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비가 내리듯 사람들이 떨어지고 있다. 머리부터 떨어지든 등부터 떨어지든 간에 그들의 몸은 지면에 닿은 부분부터 으스러졌다. 걷고, 뛰고, 웃고, 떠들 수 있게 해주는 혈류가 사방으로 튀긴다. 살점이, 뼈가, 장기가 모두 흩어진다. 자신을 자신으로 있게 하는 모든 부위가, 생명을 살아 숨 쉬게 해주는 모든 것들이 흩어진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표정은 티 없이 맑다. 불행이나 행복, 그중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눈을 떼려고 노력했다. 불쾌하다. 멋대로 도망친 사람들의 저 자유로운 표정이 너무나 불쾌하다.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는 나까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려 자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거리 곳곳에서 자살이 일어나는 이곳은 선택의 도시다. 죽음을 희망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고 그들의 의지는 쉽게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정부는 대대적으로 자살이 합법인 되는 도시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 여러 인권 문제가 나왔다. 하지만 지구의 자원은 점차 부족해졌고, 자신이 누릴 것도 없어진 사람들은 더는 삶의 의지를 잃은 사람들마저 챙길 여력이 없어졌다. 그렇게 생겨난 선택의 도시에서는 여러 자살 가게들이 생겨났다. 자살 가게에서는 자살에 도움을 주는 용품이나 기구 이용권 등을 팔며 죽음에 한 발짝 가까워지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나는, 자살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나는 가게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검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머리를 정갈하게 올림머리로 묶고 나서 검은 모자와 검은 가면까지 썼다. 온통 검은 이 복장은 자살 희망자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기 위한 복장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계산대에 서 있는데, 입구에 달린 종이 딸랑거렸다. 지저분하게 수염이 난 한 남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녹슨 면도칼 하나요.”
남성은 퍼렇게 녹이 슨 면도칼을 사들고는 가게를 나섰다. 저 면도칼이 자신이 맡은 임무에 성공한다면, 다시는 남성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어서 세 명의 손님이 가게를 방문했고, 각자 사무라이용 장검, 미니 단두대, 1인용 소각장 이용권을 사들고는 가게를 나섰다. 일을 마치고 나는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가게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나는 근처에 있는 자취방으로 향했다.
자취방에 들어가는 길에 근처 마트에서 할인하는 딸기 한 팩을 샀다. 애인인 현아가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나는 딸기가 든 검은 봉투를 손에 쥐고 자취방 현관을 조심스레 열었다.
“자기야, 나 왔어.”
한 칸짜리 자취방 중앙에 현아는 이불을 깔고 누워있었다. 등을 돌린 채로 누운 그녀는 내가 들어왔음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신발을 벗고 달려가 현아의 코 아래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손가락 위로 옅고 느린, 조금 뜨거운 숨이 새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제야 현아는 내게 말을 걸었다.
“나 안 죽었어.”
다른 지역에서 아르바이트하다 만난 인연이었다. 나와 현아가 연인이 된 후로 우리는 동거를 시작했고, 돈을 모으기 위해 선택의 도시로 왔다. 선택의 도시는 집값은 싸고 인건비는 비싼 곳이었다. 하지만 온종일 자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울적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악몽을 꾸지 않는 날이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집에 오면 나보다 극심한 우울감을 앓고 있는 애인을 마주해야 했다. 나는 애써 밝은 척을 하며 부엌에서 딸기를 씻었다.
“자기야, 딸기 먹어.”
그 말에 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나 오래 누워있었는지,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먼지가 날릴 정도였다. 현아는 슬그머니 식탁으로 기어와 딸기가 담긴 접시를 냉큼 가져갔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누운 그녀는 엎드린 상태로 딸기를 집어먹었다. 오물거리는 그 입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건 여전히 좋아하는구나. 나는 괜스레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째 되는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가게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
익숙한 얼굴이다. 한 달 사이에 더욱 야윈 현아가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현아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더니, 올가미가 모인 곳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올가미 하나 꺼내주세요.”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저기요?”
오랜만에 보는 현아의 짜증 섞인 표정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저기요. 올.가.미. 하나. 꺼내주세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몸 군데군데 난 털이 바짝 고개를 세우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잠시만요, 재고 확인 좀 해보겠습니다.”
나는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문이 닫히자, 나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렸다. 손이 덜덜 떨리고 목울대가 요동쳤다. 어째서 그녀가 이곳에 방문한 걸까. 한참 동안 여러 생각을 하던 나는 창고에 있던 낡은 올가미 하나를 들었다.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 올가미의 연결 부위를 조심스레 긁어냈다.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끊어지도록.
“여깄습니다.”
현아는 나를 한 번 째려보고는 내 손에서 올가미를 낚아챘다. 그녀가 가게를 나간 뒤로 나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현아가 코를 골며 자는 모습이 보였다. 슬쩍 들춰본 얼굴 쪽 이불 사이로 그녀의 목에 벌건 경계선 하나가 남겨진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며칠 뒤, 현아는 끊어진 올가미를 손에 들고 가게로 돌아왔다. 그녀가 내게 올가미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서 구매했는데, 이거 보세요.”
“아, 죄송합니다. 동일 가격 내에서 무료 교환 또는 환불 해드리겠습니다.”
