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존중의 인사와 소통
어쩌면 우리는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회사라는 신(scene)에 함께 등장한 미숙한 배우들 일지 모른다. 그러니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진심 어린 인사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오래지 않은 일로 기억한다. 당시, 어느 국내 정치인의 공항에서의 행동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때를 놓칠세라 반대 세력은 수위를 높여 공격했고, 그 국회의원의 행동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가 했던 행동은 단순했다. 공항 출국장을 나오며 수행원인 듯 보이는 사람에게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쓱 밀어 넘긴 것. 하지만 논란이 된 것은 그 시선 처리였다. 바라보지도 않고 넘겼다 해서, 이 행위는 한동안 ‘노룩 패스(No-Look Pass)’라는 신조어로 유명해졌다.
‘노룩(No-Look)’ 은 원래 스포츠 용어다. 패스를 주고받는 협력의 과정에서 상대를 속이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실제 시선은 다른 곳에 두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보내는, 일종의 기만(欺瞞) 행위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노룩’은 다르다. 소통의 관점에서 ‘상호 존중이 결여된 행동’을 상징하는 것이다.
국내 한 소통 전문가가 칼럼에서 말했듯, ‘노룩은 상급자의 갑질에 기반하며, 상대를 사람이 아닌 기능성 도구로 간주함을 의미한다’ 고 한다. 노룩 패스, 노룩 착화(스스로 장화를 신고 벗지 않고 수행원이 도와준 사례) 같은 것들은 권위의 남용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상호 존중의 결여는 직급과 상황을 막론하고, 사내 소통에서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문제 이기도 하다.
‘… 소중한 것일수록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함을 압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영혼 있는 인사가 그런 것 같습니다.’
– 《영혼 있는 인사》, 홍석환의 3분 경영 中
거의 매일, HR과 관련된 유익한 메시지를 정리해 보내주시는 분이 있다. 그중 최근 소개된 ‘영혼 있는 인사’라는 제목의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본문에 등장한 몇 가지 사례 속에서 이상적인 일상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동료와 눈을 거의 마주치지 않고 기계적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답답한 현실도 떠올랐다.
공유하는 엘리베이터를 1층에서 함께 탄 사람이 우리 회사 직원인지 아닌지 애매할 때가 있다. 그래서 눈치를 보다가 상대가 누르는 층을 확인한 후에야 인사를 건네곤 했다.
그러다가 적절한 인사의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많아져서, 한동안 '애매하면 인사하기'를 실천해 보았다. 하지만, 이런 무조건적인 인사가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애매하면 인사 안 하기'가 더 편해졌다.
그런데, 그런 게 습관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다시 '눈 마주치면 먼저 (공손히) 인사하기'를 실천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썩 괜찮다. 물론, 여전히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는 동료들도 있지만.
기본적인 비즈니스 매너가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옛 문화의 산물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업력이 짧은 회사들이 해외 유명 기업의 조직문화를 주요 가치로 내세우며 '수평적 문화'를 상호 존중의 상징처럼 이야기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해외에서 일하며 알게 된 것은 '성숙한 조직문화에서 자유로운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그만큼의 기본 소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한국 문화가 전혀 없는 외국 기업에서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후, 비즈니스 매너부터 배웠다. 그리고 업무상 소통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 계기는 다른 직원들이 상대를 대하는 모습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들이 했던 상대를 존중하는 소통의 방식은 단순했다. 다름 아닌 '상대의 눈을 본다(eye contact)'는 것. 그건 어느 비즈니스 상황이든 예외 없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하는 상대나, 대화 중에 시선이 줄곧 다른 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과 소통하는 것은 불편하다.
문화 담당자라면, 직원들이 상호 존중에 기반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먼저, 소통과 관련된 기본 매너를 정리하는 것 이 시작이 될 것이다. 온보딩 과정에서 멘토나 사수가 존재한다면, 그들이 올바른 소통 매너를 멘티에게 전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상호 존중의 소통법’을 교육하는 것이 좋겠다.
회사가 주기적으로 관련 원칙과 사례를 소개하고, 눈에 잘 띄는 곳에 포스터나 배너를 활용해 메시지를 노출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담당자 스스로가 먼저 '눈을 맞춘 인사, 눈을 바라보는 소통'을 실천하는 것이다.
잘하는 인사란, 그런 것이 아닐까?
앞서 이야기했듯, 내가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원만한 관계의 원칙 은 한 선배의 조언에서 비롯되었다.
“누구를 만나든 공손히 인사하기.”
그가 후배 신입사원에게 심어주고 싶었던 것은 성실과 존중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한바탕 가뭄과 장마 같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 씨앗이 싹을 틔워 좋은 소통이라는 꽃을 피우고 있는지 어렴풋이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