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i Nov 08. 2019

증언의 기록과 보여줌으로써의 증언의 간극

다큐 <22>로 생각해보는 증언과 재현, 매체를 둘러싼 질문들

 

다큐멘터리 <22>의 공식포스터. 국내에는 2018년 개봉했지만, 독립 영화의 고질적인 한계-상영관 수의 절대적 부족-로 많은 이들이 보지 못했다.


 한국과 중국이 공동제작한 <22(Twenty two)>는 중국 내 ‘위안부’ 생존자를 다룬 독립 다큐멘터리입니다. 중국에는 강제 동원된 중국인 위안부 뿐만 아니라 종전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한국인 위안부들이 각 지역에 남아있었으나 대부분 죽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2015년 당시 단 22명만이 생존해 있었습니다. 감독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여전히 부정하고 있는 지금, 역사의 생생한 증인으로써의 생존자를 기록하고 그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요. 


 다큐멘터리에서는 22명의 생존자 중 4명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는데, 그 중 한분이 한국인인 박차순 할머니, 마오인메이라는 중국이름으로 후베이성 샤오간사이에서 살아오신 분입니다. 저는 사실 위안부 생존자로서 박차순 할머니를 먼저 만난 적 있습니다. 바로 『중국거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연구보고서』 에서 입니다. 보고서에는 2003년 한국정신대연구소 연구원이 면담을 통해 정리한 할머니의 증언이 실려있습니다. 그 증언에는 위안부 당시의 경험보다 위안부로 팔려가기까지[1] 가난과 폭력, 빚에 시달려 도망다니고 매춘을 하며 포주에 의해 매매되는 과거가 더 많은 부분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위안부 경험의 기억이 떠올리기조차 괴롭고 오랫동안 그녀의 의식 안에서 억압되어 왔다는 이유가 존재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 유년기의 기억이 그녀의 이후 삶을 지배한 가장 중심의 사건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감정과 사고가 가장 강렬하게 얽혀 있는 장면일지도 모르지요. 


<22> 속 박차순 할머니의 인터뷰 장면. 할머니는 이제 한국말을 거의 잊으셨는데, 기억하는 유일한 한국말은 '아리랑'과 '백도라지' 노랫말.



 그러한 느낌은 증언 채록 기록이 아닌 <22> 안의 할머니 인터뷰를 볼 때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할머니는 가난 때문에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표현합니다. 할머니가 인터뷰에서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고 묘사하는 장면은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입니다. 어린 동생을 안은 엄마가 기차에 타고 있었고, 기차가 떠나려고 하자 어린 할머니는 높은 기차에 매달려 울었습니다. 그때 기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라고 던져줬고, 배가 고팠던 할머니는 그걸 주워 먹었습니다. 그때 자신을 본 엄마가 울었다고, 그땐 왜 우는지 몰랐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자신을 버린 엄마와 그런 자신을 챙기려 애쓴 할머니를 떠올리는 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죠. 


