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나무의 노래

슈가팜의 이야기

by 혜솔


나는 오래도록 이 땅에 서 있었다

비와 바람을 품고

굶주린 손들을 품고

희망 없는 눈빛까지 끌어안았다


내 몸에서는 단물이 흘렀고

내 잎은 지붕이 되었고

몸통은 한 때 탄압의 도구가 되었건만

내 심장은 수많은 주린 배를 달래주었다


나는 모른 척했다

고통을 주는 손길도

내 살을 도려 가는 칼날도

그저 견뎌야 했다

하지만

누구도 내 아픔을 물은 적 없었다


밤이면 바람에 기대어 몰래 울었다

짓이겨진 뿌리 아래에서

조용히, 아주 오래 울었다


하늘도 땅도

지나간 발자국도 잊어버린 자리에서

나는 아직 한 그루 나무로 서 있다

언제나처럼, 버티는 법밖에 모르는

이름 없는 나무로



작가노트

캄보디아의 평야에 우뚝 선 팜나무를 본 적이 있다. 어디에도 소란스럽지 않고, 어디에도 기대지 않은 채, 그저 서 있는 나무.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주면서도 어느 한 시절엔 탄압의 무기로 사용되었던 슬픈 나무. 누구에게도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지 않는 그 나무를 보며 나는 오래된 침묵과 견딤에 대해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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