사 후, 새로운 언어를 배웁니다

6화. 이웃나라에서 늦깍이 학생이 되다

7화. 인생의 고민은 나만 짊어진건 아니였다

8화. 퇴사 후 떠났던 어학연수에서 마주한 또다른 무게


['오백일의 썸머'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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