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잔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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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어렸을 때는 술이 마냥 단 것이구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안 된다고 감히 올려다보지 못했던 그 술을 어른들은 인상하나 안 찌푸리고 꿀꺽꿀꺽 잘도 마셨으니 말이다. 혀에 퍼지는 독하고 쓴 맛이 달게만 느껴질 때 그것은 반대로 인생이 쓰다는 말이라는 것을 모르고. 쓴 것을 억지로 참아가는 게 어른이라는 것을 모르고. 술은 다니까 저렇게 많이 마시는구나. 매실주 같은 맛이 나는걸까. 마냥 천진하게만 생각하던 나이였다.


술을 처음 접하던 순간, 나에게는 맥주든 소주든 아무튼 그것들은 사실 지독히 쓰기만 했다. 그때 딱 내 나이 이십 대 초반. 타지로 올라와 대학생활을 시작하며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점이었다. 사람들에게 말 못 할 상처도 많이 받아보고 속임수도 당해보고, 나름 어린 나이에 이런저런 일들도 많이 겪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인생에서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술만큼은 그것보다 썼다. 그때까지 내 인생은 그나마 달콤한 편이었다는 뜻이었을까.


아무튼 왜 이런 공업용을 식용으로 바꾸기만 한 알코올을 돈 주고 사 먹는지 아르바이트 식구들과 회식을 할 때마다 거나하게 마시고 돌아오면서도, 그 취기로 인해 생긴 용기로 같이 근무했던 무서운 선배들에게 아양을 떨어보곤 하면서도 이해가 전혀 되질 않았지만 들이킬 때마다 다 이해하는 척 인상을 있는 힘껏 찌푸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나는 그 어른의 위치에 꽤 근접해오고 있다. 성인이 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사람에 부딪히면서 마냥 쓰던 술도 이제는 조금씩 다디달 때가 있다. 어쩐지 그 이상한 술을 저절로 찾게 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나도 이제 술이 점점 달아질 때를 알아가는 것 같다. 인생의 쓴맛을 점점 알아가니까 그런 것일까. 모난 돌이 부딪혀 깨져버리니 아픔에 발라줄 약으로 술을 선택한 것일까. 어떤 날은 평소 주량보다 술이 더 술술 잘 넘어가기마저 한다. 급하게 술을 찾는 일도 늘었다. 복잡한 생각보다 한잔 툭 털고 싶은 것에서 비롯된 마음.


언젠가 언니가 엄마와 나눠마시던 소주에 눈독 들이는 중학생 동생을 보고 한 말이 있다.


"크면 다- 알게 돼. 뭣 하러 지금부터 맛보려고."


때가 되면 술의 의미를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던,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미 어른의 시간을 지나오고 있었던 친언니의 무심하듯, 또 나를 걱정하는 듯한 말이 술잔 하나에 넘어가고 두 잔에 아른거린다. 아니면 이젠 쓰기만 한 것들을 마냥 참아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된 걸까. 언니, 나도 어느 정도 무거워지나 봐.


시를 다시 보니 더더욱 이 술은 소주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음 속에서 맨손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녹여 주고, 팔도 주물러 주고, 또 취하게 할 술로 소주만 한 게 있을까 싶어서. 그리고 소주는 독하고도 맑으니까, 쓰면서 또 달콤하니까. 밤은 부드러워, 마셔 중에서 발췌. by한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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