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눈에 놓인 취준이라는 길
면접이 잡혔다. 연구실에서 일하는 컨설팅 펌이랑 잡혔는데 지금 당장 주니어에게 줄 미션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면접을 보기로 했다. 코로나로 인해 취업 시장 문이 많이 좁아진 걸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프랑스는 공채라는 개념이 없고 자리가 나면 공고를 올린다던가 연락이 오거나 한다. 그저 열심히 이력서를 돌리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확실히 정규직 자리 공고가 많이 준 게 눈에 보인다. 아니 인턴이랑 alternance 공고가 많이 보인다. 작년에 인턴을 찾을 때는 올해는 인턴을 뽑을 생각이 없다던 그 많던 회사들이 올해는 그렇게 인턴을 찾는다. 내가 필요할 때는 꼭 온 우주가 나를 돕지 않으려는 기분이 든다. 인생 뭐 하나 쉬운 게 없다는 걸 알려주는 듯하다.
그렇다고 좌절하고 손을 놓을 순 없지 않은가. 링크드인, 인디드, 회사 채용 홈페이지를 돌아다닌다. Statistics, Data scientist 될 수 있는 모든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공고에 인턴이라던가 매니저라던가 원하는 직급을 명시하지 않는 회사들이 밉다. 공고 내용이 내가 할 수 있는 혹은 내가 원하는 분야와 전혀 다를 때도 대다수이다. 결코 다시 손을 대고 싶지 않은 c++ 라던가 matlab이라던가. 시작은 매번 이렇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한 시간이 지면 다시 생각이 바뀐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까다롭게 굴었던 것 같아.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싫다고만 하는 게 말이 되니. 하면서 배우는 거지. 물론 면접이 잡히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며 넙죽 엎드려 자세를 바로 잡는다.
공고의 바다를 헤엄치며 아직도 내가 어느 분야를 원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네 번의 인턴을 하면서 내가 미친 듯이 하고 싶은 분야를 찾지는 못했고, 그저 어느 분야를 하던지 내가 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에 놓인 돌덩어리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내가 이상한 것 같고, 나만 못 찾고 있는 것 같고. 마감이 내일까지인 구몬 학습지를 오늘 첫 장을 넘긴 기분이었다. 아무도 마감을 정해놓지 않았는데 혼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올해가 되어서야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더 나은 삶을 찾아 유랑하는 사람이라고. 그렇다고 무작정 이상을 따라다닐 만큼 순진하지는 않다고. 지독하게 현실적이기에 손에 있는 것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마침표를 찍어낸 지난 한 주는 공허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불확실한 세상에 다시 나를 던져 놓고 다니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다. 취준이라는 새로운 마음의 짐이 나를 짓눌렀다. 열심히 공고를 찾아도 어느 곳에도 지원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하루아침에 취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인턴도 10월부터 지원하기 시작해서 3월이 되어서야 찾았기에.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생각보다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힘든 날도 있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날도 있지만 그것 또한 지나가는 시간이라는 걸 안다. 글에 감정을 쏟아붓기도 한다. 날이 선 감정을 글자 안에 담아내다 보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기도 한다. 땀을 내며 운동을 하고,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에 펴 바르며 그 아픔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는 법을 만들어가고 있다.
요즘 인턴을 마치고 취업 시장에 뛰어든 프랑스인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깨달았다. 누군가 취업을 했다고 했을 때 내가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구나. 조금은 성장했구나.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다른 사람의 좋은 소식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수도 있고, 버틴다는 걸 힘들어할 수도 있다. 마음이 당장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이기에. 앞으로도 내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질투심으로 가시를 뱉어내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쉽지 않은 길을 누구 하나 먼저 벗어난다면 좋은 게 아닐까. 내가 힘든 이유가 네가 같이 고통을 겪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1명이라도 조금이나마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걸로 우린 됐어.
우리가 그 행복을 나누잖아. 네가 그렇게 해주고 있고. 그거면 충분해.
<아우슈비츠의 문신가 - 헤더 모리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진심을 담아 할 수 있을까. 나는 힘든데. 그저 네가 덜 힘들 수 있다고 해서 질투하고 부러워하지는 않을까. 네 행복을 같이 축하해주지는 않고 넌 참 운이 좋구나라며 미워하지는 않을까. 온전히 너의 행복을 내게도 나눠준다며 같이 행복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저열한 질투가 마음을 헤집어 놓지 않으면 좋겠다. 네가 딛는 발걸음에 행복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20년 9월 28일>
우리가 걸어가는 이 터널 속에서 너를 끌어줄 수는 없지만, 네가 먼저 빛을 찾았다고 너를 원망하지도 나를 미워하지도 않으려 한다. 네가 만난 빛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다. 나의 터널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쉽게 끝나지도 않겠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축축한 바닥에 발이 다 젖었지만 그래도 걸어가고 있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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