‘기억나는 것도 있고 안나는 것도 있어. 아는 것도 있고 까먹은 것도 있고’. 할머니는 당신이 있던 위안소를 설명하다가 이렇게 말하고 더는 말하지 않겠다고 입을 다뭅니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우리의 기억은 불완전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은 왜곡되고 아예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또렷하게 말해질 수 있는 기억은 그 사람에게 가장 심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이미 먼 과거가 되었는데도 그 기억의 상기가 여전히 강한 감정적인 파급을 미친다면, 그 또한 당사자 자체를 뒤흔든 결정적인 일이었다고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증언 채록 기록에서는 이러한 느낌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실제 면담을 통해 나온 구술자의 말이지만, 이를 기록화하는 과정에서 비언어적 요소들이 제거되고 내용은 재구성되기 때문입니다. 구술자가 똑 같은 증언을 했을지라도 문서의 기록에서는 말과 말 사이의 깊은 한숨과 침묵, 고통에 찡그린 할머니의 얼굴이나 눈가에 맺힌 눈물은 볼 수 없지요. 정제된 문자로 남겨진 증언은 역사에 대한 공식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키지만, 인터뷰 영상만큼의 생동감과 정동적 효과를 갖는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증언으로 읽었던 박차순 할머니와 다큐멘터리에서 바라본 박차순 할머니를 바로 연결시키지 못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증언을 담는 두 매개체 사이의 매체적 간극이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상이라고 해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순진한 믿음이겠지요. 기록에서 채록자(또는 편집자)의 개입이 있듯이 영상에서도 감독의 연출이 들어갑니다. 또 채록자와의 일대일 인터뷰 형태가 아니라 스텝들에 둘러 쌓여 카메라를 앞에 두고 말해야 하는 촬영의 상황적 요인도 증언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요. 조명, 배경, 클로즈업, 음악 등 영상에는 증언자와 증언 외에 의도하는 효과를 연출해낼 수 있는 요소들이 기록 보다 더 다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간 위안부 할머니를 직접 보여주거나 간접적으로 그려냈던 다큐 <낮은 목소리>, 영화 <귀향>, <허스토리>, <아이 캔 스피크> 등에 ‘재현의 윤리’ 논의가 점화됐던 것이고요. 



<22>의 스틸컷들.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에 고통스러워하시면서도 평상시의 일상에선 천진난만하고 상냥한 할머니들. 이 두 모습 모두 그들이다.

 


 그러한 논의를 비추어 생각해볼 때, <22>는 ‘위안부’라는 고정된 관념을 할머니들을 통해 재현해내기 보다 현재 삶 있는 그대로를 보여줌으로써, 생존자 개개인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증명해야 하는 ‘위안부’ 자체의 기억보다 다양한 생의 이야기들-가난, 전후의 일상적 폭력, 사회의 순결 이데올로기부터 마오쩌둥에의 찬양, 항일활동, 애국전선 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생존자의 가족이나 가까운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실어 생존자들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지요. 결국 이 다큐멘터리는 ‘위안부 사건’을 증명하기 위한 산증인으로 생존자를 배치하는게 아니라 생존자들을 ‘위안부 사건’ 이후 스스로의 삶을 재구축한 주체적 인물들로 보여준다는 의미가 깊다고 여겨집니다.[2]


들려져야 하는 이야기가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계속해서 탐색 중입니다. 고통스런 과거 기억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그 기억에 대한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증언은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증언과 증언자에 대한 재현을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등등… 이러한 질문들은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리고 윤리적으로도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증언을 생산하고 전달해내는 이들 뿐만 아니라 증언을 듣고 기억하는 우리들도 함께 답을 찾아야하는 문제들이기도 합니다.  




          


[1] 박차순 할머니는 광주에서 술을 파는 점원 생활을 하다가 사장에게 빌린 돈이 쌓이자 사장에 의해 경성에 있는 매춘업자에게 팔려갔다. 이후 경성의 포주가 다시 중국으로 할머니를 팔아 넘겼는데, 그때 2~3일 정도 기차를 타고 중국 호남성에 갔다고 증언한다. 당시 스무살이 조금 넘은 나이로, 할머니를 포함 3~4명 정도의 여성들을 함께 데리고 간 조선인 남성이 호남성 위안소의 관리인으로 있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거짓 정보에 속거나 강제적인 납치에 의해 위안부로 동원된 것과 구별하기 위해 본문에서 의도적으로 이러한 표현을 사용했다.(참고: 『중국거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연구보고서』, 이성순[외저]; 여성가족부[편], 2006, pp.206-210)


[2] 다큐멘터리 <22>의 재현 방식과 그 방식이 파생한 담론의 차별성을 분석한 논문으로 셰린즈(고려대학교 미디어학과 박사)의 「중국 내 ‘위안부’에 주목한 중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눈’-다큐멘터리 『22』사례 연구」 논문을 추천한다. 중국문화연구 2018, vol., no.41, pp. 353-374 (22 pages)에 게재. 

이전 11화 ‘나만의 기억'이 불가능해진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