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분동지 신혼(그림) 일기
나는 내가 꽤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나만 보면 언제나 "별나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럴 때 그의 표정을 힐끔 들여다보면 그 역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더군요. 그냥 조금 주위를 덜 의식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충동적으로(?) 할 뿐인데 이게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일이 되다니요.... (긁적)
처음 그가 우리 집에 인사를 가던 날, 아빠는 여전히 호주로 야반도주를 했던 나에 대한 화가 누그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 덕분에 하나도 친절하지 않았던 아빠와 그와 달리 엄청나게 친절했던 엄마에 대한 기억은 아마 그는 말하지 않아도 여전히 기억나는 순간일 것이다. 그가 몇 번이고 우리 집으로 찾아가 나와 아빠의 사이를 다독거려주지 않았다면 여전히 아빠와 나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튼, DJ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집이 본인이 살아온 환경과 너무나도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시골에서 자란 우리는 자연스레 할머니를 보고 컸다. 동이 트는 시간부터 눈을 떠 움직이기 시작하는 건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의 습관이었다. 할머니는 4남매를 키우기 위해 매일 새벽이 되면 시장으로 나가 밭에서 키운 농작물들을 팔았고 그 돈으로 소를 사서 학비도 대고, 논에 필요한 비료도 사시면서 집안을 일으켜 세우셨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라다 보니 아빠도, 이런 집에 시집온 맏며느리 엄마도 그리고 또 장녀인 나도 부지런한 습관을 보고 배울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게 남동생은 이런 모습을 배우지 못했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 내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가족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정말 하루가 머다 하고 바람 잘 날 없는 나를 이제 평생 포용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호주에 간다고 가방을 싸는 모습이라던지, 어느 날 사기를 당하고 들어와 울고 있다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전에 1등을 해서 상금을 타오는 일은 여느 여자 친구를 만났다면 경험할 수 없을 부류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고맙게도 이런 나를 의외로 잘 다독거리고 포용해주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은 나뿐만 아니라 아빠에게도 일어났다.
어느 날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 엄마가 아빠의 삭발 소식을 나에게 들려준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술을 먹지 않겠다며 금주 선언을 한 아빠는 독하게 마음을 먹겠다며 삭발을 하고 오셨다고 했다. 살면서 벌써 열 손가락을 넘기는 횟수의 금주 선언을 한 아빠였지만 삭발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가족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충격에 휩싸인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DJ는 그날 밤, 삭발을 한 아빠와 꿈속에서 만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