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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전문점 함부로 창업하지 마라 1.창업TalK(1화)

1. 나도 사장님 소리 듣고 싶다

by 박주민

매년 12월경이면 대기업에서 사장단 인사를 발표한다. 많게는 한 기업에서 몇십명이 되기도 한다. 우리숍이 있는 상가건물엔 더 많다. 옆 상가들까지 합치면 사장님들만 금 세 백명은 될 것 같다. 심지어 우리는 가끔 처음 본 사람에게도 아무개 사장님하며 부른다. 그러니 알고 보면 모두가 사장인 셈이다. 그런데 난 항상 대리다. 우이쒸... 난 언제쯤 사장님 소리 듣는 날이 오지. 난 언제까지 남의 밑에서 일하고 살아야 하는거야.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날 보니 내가 커피숍 사장이 되어 있었다. 내 무의식이 간절히 사장님 소리를 듣고 싶었나보다. 커피숍을 오픈하고 사장명함을 만들고 사장님 소리를 처음 듣는날 정말 기분이 좋았다. “와 내가 드디어 사장님 소리를 듣다니 우하하.” 겉으론 표현 안했지만 내심 뿌듯한 기운이 내 몸을 감쌌다. 이제 이 작은 커피숍을 더 크게 더 많이 만들어서 진짜 제대로 된(?) 사장님 소리도 한번 들어봐야 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다들 그러지 않는가 꿈은 크 게 가질수록 좋다고. 그래서 난 하나씩 하나씩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사장님 소리를 듣기전 2009년 추운겨울 어느날. 14년여의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난 지 금 신사동의 어느 한 커피 아카데미에서 열심히 커피를 볶고 있다. 샘플로스터 3개가 돌아가는 로스팅룸에 앉아 생전 듣도 보지도 못한 수십종의 생두를 매일같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 파란색의 생두가 다 볶일때쯤이면 격렬한 팝핑 소리를 연발하며 구수 한 커피 내음과 함께 하얀 연기를 마구마구 뿜어낸다. 마치 어렸을 적 뻥이요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던 뻥튀기의 연기처럼 말이다. 품종별로 차이가 있어 배출시간이 다소 다 르지만 8분에서 10분 전후면 300g짜리 로스터기에서 까맣게 옷을 갈아입고 나온 커피 원두를 마주할 수 있다. 예쁘다. 향은 더 예쁘다. 사실, 나에게 있어 커피숍 사장이 된다는 건 다소 생뚱맞는 일이기도 했다. 평소 커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설사 커피숍을 가더라도 커피보다는 생과일 쥬스를 더 많이 마셨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날, 회사 여직원들이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가자며 역삼동 근처 후미진 골목길로 나를 안내했다. 그날따라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가 한창 인 여름 오후였는데 대략 500여미터를 걸어가야 했다. 얼마 가지도 않아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리는데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커피를 마시러 이렇게 먼데까 지 가나 싶었다. 회사앞에 크고작은 프렌차이즈 까페들이 즐비한데 고작 커피한잔 마시 러 이토록 힘들게 와야만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를 더 짜증나게 만든건 그 다음이였다. 족히 몇십분은 기다려야만 할 것 같은 긴줄이 까페입구로부터 쭈욱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돌아갈 채비를 하려는데 여직원들은 깔깔대며 그 줄에 서는 것이 아닌가. “ 헐, 이봐들 뭐해 가지않구 ”한 여직원이 이때 말한다 “ 여긴 항상 이래요 팀장님 ” 두번째 헐이였 다. 도대체 무슨 커피를 팔길래 이다지도 황망한(?) 짓을 해야만 한다는 것인가…솔직히말해 그때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우린 한 20여분이 흐른뒤에 나로서는 처음 먹어보는 더치아이스라는 커피를 받아들고 나왔다. “쳇 이까짓게 뭐라고” 시큰둥 한 반응을 하며 난 그 검디검은 커피를 쫙 들이켰다. “ 웩 캭캭…이게 뭐야” 마시는 순간 생전 처음 마셔보는 진하고 쓰디쓴 느낌의 커피가 식도를 따라 흘러가는데 순간 커피 를 내뱉고만 것이였다. 정말이지 이 커피를 마시려고 이 더운날 이 먼길을 따라 내려 온 나 자신을 원망하고 싶을 정도였다. 되려 여직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였다. 그런데 얼마후 내 입속에서 희안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상하게도 방금전 내 식도를 따라 내려 간 더치커피의 잔맛이 내 목젓을 전후로 깊게 베어 형언할 수 없는 향으로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신기했다. 