현아는 청산가리를 달라고 했고, 나는 푸른 식용색소를 탄 수면 유도제를 건네주었다. 그녀가 가게를 나서고 생각이 많아졌다. 그녀의 성격상 자살하려는 걸 나에게 들키면 숨거나 도망갈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죽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뚜렷한 대책이 생길 때까지 그녀를 이곳에 붙잡아 두기로 했다. 집 근처에 자살 가게는 이곳뿐이니, 집 밖을 멀리 나가기 힘들어하는 현아는 여기로만 올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현아에게 불량 자살 용품만을 팔기 시작했다. 집에 가서는 그녀에게 우울증을 치료받자고 설득했다. 현아가 가게에 방문하는 횟수가 늘수록 그녀의 몸에는 실패한 상처들이 여러 군데 생겨났고, 그에 따른 내 설득도 더욱 거세졌다. 현아가 면도칼 대신 진열용 플라스틱 면도칼 모형을 가져간 날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방바닥이 온통 피로 물들어있었다. 방 중앙에는 현아가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메마른 눈물 자국이 남아있었고, 손목엔 처참한 상처가 보였다. 그 무딘 플라스틱 날로 얼마나 손목을 헤집었을까. 매끄럽지 못하게 난 상처는 그었다기보단 잡아 뜯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나는 현아에게 달려가 손목을 지혈한 뒤 그녀를 다그쳤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던 그녀는 홀로 중얼거렸다.
“죽지도 못하고 지랄..”
그녀의 눈동자가 검게 타들어 갔다. 일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여린 그녀의 뺨과 나의 손바닥이 마주하는 소리가 방 전체에 울려 퍼졌다. 놀란 눈의 현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왜 나를 두고 가려고 해..”
울부짖는 듯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현아는 그런 나를 꼬옥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다독였다. 그녀의 품에서 나는 울다 지쳐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전날의 일이 마음에 걸리면서도, 내게 미안하다고 한 현아의 모습에서 나는 작은 희망을 느꼈다. 그러나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현아가 다시 자살 가게를 방문한 것이다. 결연한 표정의 그녀는 손에 반품할 물건도 쥐지 않은 채로 내게 성큼 걸어왔다.
“줄 없는 번지점프 이용권 주세요.”
줄 없는 번지점프란다. 이젠 그녀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줄 없는 번지점프. 그 시체가 장례를 치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처참해서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자살 방법이었다. 죽어도, 가죽은 남기고 싶으니까. 그 최후의 수단을, 현아가, 구매하려고 한다. 나는 속으로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몸은 익숙하게 이용권을 끊었다. 표를 건네기 전, 나는 나도 모르게 직원 규정을 어기고 현아에게 말을 걸었다.
“왜 죽으려고 하세요?”
의아하게 나를 바라보던 현아는 이내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피해 주기 존나 싫어서요.”
“누구한테 피해를 주시는데요?”
“제가 사랑하는 모든 거요.”
그 말을 끝으로 현아는 내 손에서 표를 받아갔다.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말릴 수 있을까? 말려도 되는 걸까? 그럴 권리가 나에게 있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하면서도 내 발은 일순간 달리기 시작했다. 계단 위를 달려 옥상 문을 열자, 매표소 앞에 선 현아가 보였다.
“자기야 안돼!”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가면을 벗어던졌다. 내 모습을 본 현아는 크게 놀라더니 이내 표정 하나하나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너였어?”
나는 현아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끝까지.”
나는 현아에게 두 걸음 다가갔다.
“오지 마.”
나는 현아에게 세 걸음 다가갔다.
“오지 말라고!”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현아가 매표소 기계에 표를 넣고 기어코 번지점프대 문을 열었다. 난간에 달린 초라한 철 문짝에 의지한 채로 현아는 옥상 끝에 서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제발, 제발 현아야.”
“내가 너 때문에 책임감을 느껴야 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제발..”
“그냥, 그냥 날 놓아주면 안 돼?”
나는 말을 잇지 못했고, 현아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날붙이 같은 매서운 겨울바람이 나와 현아 사이를 긁으면서 지나갔다. 현아의 오른발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겨울철 딸기.”
왼발을 마저 떼려던 현아가 내 말에 멈춰섰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어묵 꼬치.”
현아가 뒤를 돌아봤다.
“봄이 되면 마당에 피어나는 샛노란 개나리.”
“그만해.”
“해가 쨍쨍한 여름 바다를 보며 모래사장에 누워 지나가는 소라게를 바라보는 일.”
“그만하라고.”
“함께 먹는 수박 화채에는 꼭 체리를 넣어야 하지.”
“제발 그만해!”
현아가 난간 위에서 주저앉았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장마가 쏟아져 내리면 클래식 노래 모음을 틀며 뜬금없이 티라미수를 먹자.”
“나한테 왜 그래.”
현아에게 두 걸음 다가갔다.
“가을이 되면 군밤을 까먹는 네 옆에서 나는 낙엽을 쓸게. 그럼 너는 낙엽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좋다며 지그시 눈을 감겠지.”
“...”
현아에게 세 걸음 다가갔다.
“그거 알아? 내가 다 쓸어버린 낙엽을 풀어헤친 뒤에 다시 한번 쓸어 담는걸?”
“..왜 그랬어?”
“너가 조금 더 그 소리를 감상하길 바랐어.”
나는 현아 앞에 섰다.
“몇 번이고 쌓인 낙엽을 풀어헤칠 수 있어. 다시 쓸면 되니까. 딸기 정도야 백번도 사줄 수 있어.”
현아가 난간에서 내려왔다.
“장마철을 대비해서 냉장고 가득 티라미수를 채워 넣을게.”
현아가 내 앞에 섰다.
“그렇게 하루를. 하루를 모아서 일주일을. 그리고 일 년을. 나와 보내주면 안 될까. (사이)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 넣어 줄 테니까..”
나는 현아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현아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내 뺨을 스친다. 그녀의 손가락 위로 물방울이 맺힌다. 나는 그녀의 품에 고개를 파묻었다. 막힌 목구멍에서는 먹먹한 소리만이 새어 나온다. 나는 그녀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오늘은 딸기를 먹고, 내일은 티라미수를 먹자. 그렇게 살아가자.”
현아가 화답하듯 나를 끌어안았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