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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emi Aug 31. 2020

더미를 만들자

더미란

먼저 더미란 무엇인지부터 집고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더미 dummy란 출간 전 가제본 상태를 말해요. 가제본이란 글과 그림이 있는 책의 형태를 가진 상태예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책의 형태라는 점이에요. 책의 형태를 가진다는 것은 넘길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풀어 설명할 수 있어요. 글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림만 있는 것도 아니고 글과 그림이 배치된 상태예요. 그것은 대략적인 상태이지 완전히 정해진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다시 풀어 설명하면 수정 가능한 상태의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출판사별 공모전이 있는데 디테일한 사항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그림책 공모전에서 원하는 것이 바로 더미예요. 그림책에서는 무척 중요하답니다. 더미가 중요한 이유는 글과 그림뿐 아니라 구성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림책은 그림책의 특수성 때문에 구성도 중요한 요소예요. 한 장면에서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이 장을 넘기면 무엇이 나오나. 등 여러 요소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지요.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는 게 더미랍니다. 글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런 요소들을 총괄해서 구성하는 것 역시 그림작가의 역할이에요. 처음 그림책 작가 일을 시작하면서 한 고민 중 하나가 그림은 어떤 식으로든 그리겠는데 많은 양을 그려야 하는 그림책을 감당할 수 있을까였어요.

그리고 좋은 원고가 오지도 않고요. 위의 두 가지 이유로 창작 그림책 더미 작업을 시작했어요. 과연 내가 그림책 한 권을 끝낼 수 있을지에 관해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거죠. 이러한 의구심은 편집자들도 가질 수 있어요. 낱장의 그림과 한 권의 그림은 스케일이 달라요. 호흡도 다르고요. 대학생일 때 우연히 그림책 그림작가 준비하는 분께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분이 편집자에게 창작이 아니어도 좋으니 한 권의 책을 완성해 보라는 조언을 듣고 왔다고 하셨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분을 만난 것도 하늘의 도움인가 싶어요. 오래전 우연히 주워들은 이야기가 생각나며 첫 창작 그림책 더미 작업을 했어요. 그땐 스타일도 없고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을 때라서 엉망이었는데 몇 번 해보니 손에 익더라고요. 이후 스타일이 점차 잡히고 이야기도 다듬어지니 주문받은 일도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만약 낱장의 그림만 그리다 덜컥 그림책 작업을 하게 된다면... 일정관리나 수정사항을 조율하는 등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할 수 있어요. 그런 부분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단순히 경험을 위해 더미를 만들기도 하지만 더 길게 본다면 다른 의미가 있어요. 작가 중에 그림책이 출간된 이후로 1-2년에 한 번씩 창작 그림책이 꾸준히 나오는 작가들이 계세요. 참 존경스러운 작가님이에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이미 있던 창작 그림책 원고들을 수정해 출간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저 역시 경험한 일이기도 하고요. 더미를 많이 만들어 두는 일은 (적당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주택 청약에 가입하는 거랑 비슷해요. 꾸준히 쌓으면 당첨 확률이 높아지고 그러다 어느 순간 집에 당첨되듯 책이 출간되는 거죠. 작가들 사이에 통용되는 전문용어(?)가 있어요. 책이 다음 책을 물어다 준다는 표현이에요. 단순히 다음 책의 의뢰를 뜻하기도 하고 다음 창작 그림책을 만드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더미를 만드세요. 가능하면 많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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