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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emi Aug 29. 2020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란

상업미술

요즘 상업(응용) 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순수미술의 정의부터 확인해 볼까요.

‘순수미의 구현을 위한 예술적 동기에 의하여 창조된 미술로 자율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며 미술 자체 실제를 추구하고 목적하는 미술 지상주의적인 개념’이라고 하네요. 너무 어렵죠. 중요한 단어들로 예술적 동기, 자율성, 독립성 등이 있겠네요.

순수미술도 결국 그림을 팔지 않나요? 맞아요.

순수미술도 그림을 팔지요.

상업미술도 그림을 팔고요.

어떤 분들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서 복제품이 없게 원화를 파는 사람을 순수미술 작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나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그림을 사는 대상을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쉽게 말해 순수미술은 나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든다고 사는 것이고, 상업미술은 처음부터 이것들 살 사람을 염두에 두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리는 것이지요. 혹은 주문을 받을 수도 있고요.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대상을 염두에 두는가 아닌가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수정’이 생겨요.

‘작가가 이렇게 해석해서 그렸다는데 왜 이걸 고쳐야 하지? ‘혹시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그림책 작업을 순수미술로 이해하고 있는 분이에요. 반면 상업미술을 하는 분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과정 중의 하나고요.

그림책을 순수미술로 접근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독자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출간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작가의 생각과 표현방식이 잘 표출돼 공감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전혀 수정 없이 그대로 출간되는 건 솔직히 흔한 경우는 아니랍니다.


 - 잘 그린 그림이란.


집 앞 슈퍼나 카페 사장님처럼 일상에서 알고 지내던 분들이 제가 미대 나온 사실을 알게 되면 ‘우와 그림 엄청 잘 그리시겠네요’이런 말씀 자주 하세요. 그러면 저는 ‘뭐 그냥...’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곤 했었어요. 미대 나왔다고 아무 그림이나 다 잘 그리는 것 아니니까요.

지금은 성인들도 가르치다 보니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제가 그림을 잘 못 그려서....’ 혹은 ‘그림을 잘 그려야 그림책 작가를 할 수 있겠죠’에요.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반인들이 말하는 잘 그린 그림은 아마 사진 같은 그림일 확률이 높을 것 같아요. 물론 그림책에도 그런 그림이 필요하죠. 하지만 모든 그림이 사진처럼  표현될 필요는 없답니다. 그림책에서 잘 그린 그림이란 내용에 잘 어울리는 그림이 아닐까요.

거기에 자신의 개성이 드러난다면 금상첨화겠지요.


몇 가지 예를 보면요.

이 작품은 <안돼! 데이비드>이라는 작품이에요. 데이빗이라는 아이가 말썽을 부리는 내용이지요.

이 작품은 <부엉이와 보름달>이라는 작품이에요. 겨울에 부녀가 부엉이를 보러 숲으로 간다는 내용이에요.

<안돼 데이비드>은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듯한 느낌의 그림이고 <부엉이와 보름달>은 원숙한 데생이 돋보이는 작품이지요.

만약 두 작품의 그림 작가가 서로의 작품을 그렸다면 어떨까요.

제 생각엔 그래도 멋진 작품이 탄생했으리라 생각해요. 다만 작품이 주는 느낌은 달라졌을 테지요.

사실 잘 그린 그림이란 단순한 스타일 이상의 것이 있어요. 색조나 여백, 연출 등 그것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보이는 부분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무척 다양하고 미묘하기까지 하답니다.


그러면 질문을 조금 바꿔 볼게요.

‘잘 그린 그림이란 무엇일까’가 아니라 ‘나는 그림을 잘 그릴까?’로요.

저는 이 글을 보는 분들이 그림책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분이라는 전제하고 있으니 아마도 그림에 관심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으리라 예상해요. 서두에 ‘그림 잘 그리시겠네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뭐 그냥...’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지금은 ‘아, 예’ 해요.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의 정의를 나 나름대로 내린 후에 그냥 ‘네’라고 인정하는 것인데요. 작가마다 그림을 잘 그리냐고 했을 때 대답은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잘’이라는 말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림책 작가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분들에게 이 기준으로 묻고 싶어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막막한가. 두려운가.

제가 부족해서인지 저는 지금도 빈 종이를 보면 긴장돼요.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서 해보고 싶어요.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두려워하지는 않아요. ‘난 지금도 그림책 작업할 때마다 두려운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작가님들도 계실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과 막막함이란 작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는 두려움과 막막함이에요. 두려움이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면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작품에 더 집중하게 만들 수 있지만 두려움에 압도당하면 연필을 쥘 수 없게 되거든요. 미대를 나와도 그런가요? 미대를 나와도 그렇게 될 수 있어요.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그림을 그릴 때 긴장되지만 그 행위 자체가 두렵지는 않다면 당신은 최소한 그림을 잘 그릴 사람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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