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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Jun 09. 2024

어디로 가야 하나

에필로그

에필로그. 어디로 가야 하나 / 일러스트


  지나가던 길에 너를 본다. ‘섬’의 해안도로 위를 차로 달리다가 너를 지나치는데, 백미러 속의 너는 어느 ‘상점의 쇼윈도’ 앞을 걷고 있다.

  찰나의 순간이고, 네가 굽잇길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차를 멈추려 한다. 그런데 그 순간, 너의 뒤에 몇 걸음 떨어져 걷고 있는 아이를 본다. 만감이 교차한다. 그냥 그대로 커브를 돌아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섬은 많이 변했다. 한때 내가 어쩔 수 없이 와야 했던 곳이 아니다. 텅 비었던 공간은 이색적인 건물로 채워졌고, 길가는 바캉스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담배를 태우며 서 있던 바닷가도 이제 카페와 상점이 들어서 있다. 예감일 뿐이지만, 너도 많이 변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너를 본 것 같다고 하자, 나와 동행한 ‘형’이 말한다.

  “설마…….”

  실제로 봤는가? 나도 모르겠다.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하고 잊고 싶지만 잊지 못한 사이, 상점에 대한 왜곡된 기억도 많아졌을 듯하다. 멋대로 잊을 수 없어도 멋대로 각색되는 것이 기억이니까, 확인하려면 다시 가봐야……. 젠장, 마치 언제 재발할지 모를 병을 앓는 것 같다. 그러는 한 계속 상점에 매달려야 한다.

  그러므로 계속 앞으로 달리려 한다. 이제 신경증은 거의 나았지만, 악보의 도돌이표처럼 반복하지 않으려면, 실재한 상점이든 망상 속의 상점이든 이대로 각색된 기억 속에 남긴 채 시치미를 뚝 떼야 한다. 우연히 마주친 우리는 미소를 머금은 채 서로 스치듯 지나갔고 한참을 지나 고개를 돌아봤었다고, 이미 각색한 장면을 떠올려 본다.

  잠시 신호등 앞에 멈춰 선다. 곧 마지막 갈림길이 나온다. 안내판에는 두 가지 방향이 주어진다. 하나는 직진 방향, 또 하나는 온 길을 우회해 상점으로 돌아가는 방향이다. 다음 기회는 없다.

  어디로 가야 하나…… 사실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을 뿐, 분명 이 순간을 기다려 왔으니까.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나…… 막상 지나간 상점을 다시 기웃거리는 것은 소용없는 짓 같다. 가서 길고양이처럼 서성이며 운명 같은 재회를 기대하겠지만, 네가 아니거나 너라도 원치 않을 수 있다. 불편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나의 시간은 상점 앞에 여전히 멈춰 있지만, 너의 시간은 계속 흘러갔을 테니까, 우연히 얼굴을 본(보았다고 믿는) 것만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바라면 이뤄지기도 하니까…… 자꾸만 마음은 소용없는 쪽으로 기운다. 소용없는 풍경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어쩌면, 어쩌면 나는, 소용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곧 신호가 바뀌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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