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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인

단편

by 만복 Jan 0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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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내려가고 싶었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내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 곳으로. 근데, 그곳에 내가 있더라.     



  “깊이 내려가고 싶어.”


  며칠간 조용하던 재희가 꺼낸 말이었다. 새벽에, 그것도 막 잠들기 직전에 들려온 그녀의 말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죽을 등 말 등 살던 재희의 목소리를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꺼지기 직전인 휴대전화에 급하게 충전기를 꽂은 것처럼, 누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좀 괜찮아진 거야?”


  재희는 내 말을 듣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작은 자취방에 달린 보다 작은 창문 너머를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다. 초점 없는 그녀의 눈을 보고 있자니, 재희와 몇 달 전 함께 본 B급 공포영화가 떠올랐다. 인간의 몸에 귀신이 빙의해 스스로 자살하게 만드는 영화. 엉성한 그래픽이었지만 영화를 본 재희는 펄쩍 뛰며 놀랐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웃음 지었었다. 그래, 지금 재희의 눈빛이 딱 그렇다. 마치 귀신에 빙의된 것처럼.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그 등장인물들의 눈처럼. 나는 양팔을 쓸어내렸다. 팔에 난 솜털이 한껏 고개를 추켜세우고 있었다. 이건 현실이라고 되뇌어도, 솜털은 고개를 더욱 빳빳이 세울 뿐이었다. 숨이 멋대로 헐떡거렸다. 그때, 재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심해어가 돼서 저 깊은 바다로 내려가고 싶어.”


  그녀는 심해어가 되고 싶다고 했다. 촉각, 후각, 미각, 시각, 청각.. 모든 감각을 지우고 싶다고 했다. 그저 심해에서 둥둥 떠다니고 싶다고,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고, 그 무엇도 받고 싶지 않다고. 현실을 잊고, 중요하다 여기던 것들을 더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살면서 지키고자 했던 것들을 두고, 책임도 목표도 내려놓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사라진 상태를, 고통도 행복도 없는 상태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누구나 그럴 때가 있는 거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런 현실적인 말을 꺼내기엔 그녀가 너무나도 지쳐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재희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한편으로는 오늘 잠은 다 잤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딱 한 시간이다. 울다 지친 재희를 눕히고 딱 한 시간만 자려고 했다. 하지만 피로는 쉽게 풀리지 않았고, 나는 늦잠을 자고 말았다.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하여간 요즘 애들이란..”


  멧돼지처럼 생긴 카페 사장이 말했다. 뻐드렁니와 잔뜩 난 수염에 어울리는 걸걸한 목소리로 사장은 내게 삿대질을 했다. 그 광경을, 주변 아르바이트생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걸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사장은 한참 동안 내게 욕을 하더니, 요즘 세대에 대한 연설을 시작했다. 몇십 분이 지나고 그는 콧방귀를 뀌며 ‘잘 새겨들어!’라고 외친 뒤 카페를 나섰다. 나는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길 기다리다 앞치마로 세수하듯 얼굴을 문질렀다. 사장이 말하면서 튀긴 침이 끈적하게 떨어져 나왔다. 거지 같네. 그때, 다른 아르바이트생 하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언니,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아요. 일 보세요.”


  나는 속마음과 다르게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쿨하게 뒤를 돌아 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바닥이 미끄러웠다. 아, 방금 걸레질을 했었나. 그 생각과 함께 빠그작거리는 소리가 나며 나는 꼴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운수 나쁜 하루의 시작이었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일을 끝마쳤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아직 뜨끈하게 구워진 얼굴이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지는 못했다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나는 주먹으로 머리를 마구 내리쳤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통장 잔액을 확인했다. 월급날을 맞아 들어온 200도 안 되는 월급이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 월세 등으로 빠지며 십만 원 언저리로 남아있었다. 뼈 빠지게 일한 돈이 지하철 개찰구를 찍고 지나가듯 통장을 지나간 모습에 나는 초라한 심정을 느꼈다. 그렇게 자취방으로 돌아가는데, 근처 편의점이 눈에 띄었다. 나는 거기서 2+2를 하는 맥주 4캔과 핫바 세 개를 각기 다른 맛으로 구매해서 나왔다. 가끔은 약간 취해야 하는 날도 있는 법이니까. 나는 내일이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이라는 것에 감사하며 집으로 향했다.      


