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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라 Sep 21. 2019

천지가 열린 날/ 백두산

내게 특별한 여행지 (21), 2010년 8월


창바이산. 여행 내내 귓전에 들리던 소리다. 우리식으로 발음하면 장백산(長白山). 셔틀버스로 산행이 시작되는 기상대 방면으로 가면서 듣는 ‘창바이산’의 발음이 낯설었다. 창바이산과 백두산, 그 사이엔 국경선의 차이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했다. 과거사를 놓고 한중 양국이 벌이는 갈등, 이곳을 선점하고자 하는 중국의 야심, 그리고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의 경계.

  

원래는 백두산 남파에서 시작해서 서파, 북파를 종주하려던 길이었다. 그러나 한미군사훈련으로 인해 올 8월 갑자기 남파 입산이 금지되었다. 원래 그곳은 북한 땅인데 중국이 임대해서 쓰고 있었다 한다. 중국은 그렇게 야금야금 백두산을 장악하고 있었다. 어느 팀이 ‘백두산은 우리 땅이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은 이후로, 한국인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사진 찍는 것이 전면 금지되었을 만큼 양국간의 미묘한 외교적 갈등이 서린 곳이 백두산이다.

  

입구에서부터 중국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들은 여기서 무얼 보고자 하는지 살짝 궁금해졌다. 세계 최고의 칼데라호의 아름다움? 해발 2500미터 이상의 봉우리가 16개나 되는 명산? 어찌되었건 백두산은 지금 변화의 기로에 있다. 이 지역은 관광특구로 정해져 개발의 바람이 시작되었고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직 때묻지 않은 야생의 비경을 간직한 변방의 땅이기도 했다.

  

백두산의 하늘못은 우리에게 쉽게 자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셔틀버스로 5호경계비 방면으로 달릴 때는 간간히 햇살이 비치더니 1236계단을 올라 5호경계비에 섰을 땐 짙은 안개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잠깐 안개가 사라져 주변 평원이 환히 펼쳐질 때도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안개는 다시 온산을 휘감아 버리곤 했다. 이대로 가다간 안개 속에서 산행을 마치겠다 싶었다.

  

백운봉에서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녹명봉을 지날 때쯤 갑자기 사람들이 소리친다.


  보인다!

  

반가움에 뛰어내려가니 천지가 살짝 열리고 있었다. 안개가 잠깐 걷히면서 연푸른빛 수면과 주위 산들의 실루엣이 드러난 것이다. 그 섬광 같은 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 안개는 다시 호수를 삼켜버렸다.


녹명봉 부근에서 본 천지

  

8월 중순이었지만 흐린 날 백두산은 늦가을처럼 쌀쌀했다. 안개는 그렇다 치고 무엇보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대었다. 가이드는 이 바람이 멈추어야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능선길이라 완만한 곳이 많았다. 나를 포함한 열한 명의 일행 중에는 초등학생도 셋 있었는데 다들 잘 걸었다.

 

백두산.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산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북한 쪽으로 길이 열릴 것 같아서, 개마고원을 관통해 천지에 오를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요즘 나라 안팎 상황을 보니 그날은 영 멀어보였고, 더 늦기 전에 백두산을 보자 싶어 나선 걸음이었다. 산은 내 예상보다 훨씬 광활했다. 드넓게 펼쳐진 평원이 참으로 시원했고 이미 이곳에 ‘대륙’의 기운이 있었다.  

  

오후가 되니 바람이 잦아들면서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용문봉이 가까울 무렵, 안개는 완전히 물러났다. 하늘은 트이지 않았지만 길을 가면서 옆으로 살짝 살짝 드러나는 천지의 아름다움은 특별한 데가 있었다. 사진으로 많이 봐서 별 기대 없이 왔는데, 실제로 보니 훨씬 야생적이고 신비롭다. 천지와의 첫만남은 우리를 아득한 시원으로 데려가 주었다.


               

용문봉 부근에서 본 천지

  

수심이 깊은 곳은 200미터나 된다고 한다. 여러 차례 폭발하면서 만들어지다 보니 해발 2000미터 이상 되는 높은 곳에 이렇게 크고 깊은 호수가 생겨나게 되었다. 태곳적부터 자기 안에 한 하늘을 품어온 백두산! 과연 수많은 이들의 마음과 발길을 불러 모을 만했다.

  

달문에 닿았지만 천지물가로 내려가진 못했다. 오전에 안개와 바람이 심해서인지 관리국에서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조선족 할아버지가 파는 커피 한 잔을 마신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할아버지는 조부 대에 이곳으로 이주했고 자신의 부모님은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만주에서 연해주, 중앙아시아까지, 우리 선인들이 걸어갔던 먼 길, 그 길을 한번 추적해보고 싶기도 했다.  

  

서파, 북파 종주를 마치고 다음 날은 지프로 천문봉에 올랐다. 보기 드물게 화창한 날이었다. 올라가는 길은 까마득했고, 저 아래로는 원시림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햇살 덕분에 천지 물빛은 전날보다 더욱 깊고 푸르렀다. 그런데 산행 중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려 어렵사리 만난 천지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그러했을까. 천문봉은 온갖 사람들로 북적대는 곳이었으니 산길의 호젓한 정취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가이드 말로는 두 번째 보는 거라서 그렇단다.  



천문봉에서 본 천지

  


천지를 따라 길이 이어진 곳까지 걸었다. 반대편은 북한 영토다. 망원경으로 바라보니 북한의 케이블카와 계단이 천지물가까지 이어져 있다. 그쪽에서는 배를 띄우기도 한단다. 천문봉에서 바라보는 천지는 두 개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역사의 땅이었다. 남의 땅에서 건너편 또 하나의 조국을 바라보니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마음을 적셔왔다.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서 체 게바라는 마추피추를 보며 이렇게 묻는다.

  

본 적도 없으면서 그리워하는 까닭이 뭘까요?

  

내가 그러했다. 본 적도 없는데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천지의 깊은 물에는 우리 고대사의 시원이 담겨 있었고, 반 토막이 된 민족사의 회한이 담겨 있었으며, 우리가 건져 올릴 수 있는 가장 푸른 희망이 담겨 있었다. 그래 그런지 이곳의 푸름은 세상 그 어떤 곳에서 만난 푸른 빛보다 더 푸르게 내 가슴을 채웠다. 이 푸름은 영원해보였고, 더불어 우리의 희망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한반도의 모든 산맥이 여기서 뻗어 내렸다고 하는 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떠나 장춘까지 6시간을 옥수수밭 벌판을 달렸다. 내가 처음 만난 만주 땅이었다. 버스가 장춘 공항에 도착할 무렵 현지 가이드는 마지막 인사로 ‘다시 만납시다’라는 북한 노래 한 소절을 불러주었다. 언젠가 천지 둘레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백두에서 한라로 우린 하나의 겨레

      헤어져서 얼마나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메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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