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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라 Aug 28. 2019

이순신 장군의 고뇌/ 묘도 봉화산

내게 특별한 여행지 (8), 2016년 9월



여수에서 내 마음에 고이 남은 곳은 유명한 여수 밤바다가 아니었다. 주차할 곳을 찾느라 애먹었던 돌산공원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을 길게 서서 올라갔던 오동도 전망대도 아니었다. 관광지 여수가 아닌, 여수가 본래 지닌 호젓한 정취를 내가 가감 없이 느껴본 곳은 여수 북쪽에 있는 작은 섬, 묘도에서였다. 

  

과거엔 묘도까지 배가 다녔으리라. 이제는 2013년에 개통된 이순신대교가 묘도를 사이에 두고 여수와 광양을 남북으로 잇고 있다. 이순신대교를 시원하게 달려서 묘도에 도착한 우리는 묘도의 정상,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던 봉화산을 찾아갔다. 

  

봉화산은 산 중턱까지만 차가 갈 수 있어서 정상까지는 한적한 산길을 30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264미터의 작은 산이지만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놀라웠다. 묘도의 오래된 다랭이논과 주변 다도해도 절경이었고, 남으로는 여수국가산업단지가, 북으로는 광양제철소가 한눈에 보여 1960~70년대 한국의 산업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한 컷의 분명한 이미지로 체감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엔 또 한 사람의 자취가 있었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정유재란 때의 이순신 장군이다. 진도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해전 다음 해인 1598년, 이순신 장군과 명나라 진린이 이끄는 조명 연합함대가 왜군과 최후의 격전을 준비한 장소가 이곳 묘도이다.     


     

  

당시 묘도 서쪽의 순천왜성에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가 있었고, 동쪽의 사천왜성에는 시마즈 요시히로가 조명연합군보다 두 배나 많은 500척의 군선을 이끌고 고니시 유키나가를 도와주러 와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든 임진왜란 선봉장, 고니시의 부대를 섬멸하고자 했지만, 조선 육군의 비협조로 협공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조명연합군은 결국 시마즈의 대군과 먼저 격돌하게 되고, 그 사이 고니시의 부대는 묘도 앞바다를 지나 부산 방면으로 탈출한다. 노량해전은 조선의 승리로 끝났지만 당시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던지 7년 전쟁의 마지막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은 그만 전사하고 만다. 

  

봉화산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왜적 모르게 배를 숨겨두었던 묘도의 작은 만 ‘선장개’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논과 밭으로 변한 모습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을 치르고 전사한 장소도 여기서 멀지 않다. 

  

관광지의 북적임과 소란함에서 멀리 떨어진 묘도 봉화산 봉수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나는 문득 알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 또한 내가 있는 바로 이곳에 서서 이 바다와 섬들을 내려다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그는 이 지역의 지형과 해안선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도주하는 왜적을 물리칠 길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것이다. 묘도 봉화산의 봉수대는 그의 깊은 고뇌를 한번쯤 헤아려보게 만드는, 과거를 재생하는 힘이 있는 장소였다. 

  

머지않아 묘도에 수조 원이 투입되는 항만 재개발 사업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미 너무 많은 곳이 개발되어 콘크리트로 채워진 여수지만 묘도의 봉화산만큼은 지금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한다. 

  

어떤 장소는 그곳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내게는 묘도가 그런 곳 중의 하나였다.      


@2016


묘도 봉화산에서 내려다본 선장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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