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너는 얼마나 괴물이 되어 있던 거야?
성이 잔뜩 난 근육들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건장한 남성들이 보인다. 그들은 인삼밭 위에서 2인 1조로 팀을 이뤄 서 있다. 두 명 중 한 명이 땅을 발로 찍어 누른다. 그러면 남은 한 명이 긴 쇠꼬챙이를 튀어나온 땅속으로 마구 쑤셔 넣는다. 한참을 쑤시다 보면 이윽고 검고 작은 솜뭉치 하나가 꼬챙이 끝에서 딸려 나온다.
“잡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감아버렸다. 그 순간, 양쪽 어깨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뒷짐을 지고 인부들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어느새 내 어깨를 부여잡고 계신 것이다.
“현재야, 눈 크게 뜨고 잘 봐둬라.”
아버지의 손에 이끌린 나는 어느새 인삼밭 위를 밟고 있었다. 발밑으로 조그마한 진동이 느껴졌다. 땅은 두더지들로 인해 느리지만 착실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버지가 인부에게 쇠꼬챙이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앞을 막으면 안 된다. 뒤를 막아야 해. 도망갈 구석을 내주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는 익숙하게 꼬챙이를 몇 번 휘두르더니 숨 쉬는 땅을 향해 내리꽂았다. 마구 헤집어진 땅속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끼익!”
아버지가 꼬챙이를 들어 올리자, 그 끝에는 어린 두더지 한 마리가 박혀 있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녀석은 마구 버둥거렸지만, 그럴수록 꼬챙이가 녀석의 몸을 파고들어 상처가 벌어질 뿐이었다. 녀석의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움찔거리는 두더지 새끼의 통통한 다리와 분홍색 코에서 눈을 돌렸다. 감히 쳐다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두더지의 저항을 보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지가 뭘 어쩌겠다고 버둥거려? 꼴이 참 웃기지 않나?”
“예 그렇습니다. 회장님. 하하하.”
아버지와 인부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두더지의 흔들거림이 점차 줄어들더니 이윽고 몸이 축 늘어졌다. 아버지는 양동이 입구로 두더지 사체를 빼냈다.
“자 현재야. 이제 네 차례다.”
꼬챙이는 이제 내 손에 쥐어졌다. 하지만 나는 쉽사리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뾰족한 작대기 끝에서는 미처 닦지 못한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비릿한 냄새는 내 코를 통해 뇌를 사정없이 찔렀다. 나는 뒤를 돌아 아버지를 바라봤다.
“못하겠어요. 못하겠다고요. 이 가여운 것들을..”
내 약해빠진 징징거림에도 아버지는 나를 꾸짖지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내 눈을 응시하실 뿐이었다.
“현재야. 놀라서 도망치는 건 벌레들의 몫이다. 하지만 이 강성욱의 아들, 강현재. 니는 감히 벌레들이 도망칠 생각도 하게 두면 안 된다.”
어느새 몰려온 인부들은 아버지의 손짓을 따라 내 주위를 둥글게 가로막고 서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포함한 건장한 성인 남성들 사이에서 꼬챙이 하나를 들고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시선은 그들이 아닌, 땅 밑으로 향했다. 작고 여린, 내게 해를 끼칠 수도 없는 두더지들에게. 그렇게 나는 그날 온전한 두더지 한 마리를 잡아냈다.
아버지의 정신과 가르침을 이어받은 나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 대신 ‘강인삼’회사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회사를 한국 최고 인삼 판매처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날은 통보식의 대대적인 정리해고를 한 날이었다.
“살인을 멈춰라! 평생을 바친 우리의 인생을 보상하라!"
평화로운 아침 햇살 사이로 날 선 목소리들이 들어왔다. 회사 앞에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나는 김 비서가 타온 냉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이놈의 자리는 왜 하필 창문 옆인 거야?"
가을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내려보니 바닥에서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품에 영정사진을 안고 우는 학생. 퇴직금이라도 달라고 비는 남성. 악에 받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무리. 분노에 찬 사람들의 목소리가 유리 벽면을 타고 44층에 있는 사무실 안까지 들어왔다.
"제까짓 것들이 뭘 할 수 있다고. 안 그래 김 비서?"
김 비서는 단정한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상무 한 명이 벌컥 회장실 문을 열었다.
”이게 무슨 무례지?“
”죄송합니다. 회장님. 다름이 아니라 이걸 보셔야 할 것 같아서..“
상무가 가져온 보고서에는 이번 달 인삼 판매 실적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강인삼회사의 인삼 판매 실적을 훨씬 뛰어넘는 두더지인삼이라는 회사의 매출 보고서가 적혀있었다.
