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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솔 Apr 10. 2024

구름 속 무덤* 아래에서

아우슈비츠

크라쿠프 시내를 걸으며 노상에서 산 빵 한 조각, 

허기를 채우려고 씹었던 그 빵의 맛은 짭조름했다

습한 눈발을 헤치며 오시비엥침에 도착한 후, 내가 먹은 것은 

폴란드의 눈물 맛이라는 것을 알았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수용소 철문 위 글귀에서 냄새가 난다

죽음을 싣고 오는 열차가 내려놓았던 그것이 노동이었던가 

그 시대의 휘어진 등뼈들로 가득한 문을 열었다 한 무더기씩 쌓여있는 저 신발들, 머리카락, 안경테, 눈물이 그렁그렁한 소녀의 얼굴이 벽에 붙어있다 순간 영화의 장면들이 오버랩 된다


폐허가 된 바그다드의 음침한 건물 안, 쇼팽의 발라드가 들려오고 한줌 햇살이 피아니스트의 손등에 내려앉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의 빛을 잡으려고 휘돌아 흐르는 열 손가락, 그 소리를 지켜보는 독일군 장교, 숨죽이는 장면들이 빠르게 스쳐간다 언제나 저항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만 가능했던 것일까 


이곳의 새벽은 배신자처럼 은밀하게 다가와 꿈틀댔을 것이다 두려움과 절망감으로 파고들어 반항심마저 파먹었을 것이다 아득한 이곳의 이야기가 우리의 아픔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무엇을 확인하러 이곳에 왔을까, 비통함으로 시작되는 이 여정은 내게 무엇을 꺼내어 보여주고 있는가 이곳이 어떤 삶을, 아니 죽음을 기록했단 말인가 나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조차 없는, 고통이 살아있는 곳 

    

눈발이 굵어졌다

생각의 깊이만큼 막막한 공포의 십이월 

검은 굴뚝 안에 고여있는 시간의 냄새가 묻어나온다

오, 하느님!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는 어디에 계신가요?


                                        * 독일의 작가 파울첼란의 시「죽음의 푸가」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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