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연습생의 첫 10주: 기쁨보다 버팀의 시간

입덧지옥

by 허영주

오늘로써 임신 10주 차가 되었다. 그간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달라진 몸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했던 시간이었다. 아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입덧 때문에 눈물로 보냈다. 그간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처음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을 확인할 때는 날아갈 듯 기뻤다. 실제로 화장실에서 혼자 예스를 외치며 방방 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바로 입덧이 시작되었다. 5주 차, 돼지고기를 굽는데 멀쩡한 고기에서 썩은 고기냄새가 나는 듯했고 우웩 헛구역질이 나왔다. 그렇게 구운 돼지고기를 한입도 먹지 못하고 다 버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모든 냄새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방향제 냄새, 아파트 복도 냄새, 현관문 냄새 등등. 냄새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울렁거리며 헛구역질을 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뭐 이 정도는 나쁘지 않았다. 그저 바뀐 몸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래서 예정되어 있던 여행에 떠났다. 몇 달 전부터 계획했던 우리 부부와 남동생이 함께하는 뉴욕+포르투갈+스페인 여행.


그 여행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 뉴욕에서는 입덧사탕으로 입덧을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포르투갈로 넘어가며 극심한 입덧증상이 시작되었다.


포르투갈 리스본 공항에 내려 차를 타고 숙소 앞에 도착하자마자 예고도 없이 물 분수토를 했다. 차 안에 토하지 않고 차 문을 열자마자 토한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역시 초기 임산부에게 비행은 무리였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포르투갈의 그 어떤 음식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식욕이 제로가 된 느낌이었다. 남동생과 남편은 아주 푸짐하게 해산물을 시켜 열심히 먹는데 나는 수프 하나를 시켜 몇 숟가락을 겨우 떠먹었다. 그 시간 그나마 먹을 수 있던 것은 집에서 가져온 라면뿐이었다.


더 끔찍한 건 식욕이 없는데 본격적인 먹덧이 시작된 것이었다. 먹덧은 안 먹으면 울렁거리는 증상이었고 나 같은 경우엔 2시간마다 5일 굶은 사람처럼 배가 미친 듯 고파지며 속이 쓰렸다. 먹덧 증상은 리스본에서 포르투로 넘어가며 시작되었는데 입덧보다 힘들었다. 맛도 없는 빵을 우유에 적셔 억지로 먹었고 하루 종일 크래커를 먹어야만 했다. 밤에는 배고픔과 속 쓰림 때문에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먹덧...


차라리 집에 있었더라면 한국 음식도 조금 해 먹고, 내게 편한 간식들도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포르투의 호텔에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너무나 불편했고 호텔이 감옥같이 느껴졌다. 호텔의 수건 냄새도 나를 미치게 했고 수건을 땅에 던져버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혼자 엉엉 울며 찬양을 소리 내서 불렀다. 남편은 미친 여자처럼 울면서 찬양을 부르는 나를 토닥여줬다.


먹덧과 함께 나는 숙취덧도 당첨되었다. 숙취덧은 전날 소주를 몇 병 마신 듯한 숙취의 느낌이 계속되는 증상이다. 나는 호르몬에 하루 종일 취해있었다. 헤롱 헤롱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무언가에 취한 느낌. 나는 카페인 한 모금만 마셔도 카페인을 느낄 정도로 몸이 예민한데 몸에 새로운 호르몬이 도는 것도 한 알 한 알 다 느껴졌다. 예민한 내 몸이 싫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둔했으면 더 편했을 텐데 왜 이렇게 내 몸은 예민해서 나를 고통스럽게 할까.


스페인으로 넘어와서는 딱 하루 컨디션이 조금 괜찮았다. 그래서 남편과 남동생과 투어를 할 수 있었다. 그다음 날도 혹시나 컨디션이 괜찮으면 뮤지엄에 가고 싶었으나 전혀 괜찮지 않았고 또 하루 종일 숙소에서 쉬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가서 내 침대에 눕고, 한국 음식 먹기만을 꿈꿨다.


드디어 애틀랜타 집으로 돌아가는 날. 다행히 비행기에서 나온 기내식이 입에 맞아서 아주 잘 먹었고 무사히 비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 이토록 반가운 적이 있었나... 몇 년간 여행을 안 하고 싶어 졌다. 내 집 내 침대가 최고.


집에서의 생활은 울렁거림 때문에 힘들긴 했으나 그래도 배고플 때마다 바로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매일 감사일기에 집에 있어서 감사하다고 썼다.


9주 차, 산부인과에 가서 처음 초음파로 아기를 봤다. 아기는 주수에 맞게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아기 크기는 2.3cm, 심장박동은 165 bpm. 남편과 처음 아기 심장소리를 함께 듣는데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륵 흘렀다. 임신 테스트기 이후 오래간만에 기쁨을 느꼈다.


태명을 '나무'로 지었다. 엄마가 태몽으로 집 문 앞에 천장을 뚫은 큰 나무 두 개가 있는 꿈을 꿔서, 태몽에 맞게 나무라고 태명을 지었다. 나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단단하고 독립적이고 뿌리 깊은 느낌이 난다. 단단하게 자라렴 나무야.


요즘은 하루 중에 잠시 괜찮은 시간이 찾아오면, 그때 행복을 느낀다. 울렁거림과 속 쓰림 숙취덧이 있을 땐 행복을 느끼기가 어렵다. 행복은 '건강한 몸'상태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남동생이 몇 주간 환자 같은 나를 대신해 요리와 청소를 다 해주고 있다. 남동생이 없었더라면 나와 아이작은 쫄쫄 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요리를 하려고 시도하다가도 어느 순간 딱 못하는 순간이 오고 그렇게 all stop이 되어버린다. 주방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챌린지고 힘든 일이 되어버린 나... 지금 이 순간 가장 감사한 건 매일 요리를 해주는 남동생이다. 고마워 재훈아. (아 물론 내 남편도.. 남편도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도 나를 병간호하듯 살피고 요리를 해주고 있다.)


요즘 내 희망은 12주다. 12주가 넘어가면 입덧이 좀 완화된다고 하는 글들이 많아 기대하고 있다. 임신 중기가 되면 그때 날아다닐 수 있다는 말을 들어 아주 기대 중에 있다. 부디... 이 불편함과 아픔이 12주 이후에 사라져 주길.


임신을 하면 기쁨과 함께 아기를 기다리는 설레는 날이 펼쳐질 줄만 알았다. 모성애도 뿜뿜 빠르게 생기고 사랑으로 가득 찰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하루하루 '버텨내는 삶'을 살고 있고 있다. 하루가 끝나면 오늘도 잘 버텼다 하는 나날. 어서 몸이 좋아지고 사랑으로 가득 차 아기를 기대하는 날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나무야 건강하게 자라렴. 나에게 가진 가장 좋은 것을 가져가 튼튼하게 자라렴. 나무 파이팅!!!! 엄마도 하루하루 힘내볼게.






생각해 보면 나는 아이돌 연습생 때 '연습생을 처음 시작했던 때'가 가장 힘들었다. 처음 해보는 하루 8시간 춤 수업에 안 쓰던 근육을 써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이 아팠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매일이 혼돈 그 자체였다. 합격했을 때가 기뻤지 막상 연습을 시작해서는 몸은 죽어라 힘들었다.

그렇게 첫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몸도 마음도 적응을 했고 그때서야 데뷔에 대한 기대감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 연습생도 비슷한 느낌이다. 처음 연습생 시작해서 적응 안 되고 부대끼고 힘든 느낌. 적응을 하면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생기겠지. 데뷔(출산)까지 D-DAY 211일. 무사히 데뷔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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