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다, 유홍초

작지만 강한

by 혜솔

들길에서 작고 붉은 꽃들을 보았어

나팔꽃도 아니고 메꽃도 아니야

전봇대를 지지대로 덩굴을 감아 오르며

하늘 향해 고개를 드는 꽃


나팔손을 만들어 허공을 향해 입을 모은

유홍초

소리치듯 피어오른 붉음은

작은 속삭임으로 떨고 있었어

'기억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것들을

세상은 흔하디 흔한 것들로 넘치고 있잖아'


둥근 잎도, 깃털 같은 잎도

붉은 꽃도 흰 꽃도

모두 같은 별을 품고 있어

이 꽃들의 외침을 들어 보았니?

작지만 강한 듯

꼿꼿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 같아


아, 아니야

그 붉은 나팔 하나가 내 안의 침묵을 깨뜨리고 있어

아주 오래 잊고 지낸 마음을

다시, 천천히 일으켜 세우고 있는 거야

오래전 거리에서 피 흘리던 청춘들

사라진 그 외침, 그 목소리

조용히 일어나 꽃이 되어 흔들리는 거야


나도 붉어지려고 해


둥근잎 유홍초
깃털 유홍초


#작가노트

소박한 들꽃 하나가 내 안의 오래된 감정을 일으켜 세우는 경험을 했다

무뎌지고, 바빠지고, 잊고 살던 기억들이

작은 꽃을 통해 다시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잊힌 청춘의 목소리, 침묵했던 나의 속말들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는 걸 느꼈던 순간

유홍초라는 꽃이

나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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