”이게 뭐지? 당장 설명하도록.“
”그게..“
상무의 말에 따르면 두더지인삼은 몇 달 전 생겨난 신흥 회사라고 한다. 거기선 인삼과 함께 인삼밭 관광 사업도 펼치고 있는데, 관광 사업에서는 수익이 많이 나지 않지만, 관광 이후 고객들의 인삼 구매율이 최고치를 찍어 우리 회사를 넘어서게 됐다고 한다.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도 모른 거야? 어서 뭐라도 해봐!“
직원들에게 두더지인삼 회사에 관한 악의적인 기사를 내라 명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매스컴에 상대 회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두고, 그에 반하는 좋은 내용을 우리 회사로 밀어 넣어준다면 금방 매출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회의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나는 걱정과 죄책감을 뒤로하고 집 대문 앞에 섰다. 무심코 내려본 발밑에는 까만 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줄지어 이동하는 개미 떼였다. 나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은 자세로 그들을 지켜보다 집게손가락을 들어 개미 한 마리를 지그시 눌렀다. 손가락을 떼자, 개미의 사체가 사방팔방으로 터진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나머지 개미들은 동료의 시체를 뒤로하고 길을 이어나갔다.
”하하.. 거봐.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아.“
나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집에 들어섰다. 그러자 유치원에 다녀온 딸이 내게 달려왔다. 딸의 뒤에서 아내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딸을 안아 들며 딸의 우유 냄새나는 볼에 뽀뽀를 퍼부었다.
”우리 공주님. 잘 있었어요?“
”아빠. 나 여기 갈래!“
딸이 건넨 광고지에는 대문짝만하게 두더지인삼이라고 적혀있었다. 그 아래에는 귀여운 두더지 캐릭터가 손을 흔드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미안해요. 여보. 애가 너무 가고 싶다고 해서. 당신 경쟁 회사긴 하지만, 그래도 애가 저렇게 가고 싶어 하는데 한 번쯤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아내가 내 굳은 얼굴을 의식했는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처음에는 두더지인삼회사의 이름만 봐도 짜증이 치밀어올랐지만, 딸의 기대하는 표정과 한 번쯤 잠복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과 함께 두더지 인삼 본사에 도착하자 진한 인삼 향기가 품어져 나왔다.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들이마셨다. 진한 정도로 봤을 때 우리 회사 인삼보다 품질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럼 대체 어떤 부분이 매출을 오르게 만든 것인지 궁리를 하고 있는데, 딸이 체험 인삼밭을 향해 쪼르르 달려가 나를 불렀다.
”아빠! 두더지! 두더지!“
딸을 따라 가보니, 광활한 인삼밭 중 일부를 관광객을 위해 열어둔 곳이 보였다. 거기엔 수많은 아이가 웃으며 땅에 손을 넣고 인삼을 뽑고 있었고, 그걸 가만히 들고 기다리는 아이도 보였다. 딸은 그 아이들을 따라 인삼을 하나 뽑아 들었다. 딸이 무릎을 꿇고 가만히 기다리자, 딸의 무릎 앞의 땅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분홍색 코가 흙을 뚫고 나와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두더지였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그 두더지는 딸의 손에 올라가 인삼을 먹으며 뒹굴거렸다. 딸은 두더지가 귀여운지 연신 쓰다듬을 멈추지 못했다. 이런 방법도 있었구나. 그때, 아내가 나를 툭 건드렸다.
”옆에서 커피를 파는 것 같은데, 당신도 하나 마실래요?“
아내를 따라가 보니, 갖가지 인삼으로 만든 차와 커피, 디저트를 파는 카페가 체험용 인삼밭 옆에 자리해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커다랗게 난 창밖으로 아이들을 볼 수 있었고, 시킨 차를 마시며 식탁 위에 놓인 카탈로그를 보니 인삼 제품들을 바로 구매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렇게 온종일 멍을 때리다 집에 돌아갔다.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이었다. 치매가 걸려 요양 병원에 계신 아버지는 이따금 정신이 돌아오시곤 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인삼밭! 인삼밭으로 가야 돼!“
나는 외출권을 끊고 아버지를 차에 태웠다.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할 때와 비교했을 때 수십 배로 넓어진 인삼밭은 광활하면서도 조용했다. 차에서 내린 아버지는 인삼밭 중앙으로 달려나갔다. 아버지를 따라 달려가 보니, 흙 한가운데가 조금씩 들썩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서 챙겨왔는지, 품에서 꼬챙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땅에 꼬챙이가 내리꽂히는 순간, 나는 아버지의 손목을 낚아챘다.
”뭐하는 거야? 도망갔잖아!“
잔뜩 주름진 아버지의 얼굴은 눈썹이 하얗게 바랬어도 여전히 화가 나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처럼 두렵진 않았다. 나는 입술을 달싹거리다 아버지의 팔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버지. 그냥 두세요. 둬도 돼요. 둬도 되는 것도 있어요.“
아버지는 전혀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