  재희와 함께 살아서 다행이다. 오늘 같은 날에 혼자 있지 않아도 된다는 건, 그 사실 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봉지를 흔들거렸다.


  “닭꼬치 사 왔어?”


  침대에 앉아있던 재희가 코를 킁킁거리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안대로 가려져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 안대 위에 또 수면 안경까지 쓴 그녀의 모습은 마치 잠자리나 파리 같은 곤충처럼 보였다. 나는 저건 또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왜 그러고 있어?”


  “아, 나 퇴화하려고.”


  재희의 말은 이랬다. 그러니까, 그녀는 지금 최선을 다해 퇴화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감각을 하나씩 차단하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심해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굳건히 믿는 듯했다. 안대를 낀 채로 내가 건넨 닭꼬치를 향해 팔을 휘적거리는 재희를 보며, 나는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심히 고민했다. 그런 걱정은 내 예상과 다르게 현실로서 다가왔다. 일주일 뒤, 안대를 푼 그녀가 정말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한 것이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실명이 확실하네요. 정말 아무 일도 없던 게 맞나요?”


  재희의 눈에 손전등을 비추던 의사가 말했다. 그는 그녀의 시력이 돌아오기는 힘들 것 같다며 다른 말을 덧붙였다.


  “유감이지만, 지금 눈만 문제인 건 아닙니다. 몸 이곳저곳이 문제예요.”


  의사는 이런 동네 병원이 아닌 조금 더 큰 병원에 가보라며 진단서를 끊어주었다. 나는 한 손에는 진단서를 들고, 반대 손으로는 재희를 부축하며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쩌면 스트레스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 어쩌면 동네 병원이라 진단이 틀린 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저런 얘기를 꺼내며 재희를 걱정했다.


  “아무튼, 의사 말대로 큰 병원에 가보자.”


  내 말에 재희가 고개를 저었다.


  “되돌아갈 수는 없어. 너도 느끼고 있잖아.”


  방긋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동공은 모든 신경이 죽었는지 연하고 흐릿한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제 시작이야.”


  그렇게 말하는 재희의 표정은 은근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날부터 재희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망가져 갔다. 그녀의 팔을 들어보면 뼈가 없는 듯이 흐물거렸고, 피부는 모공 하나 없이 매끈해지는 걸 넘어서, 이상한 점액까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치아는 흔들거리며 하나둘 빠지더니 전부 빠져, 이제는 잇몸만 남은 상태였다. 흰자는 점점 사라지고 회색 동공만 남아, 흡사 외계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재희를 데리고 여러 병원을 옮겨 다녔다. 하지만 하나같이 원인불명의 병이라는 말만 늘어놓았다. 심지어 마지막 병원에서는 특이한 사례라며 국과수에 의뢰하자고 하길래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오기도 했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그녀를 정상으로 되돌릴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재희는 모든 감각을 잃었어도 침대의 위치는 기억하는지 침대로 기어가서 눕곤 했다. 그러곤 이제 내가 느껴지지도 않는 것처럼 침대 위에서 꿈쩍도 않고 누워있는 것이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그녀가 숨을 쉬는지 간헐적으로 확인해야 했다.      


