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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우산

단편, 소설

by 이재 다시 원


병아리같이 쨍한 우산을 쓴 그의 얼굴은 우산의 노란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던 걸까.


해가 쨍쨍한 한낮에 서로의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네모난 사무실 안에서, 나는 노란 우산을 쓴 채로 자리에 앉아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의 이름은 최상락. 몇 달 전 내가 일하는 콜센터에 들어온 신입인 그는, 날씨와 장소에 상관없이 항상 우산을 쓰고 다녔다. 사무실 안에서 어깨에 우산을 걸쳐둔 채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그를 오직 나만이 바라보고 있다.

처음 그가 콜센터에 들어왔을 당시, 그의 우산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다. 사무실 분위기를 헤친다며 우산을 내려놓을 것을 강요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꼭 써야 합니다. 벗을 수 없습니다.”


상락의 강경한 태도와 성실한 그의 모습에 그를 향한 지적과 관심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의 우산이 익숙해졌을 무렵, 건물 옥상에서 나는 그와 마주하게 되었다. 옥상 문을 열자 상락이 난간 앞에 놓인 화단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의 옆에 슬그머니 다가가 주머니에 있는 던힐 라이트를 꺼내 물었다. 나는 라이터로 담배 끝에 불을 붙이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상락씨. 근데 우산을 왜 쓰고 다니는지 말해줄 수 있어?”


나의 질문에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거미 때문에 그래요.”


“거미가 무슨 상관이야?”


상락이 들고 있던 우산을 살짝 기울이더니 내게 우산 안쪽을 보여주었다.


“여기, 우산을 받치고 있는 작대기들이 꼭 거미 다리 같지 않나요?”


노란 우산의 안쪽 중심부터 시작해 우산의 끝을 향해 뻗어 나간 살들 그리고 살에서 이어져 우산을 지탱하는 스프레더들이 거미의 보각처럼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오, 정말 그래 보이네.”


“그쵸? 이게 거미라는 걸 알고 나니까, 우산을 벗을 수가 없었어요.”


“왜? 그냥 내려놓으면 되잖아.”


“그게 잘 안되네요. 제 머리를 콱 물고 놓아주질 않아서.”


상락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고생한 탓인지 그의 피부는 푸석푸석했지만, 상락의 미소만은 20대 초반 특유의 풋풋함이 느껴졌다.


옥상에서 대화를 나누고 난 뒤로 나는 부쩍 상락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일할 때도, 일하지 않을 때도 항상 잿빛의 눈동자를 띄고 있었다. 걱정과 불안이 쌓이고 굳혀져 퇴적되어버린 그런 잿빛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구내식당에서 처음으로 상락의 맑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마치 재가 전부 날아가고 걷혀 결국에 드러난 푸른 하늘처럼, 그날 상락의 눈은 청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구내식당 한가운데서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집중해서 들어보니 건물을 사느니 마느니 하는 말이 들려왔다. 상락에게 열변을 토하는 이는 옆 부서 정대리였는데, 평소에 허풍이 심하고 거드름을 자주 피워 꺼리던 인물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 옥상에서 또다시 상락을 마주한 나는 아까의 일에 관해 물었다.


“아까 정대리랑 무슨 얘기 했어?”


“아, 대리님이 좋은 건물을 하나 추천해주셔서요. 상가 건물인데, 한 번 봐주실래요?”


상락이 건넨 휴대폰 속 지도를 보니, 개발 예정이라 적힌 곳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상가 건물 하나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했다.


“글쎄, 별로 좋아 보이진 않는데.. 애초에 모아둔 돈은 있어?”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닌, 급하게 돈을 벌러 온 사람들이었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조금 있어요. 아직 결혼식도 안 해서..”


“결혼식? 결혼할 여자라도 있는 거야?”


“네, 애도 있어요.”


상락이 슬며시 휴대폰 배경화면을 보여줬다. 그의 배경화면은 상락을 닮은 여자아이 하나가 활짝 웃으며 꽃다발을 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를 낳은 그의 사정이 궁금했기에 물어보자 상락은 흔쾌히 대답해주었다. 고등학교 때 사고를 쳐서 낳게 되었고, 지금은 집도 없이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고 상락은 쑥스러운 듯 이야기했다.


