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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옳다

조지타운 에피파니

by Claireyoonlee Mar 15. 2025

성당이냐,교회냐. 타향살이에 정을 붙이려면 공동체가 필요했다. 세례를 받고 냉담 중이었으니 성당에 갈 것인가, 규모가 큰 교회에 다닐 것인가, 하고 고민하던 중이었다. 어느 날 밤,  꿈에 고귀한 여인이 나타나 “너는 성당밖에 갈 곳이 없어” 하고 말했다. 당신이 성모님이라고 밝히지 않았지만, 나는 그 분이 성모님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를 받은 것처럼 성당에 가기로 했다.꿈은 무의식에 숨어 있는 진심을 알려주는 법이니까. 우리 식구 중에는 아무도 성당에 다니지 않겠다고 해서 나는 새로 알게 된 친구와 워싱턴 디씨 조지타운에 있는 에피파니 성당의 한인 공동체에 들어갔다.      


조지타운은 250년이 넘은 오래된 동네다. 작은 공원과 워싱턴 하버가 있고 오래전에 지은 아담한 이층집 외관이 그대로 남아있어 분위기가 고색창연하다. 지나가다가 불이 켜진 집 안을 슬쩍 들여다보면, 낡아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현대식으로 개조해 번듯하다. 다 비슷한 듯하지만, 저마다 독특한 집 앞의 작은 정원은 사시사철 다른 정경이다. 


격자로 나누어진 거리는 남쪽부터 북쪽으로 알파벳 M street~R street, 동쪽에서 서쪽으로는27 st~39 st로 부른다. 39 st에는 명문 사립 조지타운 대학교가 있다. 길이 비좁아서 평일에 길거리 주차를 하면 두 시간 내로 차를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니폼을 입은 단속반이 어디선가 나타나 차에 벌금 딱지를 붙였다.

     

봄이면 집마다 처음 보는 예쁜 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은행나무가 샛노랗게 떨어져서 거리는 부자 나라 미국을 상징하듯 온통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나는 여기서 1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나마 우리 성당이 N st과 O st사이 Dumbarton st에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자정 미사를 마치고 가로등이 희미하게 번지는 M street을 운전하면서, 나는 올 한해도 다 갔다는 감상에 젖어 들곤 했다.


대부분의 미사가 영어인데 일요일 9시 한국어 미사를 워싱턴 교구 소속인 한국인 신부님이 집전했다. 다 쓰러져 가는 성당을 다시 번성하게 만든 신부님이라고 했다. 미사를 마치면, 지하에 있는 친교실에 내려가서 신자들과 커피를 마셨다. 우리는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커다란 주전자에 커피를 끓이고, 간단한 다과를 준비했다. 특별한 날에는 누군가 요깃거리가 되는 음식을 기부했다. 100명 남짓한 신자들은 서로 잘 알아서 인사를 하고, 요긴한 생활 정보를 나누었다.     


매주 화요일 오전에는 신부님의 성경 공부 시간이 있었다. 주로 한국에서 남편을 따라온 전업주부들이 와서 성경을 배우고, 조지타운에 있는 식당으로 걸어가 점심을 먹었다. 웃으면 가지런한 이가 하얗게 드러나는 유쾌한 신부님은 썰렁 유머를 좋아했다. 신부님은 성경 말씀을 가볍게 설명했지만, 우리는 그 속에 들어있는 진중한 뜻을 알아들었다. 나는 그때까지 성경이 잘 읽히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신부님 강의를 통해 성경을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신부님은 애매모호한 종교적 단어를 비유로 쉽게 설명해 주었다. 누군가“구원 받으세요.”라고 말하면 좋은 말인지 알면서도 듣기가 거북했다. 그래서 구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구원이란 “우리가 바라고 노력했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신부님은 간결하게 답했다. 그리고 각자에게 구원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나는 내가 바라고 노력했던 일이 무엇이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발표했다. 이제는 ‘구원’을 은혜롭게 내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부님은 ’충만하다‘의 뜻을 자동차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우리가 처음에는 티코 같은 작은 차로도 만족하지만, 다음은 중형차, 그리고 나면 외제 차를 원하면서 욕심은 끝이 없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가득 채워주신다고, 그것이 ’충만‘이라고 했다. 하느님으로 나를 채우면 채워지지 않는 세속의 욕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만감이 든다는 설명에 우리는 모두 ’충만‘해졌다.


성당 근처 신부님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는 성경과는 관계없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제아무리 심각한 고민거리를 말해도 신부님은 다 그런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분의 전공인 썰렁 유머를 해서 우리를 웃겼다. 아이들 걱정에 머리가 복잡하다가도 성경 공부를 하고 유쾌하게 점심을 먹고 돌아오면 모든 일이 잘 될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하느님의 ’구원‘과 ’충만‘을 진정 실현했던 것일까.     


나는 미국에 머문 6년 동안 주일 미사를 거의 놓치지 않았다. 고풍스러운 거리에 있는 붉은 벽돌로 지은 성당, 친척 오빠 같은 신부님이 집전하는 거룩한 미사, 자매 같은 교우들과 모닝 커피를 마시는 친교 시간, 조지타운 식당에서의 우아한 브런치. 이렇게 보내는 일요일은 낯선 나라에서 받는 큰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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