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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Jan 28. 2022

어쩌겠어 내가 때려치워야지

[프랑스 척척 연구원 생존기] 서론 쓰다가 갑자기 결론부터 쓴다고요?

설레던 시기를 지나고 잔잔한 물결의 시간을 지나 파도가 들이미는 시기를 겪어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서 이곳을 선택했고 어떤 것들을 기대했는 지를 담은 모든 게 휩쓸려갔다.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던 시기의 글을 다시 마주하기에는 감정이 들끓고 있었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나의 글을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조금은 더 묵혀놓기로 했다.



기대가 떠나간 자리에는 지독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6개월이 지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지냈었다. 나는 입장이 다르고 전공이 다르기에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으니까. 너무 긍정적이었다. 세상은 내게만 특별하지 않다. 공연한 사실을 잊어버릴 때마다 상기시켜주는 일이 생긴다.


한 개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구조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타인을 대할 때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지 않으면 감출 수 없는 그 사람의 이면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도덕성이 결여되면 그 연구는 아무리 포장하려 해도 과정에서 욕망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결과가 보여주는 게 내가 원하는 이야기와 맞지 않기에 그 데이터는 쓰레기다라는 태도는 내가 추구하는 연구자의 마인드랑 거리가 멀다. 그 현실을 마주하는 게 힘들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해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혼란스러운 간극을 채운건 연구라는 이름 하에 진행되던 사업이었다. 바이오 분야 기초 연구는 돈이 없지만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면 돈이 된다. 특허를 신청하고 스타트업을 만들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인류를 위해 기여한다는 사명감까지. 얼마나 멋지고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자아실현을 왜 타인을 갈아가며 연구실에서 하냐고.


이 혼란이 우리가 하는 연구가 환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더라면 반감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연구 과정에서 제대로 검증되고 차근차근 이어졌다면 혼란스럽지도 않았겠지. 모든 게 다 한 번에 동시에 진행되니 혼돈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동료가 하루는 왜 우리 미팅은 그렇게 피하고 다른 팀 사람들이랑 계속 미팅을 추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게 자기가 하고 싶은 사업으로 내딛을 중요한 연구라면 연구 자체에 우선 집중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우리는 현실을 보여주며 꿈을 파괴하지만 저 사람들은 그의 꿈을 추켜세우거든. 달콤하잖아."


연구를 하는 사람들과의 미팅을 취소하고 사업 진행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과의 미팅을 잡는 건 피하고 싶어서겠지. 우리는 현실을 보여주며 꿈을 파괴하지만 저 사람들은 그의 꿈을 추켜세우거든. 우리가 하는 말은 이렇게 결론 내려서는 안된다. 가설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언제나 "부정적인" 소식만을 가져온다.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근데 자존감 올리기를 왜 연구실에서 하냐고. 사기업 연구실도 아닌 공공기관 연구실에서.


Theranos가 우리의 미래야. 얼른 떠야지.

아무래도 일론 머스크 보고 감동받은 듯.


연구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고 이 연구로 무엇을 이루고 싶어 하는지. 과연 이게 나를 위한 일인지 공익을 위한 일인지. 나를 위한 일이라면 이 연구가 사회에 어떤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매번 확인해야 한다는 걸 배운다.



"나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 너네가 나를 위해 다 해줘야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지도. 그걸 입 밖으로 내뱉으면 듣는 사람이 더 부끄러워진다는 것도. 타인에게 존경을 강요하는 게 얼마나 하찮아 보이는 지도.  



타인을 대하는 태도의 중요성도 몸소 느끼고 있다. 얼마나 쉽게 한 사람의 마음이 버젓이 드러나는 지도. 동시에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많아서 지금 이 데이터는 2일 뒤가 아니라 다음 주에 진행하겠다는 동료의 말에 "우선순위는 내가 정해." "내가 돈 주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 펀딩을 받아 연구실에 한 개인을 고용하는 게 어떻게 내가 돈주니까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일까. 저 말을 입 밖에 내뱉으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일까. 타인을 나의 소유물로 생각하게 되면 고립될 수밖에 없다.  



내가 옳다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지도. 나의 의견과 나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를 보았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나랑 일하려면 이렇게 해야 해."라는 태도가 배우려는 자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지를 보았다.



일주일 간 프랑스 브르타뉴 센터에서 특정 연구자 30여 명을 대상으로 일주일간 교육을 진행한다기에 신청서를 작성할 때, 당신이 분석할 때 마주하는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문항이 있었다. 연구 데이터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나열하고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데 이런 다른 방법을 시도하면 좋을 것 같다고 이론적인 설명을 써내려 갔었다. 논문을 살펴보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생각이고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기에 그 부분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배운 것들이니까. 문제와 해결방안, 아이디어를 공유해도 누구나 다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에 따라 다르다는 걸 알기에.


물론 내가 가져간 A4 5장 중 반은 삭제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런 거 알려주는 거 아니라고 지네가 필요하면 우리를 찾아오게 해야 한다고. 아 이 솔직한 욕망에 감탄을 내뱉어야 하는 것인지 경악을 하고 달아나야 하는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달아나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운이 좋게 일주일 간 프랑스 각지에서 온 연구자들과 함께 의논하고 도움을 주고 배우는 공간에서 내가 품고 간 질문은 해결하지 못했지만 다른 질문거리들을 품고 돌아왔다. 내가 얼마나 작은 세계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는 지를 배웠고 생각하지도 않은 위로를 많이 받았다.


"그런 놈이 너의 경험 자체를 무너뜨리게 두지 마"

"이제는 어떤 놈을 피해야 하는지 배운 거야."

"네 PI는 모르겠지만 그가 너와 함께 일하는 건 엄청난 행운이야."



연구라는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았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인간인데. 조금은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질병 관련 연구를 하는 분야여서 기대했다. 무엇보다 나에게 방법론적인 자율성이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는 내가 원했던 자율성이 없다. 왜 나와 같은 언어로 연구하는 상사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지도 알았고. 여기서 박사를 선뜻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연구만 내버려둔다면, 성격은 더러워도 커리어에 필요한 분야를 배울 수 있다면 잘 버텼을 것이다. 버티는 거 잘하니까. 이제 내가 이곳에 남는다면 이유는 그저 다른 곳에 발을 들이밀기 귀찮아서. 익숙하고 편해진 환경에서 벗어나기 싫어서라는 이유일 것이다. 아 얼른 취준 해야겠다.






나는 저 XX처럼 되지 말아야지.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https://brunch.co.kr/magazine/chuckchuck

https://brunch.co.kr/@jijo/181


https://brunch.co.kr/@jijo/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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