다시한번 이번엔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홀짝홀짝 마셔봤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첫 모금땐 쓰고 진한 느낌 뿐이였는데 목넘김을 하면 할수록 단맛과 신맛이 연거푸 올라오면서 마지막엔 진한 여 운으로 나를 사로잡는 묘한 중독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 다음날, 나는 혼자서 그 까페를 찾아갔다. 그것도 점심시간이 끝날무렵에. 아무래도 손님이 덜 하지 않을까하는 기대에서였다. 까페에 들어서자마자 더치커피를 주문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더치커피가 다 떨어졌단다. “아니 어떻게 커피숍에서 커피가 떨 어질 수가 있는거지” 젊고 밝은 인상의 바리스타 사장님은 친절히 설명을 해 주었다. 더치커피는 찬물로 12시간동안 제한된 양만큼 추출을 하기 때문에 금방 재고가 떨어진 다는 설명이였다. “와 열두시간씩이나요?” 난 그제서야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커 피에 열광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보통 커피하면 뜨거운 물에 용해된 걸 생각하는 데 더치커피는 아예 처음부터 찬물로 그것도 한방울 두방울씩 떨어뜨려 반나절을 꼬박 추출해서 준비하다보니 그 양이 적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였다. 거기다가 더치커피 특 유의 진한맛과 향미에 반한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긴줄의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을 수 있 는 것이였다. 금새 더치커피가 동이나니 말이다. 그 해 여름, 난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더치커피를 마시러 그 까페를 향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사장님과 친해지게 되었고 이런저런 커피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한편, 까페 구석 한켠엔 또 역시 난생 처음보는 기계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커피를 직접 볶는 로스터기였다. 손님이 가장 몰리는 바쁜 점심시간대가 지나면 자주 그곳에서 커피를 볶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었다. 그 광경 역시 내겐 무척이나 낭만적 으로 보였다. 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을뿐더러 되려 잘 정돈되지 않은 듯한 전체적인 까페분위기에 나는 점점 홀릭되어 가고 있었다. 까페내 비치되어 있는 커피관련 서적들, 벽면에 붙어 있는 손님들의 애정어린 자필로 써내려간 엽서등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커피숍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새로운 감성적 공간이였다. 그곳 은 단순한 커피숍이 아닌 말그대로 까페라는 곳이였다. 무엇보다 가장 매력적이였던 건 그 사장님의 모습이 무척이나 자유롭고 프라이드가 느껴졌으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행복해하는 미소가 끊이지 않아서였다. 거기다, 그 젊은 사장님은 이곳 이외에도 매장 두 세개를 관리해주고 있었으며, 모두가 본인으로부터 커피를 배워나간 제자들의 매장을 돕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꽤 오랫 동안 그분의 까페를 드나들며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커피도 맛집과 같이 좋은 목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그 맛과 분위기를 찾으 러 온다는 것과 둘째는, 커피라는 직업의 세계가 생각했던 것보다 전문적이여서 많은 공부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였다. 이 두 요소는 나로 하여금 커피숍 사장에 대한 새 로운 관점과 로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때부터 난 커피숍이 아닌 까페의 사장이 되기로 결심했다. 아울러, 나는 이때를 기점으로 커피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기 시작했 으며, 언제간 나도 이 사장님처럼 자유롭고 자부심 가득한 까페사장이 되겠노라고 마음 속으로 그리고 또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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