  대학부터 이어져 온 인연이었다. 모두가 우리를 배척하던 때에, 둘만이 서로의 친구가 되어줬다. 그렇게 월세를 아끼기 위해 시작한 동거가 이제는 일상이 된 사이였다. 하지만 재희의 속에 이리 깊은 어둠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가족 얘기는 통하지 않던 그녀였지만, 그녀의 몸 상태를 알리기 위해 최근에 재희의 가족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그녀가 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재희가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뿐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 관계들에 대해 떠올렸다. 그리고 재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까와 같이 누운 자세로,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햇빛을 안 봐서 그런지 하얗고 희미해진 피부는 날 선 핏줄이 그대로 뚫려 보였고, 앙상해진 팔은 살가죽만 겨우 부어있는 듯했다.


  “재희야.”


  답은 없었다.


  “재희야...”


  여전히, 답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웅크리고 앉아, 내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제는 입술 주름마저 매끈해진 재희의 입에서는 여전히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그저 그녀의 말랑한 몸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렇게 재희와 나는 오랜만에 한 침대에서 함께 잠에 들었다.      

분명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눈을 뜰 수 없었다. 아까 울다가 잠에 들어서 그런지 눈이 부은 모양이었다. 그때, 내 옆에서 다시 한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느껴져. 지금이라는 게.”


  오랜만에 들어보는 재희의 목소리였다. 한때 지겹게도 들어온 그녀의 목소리가 이제는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본 지 오래됐다는 이야기다.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 몸을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노력 끝에, 오른쪽 집게손가락이 꿈틀거렸다. 그때, 그 손가락 위로 물컹한 무언가가 포개어졌다. 아마 그건, 이제는 제 기능을 하지 않는 재희의 손이 아니었을까.


  “네 책임이 아니야.”


  그 말을 듣자, 잠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날이 재희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로 재희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일어나자마자 신고한 경찰에서는 그녀의 마지막 행방이 정서진이라고 말했다. 나는 방파제 위에 놓여 있던 그녀의 신발만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경찰은 시체를 찾지 못했지만, 자살이 유력하다며 사건을 종결시켰다. 그렇게 가족도, 친구도, 재희 본인도 없는 그녀의 장례식에서 나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눈물은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그녀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기 때문일까. 나는 재희가 기어코 심해 밑으로 내려가 버린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도 그녀를 바라보지 않는 곳으로 말이다.  

    

  재희가 없어지고 난 한동안 폐인처럼 살았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나를 본가로 데려가 여러 방면으로 정신을 차리게 도와주셨고, 나는 재희를 필사적으로 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나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서 재희가 나왔다. 나는 그날 새벽 첫차를 타고 정서진으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재희가 좋아하던 사과 맛 맥주를 사고, 내가 자주 먹는 흑맥주를 사 들고 말이다. 나는 방파제 앞 벤치에 앉아 흑맥주를 따서 마셨다. 그리고 사과 맥주를 따서 방파제 아래로 흘려보냈다. 그때, 수면 위로 작은 살구색의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것은 수면을 지나 방파제 위로 몸을 내던졌다. 물고기인지 살덩어리인지 알아볼 수 없는 이상한 생명체였다. 그건,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입처럼 보이는 무언갈 뻐끔거렸고, 나는 나도 모르게 방파제 위로 조심스레 올라갔다. 그것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내가 있더라. 모든 일의 시작은 나였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나 봐.”


  그 말을 끝으로 펑. 물고기의 몸이 터져버렸다. 너무 약해져 버린 그 말랑한 조각은 더는 물 밖의 압력을 견디지 못했나 보다. 나는 방파제 사이로 흘러내리는 살덩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유일하게 흘러내리지 않은 묵직한 것을 들어 올렸다. 뇌처럼 보이는 주름진 그것을 든 나는 혼자 그것에게 말을 걸었다.


  “이것까지 없애지는 못했구나.”


  재희는 자신을 상처 입힐 수 있는 모든 것에게서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떨쳐내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나는 그게 재희의 불완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심해어를 심해어로 있을 수 있게 하는 건 퇴화한 감각도, 말랑한 몸도 아니다.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생각 또한 흘러가는 대로 둬야 했던 것이다.


나는 어쩌면 재희가 바라던 삶의 답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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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핀터레스트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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