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토요일 (임신 10주 2일 차)
오늘은 오래간만에 저녁에 외식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순간... '아 못 갈아입겠다' 하는 생각과 함께 먹은 모든 것을 모두 토했다. 그렇게 외출 실패! 감히 입덧 중에 옷을 갈아입고 밖에서 외식을 하는 호사를 누리려고 했다니... 엄하게 혼난 느낌. 토를 할 때마다 몸이 깜짝 놀라 부들부들 떨린다. 아이고 서러워.
극심한 입덧 중에 내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나와 같이 입덧을 겪은 임산부들이다. 누군가 미리 이 고통을 겪었고 그래서 나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반면 입덧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그녀들의 임신 기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부럽다.
12월 8일 월요일(임신 10주 4일 차)
드디어 컨디션이 돌아왔다! 아주 살짝 울렁거림 빼고는 아예 돌아온 느낌이다. 어제저녁부터 그랬다. 컨디션이 좋으니 너무 행복하다. 밀린 청소를 다 했다. 신기하네...
12월 9일 화요일(임신 10주 5일 차)
저녁 10시 45분.. 다 토했다. 토하고 슬퍼졌다. 분명 어제 좀 좋았는데 다시 원점.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다.
12월 11일 목요일 (임신 11주 0일 차)
너무 우울하다. 입덧 때문에 죽겠다. 한 달 넘게 입덧이 지속되니 이제 화가 나고 지친다. 몸이 축나고 있다. 극심한 울렁거림에 토할 때마다 투병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혀에서는 쇠맛, 쓴맛이 계속 난다. 아무리 이를 닦고 혀를 닦아봐도 지워지지 않는 혀의 쓴맛 때문에 하루 종일 내 기분도 쓰다.
미디어는 임신의 좋은 부분만을 보여준다. 화려한 임밍아웃, 젠더리빌, 임신 소식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양가 부모님들에 관한 영상들.. 입덧으로 좀비같이 살아가는 나는 그 영상들에 큰 괴리감을 느낀다.
긍정적이고 밝았던 내가 호르몬 영향인지 오랜 입덧 때문인지 흑화가 되어가는 것 같다. 해도 해도 너무하지 진짜 장난하나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괴롭게 만들 수 있는지.... 그냥 화가 난다.
임신을 하고 입덧을 하는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도 않는다. 그게 가능한 일인 것일까..? 나는 불가능하다. 임신하고 입덧을 하며 출퇴근을 하는 모든 임산부들이 존경스럽다. 또 안쓰럽다. 얼마나 힘들까...
입덧은 너무 가혹하고 잔인하다. 끔찍하고 지옥 같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증이 올 것 같다. 제발 이 고통의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건강한 기분이 그립다.
12월 12일 금요일 (임신 11주 차 1일)
오늘 컨디션이 엄청 좋았다. 한 6-7번 잠깐 울렁거림이 있었지만 그 외엔 다 좋았다. 날씨도 좋아서 남편이랑 산책도 성공했다. 컨디션이 좋으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살 맛이 났다. 건강이 참 행복이다.
지킬 앤 하이드의 일기 같은 나의 일기장. 컨디션이 좋은 날엔 세상이 천국 같고 입덧이 심한 날엔 지옥 같다. 그래도 괜찮은 날들이 생기고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하다. 이 전에는 괜찮은 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는데... 이번 주에 처음으로 괜찮은 날들이 찾아온 것이다!
다음 주면 드디어 안정기에 접어든다. 보통 12주 안정기 시작과 함께 임밍아웃을 하는데 나는 입덧이 끝나는 시기에 임밍아웃을 하고 싶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몸과 정신으로 임신을 알리고 싶지 않다... 입덧이 끝나고 입맛이 돌아오고 건강한 기분이 들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알려야지.
하루빨리 입덧이 끝났으면 좋겠다. 나무야,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