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혹시 당신도 자본가요(資本敎)의 신자인가요?
매년 10월 말이 되면 제가 운영하고 있는 경제·경영·인문의 균형 찾기 프로그램 <에코라이후 기본과정(1년)>이 끝나게 됩니다. 1년이란 시간, 어찌 보면 짧을 수도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꽤나 긴 시간입니다. 분명한 건 이 시간을 한 가지 테마로 꾸준하게 공부하고 생각하며, 그 생각한 것을 조금씩 실행하는 시간으로 잘 활용할 수만 있다면, 그 끝에 가서는 작든 크든 간에 확실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1년 과정을 수료한 회원들에게 이 기간 동안 어떤 점이 변화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면, 같은 공부를 했음에도 조금씩 다른 답변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대개 2가지 정도는 공통적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첫 번째는 경제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하기사 1년 동안 어렵고 두꺼운 경제 서적을 무려 스무 권 넘게 읽었으니까요), 처음 기대했던 것만큼 돈을 벌지는 못했다는 겁니다. 흠.. 이것도 반전이라면 반전이겠죠? 경제공부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기대만큼 돈을 버는 것은 아니라는...
하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죠! 수입 측면에서는 그다지 벌진 못했지만, 지출 차원에서는 전보다 돈을 잘 관리하게 됨으로써 비용이 줄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저축 혹은 투자는 예전보다 더 많이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 회원은 워낙 돈 관리에 대해 무관심했었는데, 수입/지출 분석을 해보며 보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예전 같으면 잘 몰라 보험사에 청구하지 않았을 비용도 요청하여 받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또 회사에서 지원되는 보험비용까지 챙겨 받게 됨으로써, 무려 500만 원에 달하는 뜻하지 않던 돈을 벌 수 있었다고 합니다. 멋지죠?
다른 회원의 경우는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에는 홈쇼핑 중독 증세가 있어 물건을 사놓고는 거의 후회하는 일이 반복되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거의 완치(?)되어 정말 필요한 물건 외에는 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주 가끔 증세가 재발(?)할지라도,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 환불 조치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무분별한 지출은 거의 다 줄었다고 하네요. 이외에도 또 다른 회원은 돈을 쓸 때 한번 더 생각한 후 사용하는 습관을 들임으로써, 불필요한 지출이 줄어 결론적으로는 내실이 생겼다고 하니 어찌 보면 재테크를 잘해 돈을 조금 더 벌 수 있어도 좋겠지만, 지출관리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버는 혹은 그 이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하겠습니다.
두 번째 답변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불명확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요, 무슨 말인지 잘 와 닿지 않으시죠?
이건 조금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자주 언급하고 강조한 것이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저 돈이 최우선이고, 돈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체제가 바로 자본주의라고만 생각하며 지내고 있죠. 자본주의의 역사와 배경, 그리고 그 변화가 우리를 어떻게 변하게 만들었는지는 생각지 않고, 그저 돈, 돈, 돈 하며 사는 게 우리의 모습, 현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돈에 대한 두려움, 더 나아가 경외감까지 가진 채 살아가죠.
문제는 돈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현재뿐 아니라 미래 또한 항상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는 겁니다. 생각해볼까요? 한 가정의 가장이 괜찮은 직장을 다니고 있고, 나쁘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있다면 지금은 안정적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그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의 안정적인 수입이 사라지고 즉시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할 텐데, 그게 여의치 않다면 어떻게 가족을 건사해야 할까요? 그대로 추락하여 빈곤의 늪으로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질 겁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지게 되는 생활형 혹은 생계형 두려움의 거의 대부분은 돈에서 기인됩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리고 어렵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 생각하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서 한 발짝 벗어날 수 있으면 됩니다. 즉 돈을 최우선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근대를 지나 현대로 오면서 돈을 신으로 모시는 하나의 종교처럼 변모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죠. 즉 자본주의는 “자본교(資本敎)”라고 하는 종교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는데요, 현대의 우린 이미 자신도 모르게 “자본교”의 신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돈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교의 중심에서 벗어나 신도가 아닌, 제3자의 눈으로 자본교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돈이 내 삶을 지배하는 신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깨닫는 순간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보완하게 되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사라지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13화 '자본주의 시대에 잘 산다는 것'에서 말씀드렸던 최소한의 경제적 기준에 대한 부등식을 가지고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아래 공식 기억나시죠?
우리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며 가지게 되는 돈에 대한 두려움은 위 공식을 참고할 경우, 왼쪽 영역인 ‘못 산다’에 해당됩니다. 다른 말로 바꾼다면, 우리는 ‘못 살게’ 될까 봐 두려운 거죠. 하지만 이 두려움은 의식주와 같은 최소한의 경제적 기준만 갖추어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죠? 최소한의 경제적 기준을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속이 계속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공식의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상대적 비교를 통해 ‘잘 살고’, ‘못 살고’를 판단합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현재는 ‘잘 살고’ 있지만, 혹여라도 잘못되어 ‘(상대적으로) 못 살게’ 될까 봐 생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리 못 살게 될지라도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못 살게’되진 않기 때문이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타인과의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인 비교 그리고 돈의 액수라고 하는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기준('중산층이라면 이 정도 자산은 있어야 해'와 같은)에 의해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내 자산은 이 정도이며, 어느 정도 안정적 수입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잘못되어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바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라 할 수 있는 거죠. 자세히 보시면 이 두려움은 ‘돈’에 의해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 ‘잘 산다’, ‘못 산다’라고 하는 사회적 기준 또한 돈의 보유규모에 따라 나눠지기 때문이죠.
결론적으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첫째, 의식주와 같은 '최소한의 경제적 기준'만 넘어서면 더 이상 돈은 자신의 인생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돈은 한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사실 '최경자'의 수준을 생각하고, 그에 맞추어 살게 되면 그 이후부터 돈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음식으로 따지면 사이드 메뉴와 같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없다면 정말 살기 어려울까?” 아마도 당신이 집안에 들여놓은 대부분의 가구, 가전기구들(몇몇 정말 중요한 것을 제외하고는)에는 “No”라는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Yes”란 대답을 요구할 것입니다. 가족, 사랑, 따스함, 배려, 관심, 포옹, 손길, 동료, 친구, 미소, 행복, 나눔, 대화, 기쁨, 공감, 체온, 맥박, 격려, 경청, 눈길, 접촉, 어깨동무, 쓰담쓰담... 두려움이 이런 따스한 단어들을 만날 때는 스스로 작아지고 무기력해지는 특이한 현상을 나타냅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러한 현상이 돈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 그리고 이것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슬기로움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는 두 번째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15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