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탈 나도 찾게 되는 베트남 간식
하교 시간 교문 앞은 배고픈 학생들로 북적인다. 한국이든 베트남이든 학생들은 항상 배고프다.
우리 동네 중학교 교문 앞에는 튀김 아줌마가 세 명쯤 있다. 교문에서 스무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튀김 아줌마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모인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이 삼백 원하는 튀김 꼬치를 네댓 개씩 쌓아가며 먹고 떠드는 모습이 꽤나 정겹다. 미숙한 운전 솜씨로 50cc 스쿠터를 몰며 나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모습보다 훨씬 사랑스럽다.
매연과 먼지 가득한 하노이의 길거리에서 튀김을 사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매일 같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튀김 아줌마 주변에 앉아 간식타임을 가지는 것을 보면서 의외로 깨끗하고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고픈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튀김 아줌마의 아이템이 슬슬 궁금해져, 몇 달쯤 외면하던 튀김 아줌마 곁에 슬며시 다가갔다.
튀김 꼬치의 종류는 꽤 다양했다. 이쑤시개 정도의 두께의 꼬챙이에 튀긴 새우며, 어묵, 햄 같은 것들이 두세 개씩 꽂혀있다. 크기나 모양이 이자카야 꼬치 같은 비주얼이다. 꼬치는 다섯 개 정도 먹어야 위에 뭐가 좀 들어갔구나 싶을 정도로 작다. 맛은 이자카야 꼬치에 비하면 한참 아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다.
꼬치튀김포차(?)의 백미는 감자튀김과 치즈스틱이다. 다른 꼬치에 비하면 가격이 약-간 있지만, 여전히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이다. 감자튀김은 마법의 치즈가루를 넣고 흔들어서 주는데, 한번 이 불량한 맛을 보고 나면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감자튀김의 유혹에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700원짜리 치즈스틱도 마찬가지다.
학교 앞이 아니더라도 길거리에서 튀김을 팔고 있는 모습은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담벼락 아래, 올드 쿼터의 곳곳 등 대충 둘러보아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튀김의 종류도 정말 다양한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바나나 튀김이다. 바나나 튀김은 베트남 말로는 바잉 추오이(bánh chuối)로, 밀가루로 만들어진 온갖 것들을 가리키는 바잉(bánh)과 바나나를 뜻하는 추오이(chuối)가 합쳐진 단어다.
바잉 추오이(bánh chuối)를 처음 먹어본 건 이태원의 베트남 음식점에서였다. 하노이에 오기 전 베트남 음식을 미리 공부해보자는 핑계로 이태원까지 가서 반미와 바나나 튀김을 처음 먹었는데, 달콤한 바나나를 더 달달한 연유에 찍어먹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친구에게 물어보니 하노이에서는 바나나 튀김을 연유에 찍어먹지는 않는단다. 바나나를 조각내지도 않는다. 보통은 바나나 하나를 통째로 튀겨 길쭉하다. 어떤 곳은 큰 바나나로 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몽키바나나 같은 작은 바나나로 하기도 해서 크기는 다양하다. 반죽도 마찬가지로 집마다 다른데, 어떤 집은 찹쌀도넛처럼 쫄깃하기도 하고, 반죽 자체가 단 곳도 있다.
베트남 바나나는 한국에서 먹는 바나나와는 좀 다르다. 단 맛 외에도 새콤한 맛이 잘 살아있어서인지 향이 더 풍부한 것 같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고. 아무튼, 바삭 쫄깃한 튀김 반죽 속 새콤달콤하고 따끈한 바나나가 숨겨진 바잉추오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바나나 튀김을 먹고 나면 항상 뱃속이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나나 튀김을 두 번째 먹고는 확실히 바나나 튀김이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베트남 친구한테 너는 어떠냐고 물어보니, 자기는 한 개는 괜찮고, 여러개 먹으면 탈이 난다고 하더라. 여행자라면 더더욱 바나나 튀김을 비롯한 튀김은 길거리에서는 웬만하면 먹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런 이유로 정말 좋아하는 간식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꼭 먹어보라고 추천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짧은 여행 일정을 걸고 바나나 튀김에 도전해보라고 할 수도 없으니... 혹시 깨끗한 음식점에서 이 메뉴가 있다면 꼭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나는 아마 조만간 바나나를 직접 튀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
+호안끼엠 쪽 세인트 조셉 성당을 등지고 왼쪽으로 좀 가다 보면(바로 옆 골목 말고) 오래된 분식집 같은 튀김 집이 있다. 찹쌀도넛 같은 바잉 산 응옷(bánh rán ngọt) 이 맛있다.
단, 이 집도 먹고 속이 편하지는 않을 수 있으니 예민한 사람은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