“아이 꿈이 피아니스트예요.”


상락은 그렇게 말하며 아이가 피아노를 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귀엽네. 상락씨는 어릴 때 꿈이 뭐였어?”


“곤충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꿈을 얘기하는 상락의 눈이 잠시 반짝였다.


“곤충학자? 어쩐지 거미 어쩌고 하더니. 파브르처럼 되고 싶던 거야?”


“네. 결코 될 수 없겠지만요.”


그렇게 말하는 상락의 눈은 다시 잿빛의 눈동자로 돌아와 있었다.


“상락씨 아직 20대잖아. 안 늦었어.”


“그게, 둘째가 생겨서요. 첫째 꿈도 이뤄주려면 드는 돈도 많고, 아내가 둘째는 꼭 영어유치원에 보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둘째? 이야, 부부 금술이 아주 좋네.”


나는 애써 말을 돌리며 상락의 어깨를 두드렸다. 살짝 미소 짓는 상락이었지만, 그의 어깨 위 우산이 그날따라 무거워 보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우산을 내리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노란 우산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 옆자리 동료에게 물었다.


“상락씨 못 봤어?”


“몰라? 정대리도 안 왔다는데?”


나는 불안한 예감이 들어 상락의 자리를 응시했다. 다닥다닥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비워진 빈자리는 빠진 이빨처럼 일하는 내내 내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며칠이 지나자 정대리가 말도 없이 퇴사했다는 소식과 함께, 정대리에게 상가 건물을 추천받았던 사람들이 분양 사기를 당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상락도 사기를 당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퇴근 시간에 사무실 밖으로 나서는데 퇴근길의 우중충한 회색 인간들 사이로 익숙한 노란 우산이 보였다.


“저... 술 좀 사주시면 안 돼요?”


상락이었다. 그의 눈가는 꺼멓게 번져있었고, 더욱 짙어진 잿빛의 눈동자에 나는 그에게 술을 사주기로 했다. 우리는 근처 이자카야로 이동했다. 실내의 검붉은 조명이 대문 밖까지 새어 나오는 곳이었다. 상락이 우산을 쓴 채로 가게 안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상락을 배려해 최대한 구석 자리로 그를 인도했다. 간단한 술안주와 참이슬 한 병을 시키자, 아직 술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상락이 입을 열었다.


“저, 다 잃었어요..”


상락은 우산을 앞으로 기울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는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고르고 고르다 결국 형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괜찮을 거야. 아직 어리니까 일하면서 다시 모으면 돼.”


“대출까지 받아서 넣었어요.”


“뭐?”


“이거 아니면 책임질 방법이 안 보였단 말이에요..”


“그 어쩌다.. 아니다. 일단 힘내라. 오늘은 마시고.”


상락은 술을 마시면서도 계속 그만두고 싶다고 되뇌었다. 그게 콜센터인지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에게 집사람과 자식들을 생각하며 버티라고 말했다. 그 말에 상락은 우산을 더욱 앞쪽으로 기울였다. 술이 점점 들어가고 술에 취한 나는 상락에게 일이 어찌 되든 출근부터 하자고 약속을 받아냈다. 그렇게 안심한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날 상락이 실종됐다.


경찰이 콜센터 사무실로 찾아왔고, 몇 시간 뒤 상락의 아내와 아이도 찾아왔다. 그들은 모두 이렇다 할 소득을 얻지 못한 채로 돌아갔다. 상락의 실종은 직원들 사이에서 큰 이슈였지만, 세상일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 사이에서 잊혔다. 그렇게 상락의 빈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고, 또다시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전화벨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묵묵히 일하던 나는 고개를 들어 사무실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서로 가깝게 붙어있는 모습이, 그럼에도 서로에게 시선 한 자락조차 내주지 않는 모습이, 수없이 이어지고 엉켜있는 전화선이 하나의 거대한 군집처럼 느껴졌다. 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옥상으로 달려간 나는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데, 옥상 난간 쪽에 익숙한 노란 물체가 보였다. 나는 서둘러 난간으로 달려가 난간 아래를 바라보았다. 하늘도, 땅도, 옥상 근처도 전부 돌아보았다.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노란 우산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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